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 단숨에 읽는 시리즈
한잉신.뤼팡 지음, 김정자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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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들한테 해적이 되라고 말하는 엄마가 어디 있어~!!" 일곱살 아들녀석과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은 엄마인 내가 지고 만다. 유치원에서 '피터팬' 영어동극을 준비중인데 원하는 배역을 1순위부터 3순위까지 적어 내란다. 아무래도 아이들이다 보니 남아들은 피터팬, 여아들은 웬디역에 지원자가 몰릴 것은 당연한데 이런저런 고민끝에 키가 크다는 장점을 내세워 아예 후크 선장에 지원하면 어떻겠느냐고, 극 중 해적의 역할도 얼마나 멋진데 하면서 아이를 꼬드겨 보았지만 결국은 실패다. '도라에몽' 광팬인 우리 아들, '원피스'를 즐겨보았더라면 생각이 달라졌을까.  

 사실... '그냥 해적'이 주는 이미지는 말 그대로 공해상에서 배를 나포하고, 사람을 죽이거나 재물을 빼앗는 범죄자들이다. 그런데도 문학 작품속에 등장하는 해적들은 뭔가 한꺼풀 벗겨지고 새로 포장된듯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다. '보물섬'의 재치만점 실버 선장부터 '피터팬' 후크도 막연히 악당으로만 알려졌으나, 알고보면 평생 악어한테 쫓겨야 하는 고달픈 신세에 외로움 가득한 '한 사람'일 뿐이다. 거기다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 잭 스페로우는 어떠한가. 조금은 어눌한듯 하면서도 멋진(모순된 표현이지만) 영화속 캐릭터 때문에 조니 뎁이라는 배우의 팬이 되어 버렸을 정도다. 
 
 이처럼 현실에서의 해적들과 작품속 해적들의 모습이 다른 이유는 무얼까. 어쩜 자유분방해 보이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나 행위가 일탈을 꿈꾸는 현대인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일지로 모르겠다. 어짜피 우리가 아는 것은 해적에 대한 몇줄짜리 정보밖에는 없으니 그저 적당한 포장지를 씌우기만 하는 되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에서의 조폭은 의리도 없고 잔인하고 비열하며 말그대로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지만, 작품 속에 그려질 때는 막연하게(?) 멋진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 첫장에서부터 처형된 해적의 사진이 공개되어 많이 놀랐다. 해적에 대한 어떤 '환상'같은 것을 깨버리기위한 의도였을까. 영화적인 기법으로 본다면 초반부터 요란스럽게 시작하고 차근히 스토리를 풀어가는 과정으로 보면 좋겠지만 '책'이라서 그런지...  적당한 때에 뒷부분에 실어주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사이즈에 비해 생각보다 가볍고 컬러 도판이 풍부해 맘에 든다. 전체적인 내용은 '해적의 역사'에 대한 인문학적인 접근으로, 해적에 대한 모든 것을 일체의 '포장' 없이 '사실'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나를 들뜨게 했던 문학 작품속 해적 캐릭터들이 책을 읽는 동안 하나씩 죽어나가는 느낌이랄까.

해적의 발생은 '해상 교통'의 시작과 함께 하며 스페인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등을 중심으로 해상 무역이 활발하던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끊임없이 출몰하였다. 일부 해적들은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수 없이 해적이 된 경우도 있었는데 먹고 살기 힘들어 산적이 되어야만 했던 내륙의 역사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다. 또한 '사략선'이라 하여 적국으로 간주되는 나라의 배를 강제로 나포할 권리를 부여받은 해적선이 활동함으로써 자국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 주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A나라의 해적이 B나라에는 국민적인 영웅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기도 하지만 시각에 따라 상반된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는 순간이다. 
 
