신의 그릇 2
신한균 지음 / 아우라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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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야심한 밤,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이야기는 시작된다. 임진왜란이 끝나갈 무렵 퇴각하던 왜군은 조선의 사기장들을 닥치는 대로 납치했다. 대대로 도자기를 빚는 사기장이었던 주인공 신석도 왜군에 납치되다시피 하여 배에 오른다. 전쟁이 시작된 직후부터 조선의 백성들은 관군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더구나 천민 취급을 받던 사기장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비단 사기장들 뿐만 아니라 여염집 여인들과 아이들을 비롯해 닥치는 대로 납치된 이들은 먼 타국으로 향하는 배위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기도 하였다. 첫 장면부터 가슴 아픈 장면의 연속이었다. 이는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을 예고하는 서막에 불과하다. 

"한 맺힌 조선의 영혼들이 하얀 눈으로 겨울 바다를 떠돌건만, 격군들의 노는 파도를 계속 때리고, 무심한 배는 휘날리는 눈발 사이를 헤집고 남으로 남으로 나아갔다." p.16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인공 신석의 집안은 대대로 도자기를 빚는 사기장이다. 임진년 이듬해 왜군의 공격이 본격화되자 신석과 아버지는 도자기를 빚어 왜장에게 바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아버지는 왜장이 시키는대로 갖가지 도자기를 빚어 주었지만 단 한가지 '황도'만은 빚어줄 수 없었다. '황도'는 평범한 그릇이 아니라 제기였으며 쓰임새를 다하면 깨뜨려 땅에 묻는 그릇이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비법을 가진 할아버지가 편찮으신 이유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사기장에게도 지켜할 도리가 있다고 하시며 '황도'를 빚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황도를 빚어 왜장에게 바친다는 것은 '조선의 혼'을 바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라는 아버지와는 달리 신석은 가족의 안위를 위해 '황도'를 빚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사기장을 천한 신분으로 여기면서 애써 빚은 도자기를 빼앗아 가는 조선 관원들의 횡포에 비하면 왜국에서는 실력있는 사기장을 '양반'으로 대우해준다고 하니 솔깃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코 조선을 떠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조선은 그가 태어나 자라온 곳이고 부모님과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가정을 꾸릴 곳이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으로 끌려온 신석은 사무라이로 봉해지고 한 마을을 책임지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다. 그는 그릇을 빚어주고 받은 댓가로 일본으로 끌려온 조선인 노예들을 사들이는등 조선인과 일본인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도자기 마을인 '고려촌'을 만든다. 

비록 일본인 주군을 위해 일하는 몸이지만 신석의 마음은 항상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그를 지탱해 주는 가장 큰 힘은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믿음' 하나였다. 전쟁 후 일본과의 수교가 다시 이루어지자 조선으로 부터 '쇄환사'가 방문했다. 일본인들의 방해로 첫번째 쇄환사를 놓치고만 신석의 낙심은 누구보다도 컸다. 하지만 2차, 3차 쇄환사가 방문했을 때는 한국인들 스스로가 귀국을 거부한다. 이미 일본에서 자리를 잡을 만큼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러버린 지금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않고 배만 태워주겠다는 정부의 입장도 못미덥거니와 쇄환사 관리들 또한 오만함으로 가득차 어떤 의지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재외 국민에 대한 불성실한 태도는 예나 오늘이나 어쩜 이리도 똑같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임진왜란에 대한 명목상의 이유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진바와 같으나 이 책에서는 '도자기 전쟁'이라는 시각에 촛점을 맞추었다. 당시 중국과 조선은 일본에 비해 도자기를 빚는 기술력이 월등했으며, 도자기 산업은 오늘날 IT 기술에 견줄만큼 고급 기술에 고부가 가치 산업이었던 것이다. 안타까운것은 정작 그 기술을 가진 조선은 도자기나 도자기 빚는 기술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였는데 비해 일본은 수많은 조선의 사기장에게 기술을 전수받음으로써 다른 나라와의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는 점이다. "이도가 일본으로 건너오지 않았더라면 조선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이야말로 그 고향이다. - 야나기 무네요시" 라고 말하는 일본의 미학자의 주장이 가시처럼 파고픈다. 아... 우리는 왜 스스로가 가진 '보물'을 몰랐던 것일까. 남에게 빼앗기고 그것이 빛을 발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을까. '속상하다'라는 말로는 너무나 부족한 표현하지 못할 안타까운 심정이다.

