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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빌 브라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날씨가 후덥지근해지는가 싶더니 벌써 모기가 눈에 띈다. 주말에 재래시장 구경을 겸해 모기장을 고르는데 문득 어린시절 추억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부아아앙~~'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모기차가 나타나면 동네 아이들이 몽땅 뛰쳐나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연기한번 쐬고 나면 밤새 모기가 달라들지 않을 것처럼, 아니 그보다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연기 속을 허우적 거리자면 마치 구름속을 걷는 것처럼 기분이 묘~해져서 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모기차는 그렇게 아이들을 떼거리로 몰고 다녔다. 여름 한철동안 거의 매일 노출되었던 환상의 구름(?)이 얼마나 유해한지 알려지기까지는 그 후로도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 ^;;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이 책은 빌 브라이슨의 성장에세이다. 평범하면서도 엉뚱생뚱했던 사내아이였던 그는 어린시절 스스로를 다른 별에서 온 초능력자라고 생각했다. 지하실에서 발견한 낡은 스웨터를 입는 순간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로 변신한다고 믿었으며 그 이름은 바로 '선더볼트 키드'다. 스웨터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가지게 해주는 힘의 원천이다. 어린 빌 브라이슨은 유년의 크고 작은 사건들에 대해 제법 의젓한 관점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비록 힘없고 작은 체구에 갇혀있지만 내면은 선더볼트 키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아침마다 침대에서 뛰쳐나와 운동화를 신으려 하면, 어찌된 영문인지 한쪽 운동화의 끈이 1.2미터쯤 길었다. 밤새 바닥에 혼자 널브러져 있던 운동화가 어쩌다 그렇게 변했는지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중략) 어쨌든 끈을 다시 똑바로 매려면 끝없는 인내심과 과학적 판단력이 요구됐다. 낑낑대며 구멍에 맞춰 방향을 돌려가며 끈을 묶고 나면 이상하게도 양쪽에 남는 길이가 달랐다. 기적에 힘입어 마침내 양쪽에 남는 길이를... p.54-55 "
영국 <타임스>로부터 '가장 재미있게 글을 쓰는 생존 작가'라는 평을 듣는만큼 전체적으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사실 어른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이들에겐 무척 힘겨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친구들과 말싸움을 벌이면서 무작정 우기기, 머리에 된장(?) 바르던 아찔한 기억, 성에 대한 호기심, 여자 옷을 입혀 준 엄마 탓에 오래도록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던 기억등 같거나 혹은 비슷한 이야기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평범한듯 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든 특유의 위트 넘치고 유머러스한 문체가 돋보인다. 또한 중간중간 삽입된 당시 언론에 소개된 황당 뉴스도 재미를 더한다.
"익사자가 있었다는 소문 때문에 시작된 포코토포그 호수의 수색이 취소된 이유는 수색을 돕겠다고 자원한 봉사자중 한 명이 수색하던 당사자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디모인 레지스터>, 1957년 9월 20일"
누군가 내게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을 꿈꾸며 망토를 두르고 뛰어다닌 어린 시절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당연히 '예스'다. 가끔씩은 눈물 나게 그립다. 분홍색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책상에서 뛰어내리면서 '슈퍼맨'을 외치던 그 시절이... '소독차'처럼 어른이 된 후에 배신감으로 다가오는 추억도 있지만, 유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님의 마음을 요즘들어 절실히 느끼면서 마음이 저려오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추억할 수 있는 유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가. 세월은 유년의 기억을 조각처럼 다듬고, 때론 아픔조차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빌 브라이슨의 성장에세이는 어린 시절에 대해 가지는 공감을 이끌어 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산증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낸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