18세기 이후 미국의 사략선까지 가세하자 해상의 상황은 더욱 복잡해 지는듯하다. 각 나라들은 사략선을 통한 부의 축적에 눈이 멀고, 해적들 또한 전통적인 해적들이 가졌던 애국심보다는 오직 개인적 '탐욕'에만 관심이 있었다. 오늘날의 해적은 더하다. 이들은 바다에 거점을 둔 '노상 강도'와 같다. 그저깨 원양 어선이 좌초되어 구조를 기다릴때도 해적들이 가장 걱정이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언젠가 소말리아 근해에서 해적들에게 나포되었던 어선이 떠올라 아찔했다. 원양 어선에 몸을 실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선원들의 생활을 생각한다면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거리 정도로 취급해서는 안될 문제다. '해적은 역사가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라는 문구가 섬뜩하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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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알렉산더 페히만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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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기광' 이었다. 그림일기를 시작으로 초등 6년동안 모았던 일기장만 해도 놓아둘 곳이 마땅치 않을만큼 분량이 많았다. 방학끝에 개학이 다가오면 언니들은 서로 내 일기장을 훔쳐보느라 다툼이 벌어지는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질 만큼말이다. 물론 내용을 그대로 베낀다기 보다는 주로 기억을 더듬거나 특히 '날씨'를 확인하는 용도로 많이 썼던 것 같다. 내성적인 성격탓에 존재감없는 초등시절을 보내던 내게 일기는 '나'와 '내가 아닌 세상'과의 소통이었고, 소중한 기록의 창고였다.  

시작하는 글에서 '이었다'라는 과거형을 쓴 것은 지금은 더이상 예전만큼 열심히 일기를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고등학교 때 이사짐을 정리하면서 초,중학교까지의 일기장을 분실한 것을 확인했을때의 충격이란...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었다. 공부고 뭐고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말이다. 대학시절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나도 모르게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거야 원... 사람이 바뀔때마다 쓰던 일기장을 찢어 버리고 새 일기장을 사는 것이 귀찮아서... 쿨럭~ ^ ^;;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책 속에 책이 등장하는 책, 제목에 '책'이라는 글자가 박힌 책은 쉬이 지나치기 어렵다. 더구나 몽환적이면서 의미심장한 뜻이 담겨진듯 보이는 표지가 인상적이다. 두께가 얇다고 우습게 볼 일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작품을 읽어보았는가 하는 개인적인 독서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의외로 집중력을 요하는 독서였다. 책에는 일일이 세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만큼 많은 작가들과 책이 등장 한다. 어떤 우여곡절을 겪든지간에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어 독자와 만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말그대로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책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연도 가지가지다. 헤밍웨이는 원고가 들어있는 가방을 도둑맞아 버렸고, '카르멘'의 저자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유고는 화재로 불타버렸다. 토마스 만은 나치가 집권하자 자신의 '일기' 때문에 위험에 처해질까 두려움에 떨어야 했고, 카프카는 자기가 쓴 원고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이었기에 스스로 불사른 원고가 많다고 한다. 게다가 마땅한 출판업자를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낙담이나 인색한 출판업자에 대한 울컥하는 마음때문에 원고를 태운 경우도 많았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다. 예술가들이 가난하고 힘겨운 삶 속에서도 활동을 멈추지 않고, 죽은 후에라도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너무 성급한 사람들인 게다.  

주로 태워 없어지는 장면들이 많아서인지 문득 드라마 황진이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당시 중국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은 우리의 예악을 버리고 중국의 것을 따르라는 압박을 받게 되는데, 그와 관련된 문서들을 중국 관리가 태우는 장면 말이다. 그리고,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면서 고려가요를 '남여상열지사'라 속되다면서 많은 글을 버렸다고 하는데 이 또한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전쟁통에 피난을 가면서도 궁중의 문서를 우선으로 하였다는 어떤 선비의 행동이 글 읽을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는데 오늘만큼은 참 잘하셨다고 말하고 싶어 진다. 

책을 덮으며 참으로 많은 작가들이 많은 원고를 잃었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과거의 '상실감'이 되살아나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온다. 한편으로는 매일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보면서 어짜피 평생 읽어도 다 읽어내지 못할 책의 홍수속에 살고 있다 라는 위로를 해본다. 소박한 내 책장으로 눈길을 돌린다. 그들이 잃어버린 원고가 무엇이든간에... 지금 내 옆에 있어주어서 너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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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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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이외수' 라는 이름 석자는 낯익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동안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옴으로써 독자와의 소통을 해 오신 분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 또한 작가에 대해서 알만큼은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이지 이외수님의 책이 처음이다. 작가만 알고 있었을 뿐 정작 작품으로 만난 적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잠시 당황했다. 그러고보니 작가를 잘 안다고 생각한것은 몇번에 걸친 TV 출현이 답인 것 같다. 긴~ 머리를 묶고 수염을 기르고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었을 산골 집까지 그분의 도인같은 이미지를 받쳐준다. 
 