책의 저자 신한균님은 주인공 신석처럼 대를 이은 사기장이다. 사기장이 쓴 글... 낯설면서도 독특하다. 때문인지 도자기 빚는 과정이 눈앞에서 보는듯 선명하게 재현되었고, 투박한 문체조차 정겹다. 이 책은 소설가가 아닌 사기장이 말하는 '그릇'에 대한 철학이자 굳건한 믿음이다. 도자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일본으로 끌려간 사기장들의 역사를 철저한 고증을 통해 밝히고, 사기장이 단순히 그릇을 빚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예술가임을 말하고 있다. <신의 그릇>은 도자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역사적 사실이 만나 활자화 된 신한균님이 빚은 또 하나의 '신의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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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빌 브라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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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날씨가 후덥지근해지는가 싶더니 벌써 모기가 눈에 띈다. 주말에 재래시장 구경을 겸해 모기장을 고르는데 문득 어린시절 추억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부아아앙~~'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모기차가 나타나면 동네 아이들이 몽땅 뛰쳐나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연기한번 쐬고 나면 밤새 모기가 달라들지 않을 것처럼, 아니 그보다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연기 속을 허우적 거리자면 마치 구름속을 걷는 것처럼 기분이 묘~해져서 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모기차는 그렇게 아이들을 떼거리로 몰고 다녔다. 여름 한철동안 거의 매일 노출되었던 환상의 구름(?)이 얼마나 유해한지 알려지기까지는 그 후로도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 ^;;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이 책은 빌 브라이슨의 성장에세이다. 평범하면서도 엉뚱생뚱했던 사내아이였던 그는 어린시절 스스로를 다른 별에서 온 초능력자라고 생각했다. 지하실에서 발견한 낡은 스웨터를 입는 순간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로 변신한다고 믿었으며 그 이름은 바로 '선더볼트 키드'다. 스웨터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가지게 해주는 힘의 원천이다. 어린 빌 브라이슨은 유년의 크고 작은 사건들에 대해 제법 의젓한 관점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비록 힘없고 작은 체구에 갇혀있지만 내면은 선더볼트 키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아침마다 침대에서 뛰쳐나와 운동화를 신으려 하면, 어찌된 영문인지 한쪽 운동화의 끈이 1.2미터쯤 길었다. 밤새 바닥에 혼자 널브러져 있던 운동화가 어쩌다 그렇게 변했는지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중략) 어쨌든 끈을 다시 똑바로 매려면 끝없는 인내심과 과학적 판단력이 요구됐다. 낑낑대며 구멍에 맞춰 방향을 돌려가며 끈을 묶고 나면 이상하게도 양쪽에 남는 길이가 달랐다. 기적에 힘입어 마침내 양쪽에 남는 길이를... p.54-55 "

 영국 <타임스>로부터 '가장 재미있게 글을 쓰는 생존 작가'라는 평을 듣는만큼 전체적으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사실 어른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이들에겐 무척 힘겨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친구들과 말싸움을 벌이면서 무작정 우기기, 머리에 된장(?) 바르던 아찔한 기억, 성에 대한 호기심, 여자 옷을 입혀 준 엄마 탓에 오래도록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던 기억등 같거나 혹은 비슷한 이야기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평범한듯 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든 특유의 위트 넘치고 유머러스한 문체가 돋보인다. 또한 중간중간 삽입된 당시 언론에 소개된 황당 뉴스도 재미를 더한다.  

