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알렉산더 페히만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일기광' 이었다. 그림일기를 시작으로 초등 6년동안 모았던 일기장만 해도 놓아둘 곳이 마땅치 않을만큼 분량이 많았다. 방학끝에 개학이 다가오면 언니들은 서로 내 일기장을 훔쳐보느라 다툼이 벌어지는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질 만큼말이다. 물론 내용을 그대로 베낀다기 보다는 주로 기억을 더듬거나 특히 '날씨'를 확인하는 용도로 많이 썼던 것 같다. 내성적인 성격탓에 존재감없는 초등시절을 보내던 내게 일기는 '나'와 '내가 아닌 세상'과의 소통이었고, 소중한 기록의 창고였다.  

시작하는 글에서 '이었다'라는 과거형을 쓴 것은 지금은 더이상 예전만큼 열심히 일기를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고등학교 때 이사짐을 정리하면서 초,중학교까지의 일기장을 분실한 것을 확인했을때의 충격이란...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었다. 공부고 뭐고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말이다. 대학시절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나도 모르게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거야 원... 사람이 바뀔때마다 쓰던 일기장을 찢어 버리고 새 일기장을 사는 것이 귀찮아서... 쿨럭~ ^ ^;;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책 속에 책이 등장하는 책, 제목에 '책'이라는 글자가 박힌 책은 쉬이 지나치기 어렵다. 더구나 몽환적이면서 의미심장한 뜻이 담겨진듯 보이는 표지가 인상적이다. 두께가 얇다고 우습게 볼 일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작품을 읽어보았는가 하는 개인적인 독서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의외로 집중력을 요하는 독서였다. 책에는 일일이 세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만큼 많은 작가들과 책이 등장 한다. 어떤 우여곡절을 겪든지간에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어 독자와 만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말그대로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책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연도 가지가지다. 헤밍웨이는 원고가 들어있는 가방을 도둑맞아 버렸고, '카르멘'의 저자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유고는 화재로 불타버렸다. 토마스 만은 나치가 집권하자 자신의 '일기' 때문에 위험에 처해질까 두려움에 떨어야 했고, 카프카는 자기가 쓴 원고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이었기에 스스로 불사른 원고가 많다고 한다. 게다가 마땅한 출판업자를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낙담이나 인색한 출판업자에 대한 울컥하는 마음때문에 원고를 태운 경우도 많았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다. 예술가들이 가난하고 힘겨운 삶 속에서도 활동을 멈추지 않고, 죽은 후에라도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너무 성급한 사람들인 게다.  

주로 태워 없어지는 장면들이 많아서인지 문득 드라마 황진이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당시 중국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은 우리의 예악을 버리고 중국의 것을 따르라는 압박을 받게 되는데, 그와 관련된 문서들을 중국 관리가 태우는 장면 말이다. 그리고,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면서 고려가요를 '남여상열지사'라 속되다면서 많은 글을 버렸다고 하는데 이 또한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전쟁통에 피난을 가면서도 궁중의 문서를 우선으로 하였다는 어떤 선비의 행동이 글 읽을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는데 오늘만큼은 참 잘하셨다고 말하고 싶어 진다. 

책을 덮으며 참으로 많은 작가들이 많은 원고를 잃었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과거의 '상실감'이 되살아나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온다. 한편으로는 매일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보면서 어짜피 평생 읽어도 다 읽어내지 못할 책의 홍수속에 살고 있다 라는 위로를 해본다. 소박한 내 책장으로 눈길을 돌린다. 그들이 잃어버린 원고가 무엇이든간에... 지금 내 옆에 있어주어서 너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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