<하악하악> 이 책은 '이외수의 생존법' 이란다. '생존'이란 단어는 그 자체로 조금 우울하다. 왠지 '최소한'이라는 말이 괄호속에 담겨 수식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도 아니고, 행복해지기 위한 길잡이도 아니고 절망에서 살아남는 법, 팍팍한 인생에서 하악하악 거친 숨을 몰아쉬는 말 그대로 존재 자체가 목적이 되는 치열함이 묻어난다. 책의 내용들은 한 줄에서 6, 7줄 정도의 짧은 문장으로 되어있다. 각각의 메세지는 우화처럼 깊이 있게 다가오기도 하고, 아포리즘 처럼 짧지만 강열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표지를 보고 단번에 목어라는 것을 알아챈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해 진다. 사실 용 같기도 하고, 상처 입은 물고기 같기도 한 것이 처음엔 세밀화로 그린 물고기가 삽화라는 것이 책의 내용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궁금했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아름다운 메세지와 사라져가는 한국의 토종 민물고기의 만남이야말로 절묘한 매치가 아닐 수 없다. 총 5장으로 되어있는데 털썩, 쩐다, 대략난감, 캐안습, 즐! 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젊은층을 겨냥한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생존법에는 위로와 격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따금한 질책도 있는 것. 오늘날 젊은이들이 대부분 시련과 고통에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터프해 보이고 싶어하는지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걱정한다. '술 한잔 쏴라, 영화 한편 때리자, 해골 뽀개지네, 염장 지른다, 썩소를 날리고 있네, 눈깔 튀어 나온다. 등등' 죽 나열하면서도 민망하다. ^ ^;; 그리고 기억력이 0.4초 밖에 안된다고 조롱하는 붕어가 "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 곁을 떠나서 지금까지 순전히 자립으로만 성장했습니다. " 라고 인간들을 꾸짖는 글에서 맘이 숙연해 진다. 
 

이외수님도 독자들의 평이 엇갈리는 작가들중 한 분 이라고 알고 있다. 마니아들이 있는 반면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찮다고 말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독자층을 뛰어넘어 젊은층에 어필하고자 한 의도는 좋았다. 그 연세에 나조차도 낯선 인터넷 용어들을 남발해가면서 독자들을 만나려 애쓴 모습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얇지 않은 책 두께에 널널한 여백들은 삶의 여유를 말하는 것인까.  양장도 아니고 문고본도 아닌 특이한, 약해보이는 제본이 맘에 걸린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종이가 생존을 배우려는 독자들의 주머니를 더욱 무겁게 한다면 생각해볼 일이지 싶다. 

앞서 말했듯이 이외수님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 않아 전작과 비교할 수는 없다. 이 책 한권만 놓고 본다면 분명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라는 점에는 공감한다. 애초에 의도한 바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 또한 명확하기 때문이다. 저자에 대한 화려한 수식어에 걸맞는 기발함이 돋보이는 문장들, 내 것이라 생각하고 줍는 사람이 임자다. 여러분~~ 즐!!

 

태양으로는 결코 담배불을 붙일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태양의 결점은 아니다.  P.51

장인정신이 투철한 도공은 흔히 마음에 들지 않는 도자기를 모조리 깨뜨려버리지만 예술적 안목이 없을 때는 명품만 골라서 깨뜨린다. 캐안습이다.  P.127
 
그래, 다양성은 인정하자. 바다에는 정어리만 사는 것도 아니요, 육지에는 소나무만 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버려진 페트병도 정어리나 소나무와 똑같은 생명체로 취급해야 한다는 억지 따위는 부리지 말자. 오늘도 리플만복래.  P.135