"익사자가 있었다는 소문 때문에 시작된 포코토포그 호수의 수색이 취소된 이유는 수색을 돕겠다고 자원한 봉사자중 한 명이 수색하던 당사자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디모인 레지스터>, 1957년 9월 20일" 
 
누군가 내게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을 꿈꾸며 망토를 두르고 뛰어다닌 어린 시절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당연히 '예스'다. 가끔씩은 눈물 나게 그립다. 분홍색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책상에서 뛰어내리면서 '슈퍼맨'을 외치던 그 시절이...  '소독차'처럼 어른이 된 후에 배신감으로 다가오는 추억도 있지만, 유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님의 마음을 요즘들어 절실히 느끼면서 마음이 저려오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추억할 수 있는 유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가. 세월은 유년의 기억을 조각처럼 다듬고, 때론 아픔조차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빌 브라이슨의 성장에세이는 어린 시절에 대해 가지는 공감을 이끌어 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산증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낸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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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꼭 풀어야 할 창의영재 수학 퍼즐 Level 1 - 영재성 계발 도서관
삼성수학연구소 지음, 송선범 그림 / 삼성출판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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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아이 혹시... 영재 아닐까?"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본 생각일 것이다. 꼬물꼬물 귀여운 강아지같던 아기가 태어난지 두어달만 지나면 엄마와 눈을 맞춰가면서 옹알이를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소통'이 되는거구나 하는 묘~한 흥분에 사로잡하기 시작한다. '맘마~!!'를 외치다가 어느날 '엄마~!!'라고 입을 열고, 배변을 가리고, 걷고 뛰고... 이런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서 아이키우는 엄마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거짓말쟁이가 된다는 말이 생겨날만큼 영. 유아기의 학습능력이나 적응력은 어른의 상상을 초월한다. 
 
<창의영재 수학퍼즐> 이 책은 모든 어린이에게 영재성이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재로 하고있다. 흔히 말하는 영재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키우고 계발시켜 줌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영재가 만들어진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그러면서 살짝 긴장도 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수학문제가 영재성을 일깨우는 것일까. 책의 첫장에 활동자료로 첨부된 칠교판을 보는 순간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창의력이나 영재교육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낯익은 형태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되었던 마음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서 배열된 수의 규칙찾기나 그림에서 다른 부분찾기, 미로찾기, 조각 맞추기, 성냥개비 퍼즐등 수학문제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까운, 즐기면서 풀수 있는 문제들 위주로 되어있다. 평소 숨은그림찾기나 퍼즐을 좋아하던 아이라서 그런지 책을 보여주자 너무나도 좋아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갔다. 그리고는 책을 빼앗을 수가 없었다. ^ ^;; 하루에 한,두 페이지씩 찢어서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아까워서 그냥 두었더니 숨은그림 찾기나 미로찾기를 하루만에 다~ 해버렸다. 아깝더라도 찢으라고 만들어진 책은 시키는대로 해야하나 보다. 
 
7세인 아이는 책의 반정도 분량을 어른의 도움없이 혼자 풀었다. 하지만 반을 넘어서면서 복면산 퍼즐, 논리 추론, 창의력사고력 부분에 있어서는 문제의 내용 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등 문제를 패스해가면서 일부만 풀어야 했다. 확실히 힘들어 한다. 그런데 솔직히 정답을 컨닝하지 않으면 엄마인 나도 풀지 못할 문제들이 제법 많았다. 그럴때마다 아이는 아빠를 찾는데 가장의 체면이 걸린 문제인지라 아빠도 최선을 다해 성의를 보인다. 문제 풀이가 막혀 조금은 울적한 기색이던 아이도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운 한때는 보내는 것으로 충분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미국 국립 영재 연구 센터 소장인 렌쥴리 교수는 초. 중등학교에서 15% 정도의 학생들이 영재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재능을 개발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내 아이가 그 15%에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지나치게 영재교육에 목을 메는 교육현실이다. 입시용 영재교육이 아니라 제대로 된 영재 트레이닝이 이루어지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지배자는 자원도 자본도 무기도 아닌 두뇌“ 라고 주장한 엘빈 토플러의 말을 떠올리며 개개인에게 주어진, 내 아이에게 주어진 숨은 재능을 끄집어내기위해 관심을 가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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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를 사랑한 남자 -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를 푸는 심리학 탐험 16장면
조프 롤스 지음, 박윤정 옮김, 이은경 감수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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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남자...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한 남자도 아니고, 멋진 자동차를 사랑한 남자도 아니고 '유모차를 사랑한 남자'라니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도대체 그 남자의 심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심리학은 '정신과 행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연구과정이나 성과에 가치를 더하자면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 사례를 종합하여 보편적이고도 객관적인 대안을 추출해내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영화에나 나올법한(실제로 동일한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 지기도 하였다) 놀라운 사례들이다.   