이쑤시개가 야구방망이를 보고 말했다. 그 몰골로 누구의 이빨을 쑤시겠니, 쓸모없는 놈.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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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라] 서평단 알림
이 영화를 보라 - 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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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입심이 장난아니네~" 고미숙님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오래전부터 '열하일기'를 완독하고자 벼르다가 그 방대함과 심오함에 주눅이 들어 이리저리 재고만 있던 차였는데 우선은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눈길이 갔던 책이 고미숙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이었다. 마침내 만나게 된 연암,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존재였기에 반가움과 두근거림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연암에 대한 인상만큼 저자의 입심에 입이 벌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 이토록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글을 쓸수 있단 말인가. 아니다, 펜을 든 사람들은 일단 믿음을 가지고는 있다. 하지만 본인이 가진 지성과 감성을 총 동원하여 이렇듯 일필휘지한 것처럼 구어체 느낌이 나는 글을 써 낼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다고 본다. (이쯤하고 본 책의 이야기로 돌아가야 겠다) 처음 <이 영화를 보라> 라는 책을 보았을 때, 낯익은 출판사와 저자의 이름이 보여 고개를 갸우뚱 했었다. 고전평론가로 불리우고 싶다고 주장하던 저자가 영화평론이라니 조금은 생뚱맞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전'은 과거사일 뿐이나 정치, 사회, 문화등 그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비추어주는 거울과 같은 것이고, 영화 또한 현 시대를 가장 잘 반영한 '문화'인 것이다. 고전이 있어 근대가 있고, 오늘이 있기에 미래가 있는 것처럼 이 셋은 동일한 선상에 있다. 그렇다, 다시 생각해보니 고전평론가가 영화평론을 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지 않은가.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첫장을 펼치니 첫문장인즉 "나는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다." 로 시작한다. 헉~ ^^;; 다시 고민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글에 서서히 빠져드는 것을 느낀다.  

 저자가 고른 6편의 영화들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보았음직한 흥행작이거나 화제작이다. 괴물, 황산벌, 음란서생, 서편제, 밀양, 라디오스타~ 물론 나도 보았다. '괴물'에서는 첫장면에서 미국인 군의관이 "정확하게는 포름알데히드죠. 더 정확히 말하면 먼지 낀 포름알데히드." 라고 말하며 한강을 오염시킬 것을 명령하는 장면에서 울컥했었고, 송강호의 머리를 가리키며 "반드시 여기 있어야만 돼." 라고 말하는 의사인지 연구원인지 그 사람들한테 또 한번 울컥했고, 통신사 다닌다는 그 사람 "현상금도 세금 떼요? " 라고 물을 때 정말 어이없어하면서 봤었다. 

'황산벌' 에서는 가족을 죽인 계백 솔직히 이해 안된다. 지더라도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계백의 욕심만 두드러질 뿐이다. 4사 협상에서 보여준 각나라의 사투리는 가장 배꼽빠지는 명장면이다. '음란서생'을 통해 오늘날보다 예전이 더 포르노틱했다는 주장 절대 공감이다. 어렵지 않게 고려가요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어쩜 그 시대의 사람들은 색안경없이 그저 인간의 본능에 충실했고, 아무렇지 않은듯 일상의 '즐거움'쯤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은 인간관계가 복잡하고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다.      
 
'서편제'는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영화였다. 임권택 감독의 대표작들은 고전을 살린 한국적인 작품들이 많다. 득음을 위해서 딸의 눈을 멀게 했다는 설정이  상당히 충격적이면서 거북한 부분이기도 했지만,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과 판소리가 잘 어우러진 작품성있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거장의 100번째 작품으로 기대를 모았던 '천년학'의 추락은 15년전 서편제와는 확연하게 다른 무언가를 기대했던 관객의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우리 사회에 이미 퓨전열풍이 상륙해버린 것 처럼 말이다.    

'밀양' 두 번 봐도 세 번을 봐도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왜 상을 받았는지. 그리고 송강호 연기에 대한 찬사도 동일하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인들을 위한 영화라고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비판적이면 비판적이었지 '위한' 영화는 분명 아니더구만 말이다. 저자의 주장처럼 종교적으로 해석할 문제는 아닌데... 어쨌거나 여전히 난해한 영화로 남아 있다. 끝으로 '라디오스타', 스타와 매니저 두 사람이 주인공이지만 우리 모두의 영화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재기할 기회를 버린 왕년의 톱스타와 평생 한 사람만 지켜주고 이끌어준 매니저...  연예계에서 잊을만하면 터지는 법정분쟁의 대부분은 '전소속사와의 갈등'이 아니던가. 참 따뜻한 영화였다.  
 
'밀양'의 송강호처럼 "영화요? 뭐 우리가 뜻보고 봅니까? 그냥 보는 기지." 라고 말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한 때 즐겁게 보았던 영화들이 눈 앞에서 분해되었다가 재조립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만감이 교차되었다. 때론 공감하면서, 때론 같은 영화인데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이 놀라웠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혹시라도 책에 실린 영화를 못 본 독자가 있다면 이 책으로 대신하려하지 말고 영화를 먼저 보고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또 한가지 덧붙이자면 '책머리에' 부터 부록에 이르기까지 기회만 되면 연암을 언급하는 모습에서 고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느껴진다. 어지간했으면 거북할만도 했겠구만 이상하게도 용서가 된다. 결론을 말하자면 하여간 '그녀의 입심은 여전했다.' 라는 것이다.  

** 이 책은 알라딘 서평이벤트로 받은 도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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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터치
패트릭 스킨 캐틀링 지음, 이효순 옮김, 배현정 그림 / 예림당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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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미다스는 평범하고 착한 아이였어요. 아늑한 집, 상냥한 엄마, 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빠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어요. 하지만 한가지 미다스에겐 나쁜 습관이 있었어요. 초콜릿이나 사탕같이 단 것을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것이었죠. 미다스는 엄마의 걱정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사의 조언도 무시한 채 용돈의 대부분을 군것질하는데 쏟아 붓곤 했어요. 어느날 길에서 특이하게 생긴 동전을 줍게 된 미다스는 그 돈으로 낯선 사탕가게에서 초콜릿을 사먹었어요. 
 

그날 이후, 미다스에겐 놀라운 일이 생겼어요. 무엇이든 미다스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초콜릿으로 변했답니다. 무엇이든...  말이에요. 처음엔 미다스도 신이 났지요. 초콜릿 맛이 나는 치약부터 아침식사로 나온 토스트나 잼, 게다가 낡은 가죽 장갑을 먹어 치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지요. 하지만 시험을 치다가 습관적으로 연필끝을 입에 대는 순간 연필이 녹아 버려서 시험을 망치고, 수잔이 아끼는 동전을 먹어버린 순간부터 악몽이 되어버렸어요. 이제 미다스는 시원한 물 한모금도 마실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것이죠.

 
<초콜릿 터치> 표지가 인상적이네요. 유리 자국이 날 만큼 얼굴을 바짝 대고는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이, 눈빛이 반짝반짝해요. ^^ '초콜릿 터치'라고 제목이 새겨진 부분은 마치 초콜릿의 속지처럼 황금색이네요. 이 황금색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황금의 손 미다스왕'을 떠올리게 하기도 해요. 손이 닿는 것은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하는, 하지만 가장 소중한 사람조차 황금으로 만들어버린 왕이지요. 주인공 미다스는 어린이 주인공답게 황금이 아닌 초콜릿에 욕심을 부립니다. 하지만 미다스는 몰랐던 것이죠. 초콜릿이 그토록 맛있었던 것은 아쉬울 만큼만 먹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요. 
 

우리 아이들 때론 자제시킨다는 것이 참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더 놀고 싶고, 더 먹고 싶고, 더 자고 싶고 등등~  사실 어른들도 눈 앞의 욕심을 버리기가 무척 힘들 때가 있거든요. 우선은 아이들의 '욕심'을 이해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다만, 옳지 못한 주장은 스스로가 잘못을 깨닫도록 도와주고, 바람직한 욕심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이 부모님과 선생님의 역할이겠지요. 끝으로 마지막 장면, 엄마를 생각하는 미다스의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어요. 역시나... 우리 아이들에게 초콜릿보다 더 달콤한 것은 엄마의 사랑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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