 "사례연구는 과학적인 실험 보고서라기보다 소설에 더 가깝다. 인간을 그토록 매력적이고 복합적인 존재로 만들어주는 세부 사항들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흥미롭고 황당하며 놀라울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 대해 무언가를 알려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심리학자나 정신과학자들은 과학적 이론과 결부시켜서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례연구가 문학이 아닌 '과학'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7 " 리처드 그로스(심리학자) 추천의 말 中

1970년대 세상에 알려진 지니라는 소녀는 태어난 직후부터 13년동안이나 감금되어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았다. 지니는 하루의 대부분을 의자에 묶여 생활하고 말하는 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비참한 상태로 길러졌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녀를 감금한 사람이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지니의 아버지는 우울증을 앓았고 지나치게 방어적이었다가 때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지니뿐 아니라 지니의 어머니와 오빠도 거의 감금된 채 살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아도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한지 믿어지지 않는다.  

7세 아이를 둔 엄마여서 인지 유아 심리에 관심이 많다. 여러 사례들중 유난히 유아, 어린이 관련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 것도 그 이유에서일 것이다. 아베롱의 야생소년 빅토르의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딥스의 사례 또한 눈길을 끄는데 유치원에서 저능아취급 받았던 딥스가 놀이치료를 통해 10년후 누구보다 영특한 소년으로 변화되었다는 이야기는 흐뭇하기까지 했다. 1900년대 초, 존 브로더스 왓슨에 의해 실시되었던 영아의 심리에 대한 실험 또한 기억에 남는다. 아무리 연구를 위해서라지만 11개월 짜리 아기를 데려다가 겁을 주면서 공포에 떨게 만들다니... 정말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다.    
 
아기들은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태어나지만, 생육에 도움이 되는 환경이 있어야만 인간이 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초기의 고립이나 학대로 인해 이런 환경을 박탈당한 아이는 그 영향을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다. p. 260 빅토르 이야기

심리학도 좋고 과학도 좋다. 관심있는 분야이기에 눈여겨 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악스러웠다. 아이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1차적으로 부모와 같은 양육자들이다. 지니, 딥스, 빅토르, 앨버트, 라이머등 책의 반을 차지하는 사례들이 유아, 어린와 관련된 이야기임을 고려할 때 부모들(어른들)의 잘못된 사고와 판단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관지어 연구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더구나 이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 있어서도 심리학자나 과학자들이 지나치게 연구성과를 의식함으로써, 인륜과 도리를 저버린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유감을 감출 수 없었다. 

저자는 독자들이 가질 의구심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듯이 그저 놀라운 '이야기'쯤으로 생각해도 좋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도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사례가 아무리 독특하다 하여도 그들도 분명 인간이며,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이 가지는 심리를 끄집어 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존재의 수수께끼를 푸는 심리학 탐험'이라는 부제가 억지스럽지는 않다. 사람들은 누구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에 열광한다. 그래서 '특종'을 잡을려고 목숨걸고 '파파라치'들이 생겨나는 것일 게다. 하지만, 과학자라면 적어도 아니 무조건 '인간중심' 이어야 한다. 자신들의 성공을 보장해줄 기회에 집착하는 과학자가 아닌 '사례자'들의 입장에서 씌여진 연구 결과를 원한다. 지구상 어딘가에 존재할 '연구대상'을 위하여...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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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보다 소중한 우리미술가 33 - 오늘의 한국미술대가와 중진작가 33인을 찾아서
임두빈 지음 / 가람기획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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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캔버스 가득 물방울만 잔뜩 그려진 작품을 보았던 적이 있다.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은 물방울들은 빛이 있어 영롱하게 반짝이고 그림자까지 드리운, 생명을 불어넣은듯한 그림이었다. 이 화가는 왜 이토록 물방울에 집착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연이어 물방울 그림만 보이고, 그러면서도 신기하기만했던 독특한 경험이 되살아 난다. 이 책에 소개된 33인중의 한분인 김창열님의 작품이다. "제 그림은 모두가 제례의식과도 같은 것입니다. p.40" 반가운 마음과 함께 왜 그렇게도 물방울 무늬만을 고집했는지 이제서야 오랜 궁금증이 풀렸다. 작은 물방울을 통해 우주를 내다 보고, 신성한 의식으로 표현하고자 한 예술가의 열정이 전해오는 듯 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예술가의 자아란 우주의 근원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간파한 바 있다. 진정한 예술작품은 손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심오한 울림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화가의 눈과 마음이 그리는 선은 생명의 리듬을 반영하는 소중한 조형의 기본요소다. 따라서 거기에는 우주적 기의 울림까지도 반영될 수가 있다. p.221 "
 
예술가의 작품 세계는 ’창의성’이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서양의 사조를 전적으로 따르지 않고 얼마나 새로운 작품 세계를 이루어 내는가 하는 것 말이다. 위대한 미술가들은 대부분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다. 붓터치만 보아도 고흐의 작품일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든다든지, 황금색의 밝고 환한 색채를 보면 클림트가 연상된다든지 하는 것이 그런 예이다. 얼마전 추사 김정희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느낀것 또한 알려진 모든 서체를 연구하는등 고문을 완전히 익히고 구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다음 단계로 독자적인 서체를 선보였다는 부분이 바로 추사를 위대하다고 일컫는 이유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퓨전’을 좋아한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국악과 팝...  ’본질’을 계승하는 것 만큼이나 ’재창조’도 중요하다. 이왕이면 한국의 미술가이기에 한국적인 느낌이 바탕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김창열님의 물방울 작품이 한자와 어우러질때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조각가인 전뢰진님의 작품은 신화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고, 동화스럽기도 한데 한국의 미, 우리 고유의 정서를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석창님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산수화의 느낌을 주는 수묵채색화도 돋보이지만 현대적인 느낌을 접목시킨 수묵화에 더욱 가치를 두고싶다. 

  전공 분야의 학위를 따기위해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특히 예술계의 유학은 필수처럼 인식되어져 왔는데 문제는 작가의 실력보다 학위만이 우선시 되는 풍토이다. 미술관의 문턱 또한 일반인에게는 여전히 높다. 의무적으로 다녀와야만 하는 단체 관람이 아닌이상 개인이 일상에서 시간을 내어 미술관람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드라마에서조차 미술관은 재벌의 사모님이나 딸쯤 되어야 운영하고, 기본적으로 그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관람을 하거나 작품을 거래한다는 설정이 씁쓸한 현실이다. 전자의 경우는 결국 신정아 사건을 후자의 경우는 대기업의 비자금조성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전국민을 경악시켰다. 

 일단은 관심이다. 책을 읽으면서 예술 분야에, 특히 우리 미술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형 미술관이 아니더라도 가끔씩 소규모 미술전을 관람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예술적 안목을 높이도록 해야겠다. <고흐보다 소중한 우리 미술가 33> 참으로 고마운 책이다. 무엇가 잊고있었던 소중한 것을 일깨워준 시간이랄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예술계에도 언젠가 한류가 불어닥치는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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