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평점 :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이외수' 라는 이름 석자는 낯익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동안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옴으로써 독자와의 소통을 해 오신 분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 또한 작가에 대해서 알만큼은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이지 이외수님의 책이 처음이다. 작가만 알고 있었을 뿐 정작 작품으로 만난 적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잠시 당황했다. 그러고보니 작가를 잘 안다고 생각한것은 몇번에 걸친 TV 출현이 답인 것 같다. 긴~ 머리를 묶고 수염을 기르고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었을 산골 집까지 그분의 도인같은 이미지를 받쳐준다.
<하악하악> 이 책은 '이외수의 생존법' 이란다. '생존'이란 단어는 그 자체로 조금 우울하다. 왠지 '최소한'이라는 말이 괄호속에 담겨 수식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도 아니고, 행복해지기 위한 길잡이도 아니고 절망에서 살아남는 법, 팍팍한 인생에서 하악하악 거친 숨을 몰아쉬는 말 그대로 존재 자체가 목적이 되는 치열함이 묻어난다. 책의 내용들은 한 줄에서 6, 7줄 정도의 짧은 문장으로 되어있다. 각각의 메세지는 우화처럼 깊이 있게 다가오기도 하고, 아포리즘 처럼 짧지만 강열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표지를 보고 단번에 목어라는 것을 알아챈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해 진다. 사실 용 같기도 하고, 상처 입은 물고기 같기도 한 것이 처음엔 세밀화로 그린 물고기가 삽화라는 것이 책의 내용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궁금했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아름다운 메세지와 사라져가는 한국의 토종 민물고기의 만남이야말로 절묘한 매치가 아닐 수 없다. 총 5장으로 되어있는데 털썩, 쩐다, 대략난감, 캐안습, 즐! 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젊은층을 겨냥한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생존법에는 위로와 격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따금한 질책도 있는 것. 오늘날 젊은이들이 대부분 시련과 고통에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터프해 보이고 싶어하는지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걱정한다. '술 한잔 쏴라, 영화 한편 때리자, 해골 뽀개지네, 염장 지른다, 썩소를 날리고 있네, 눈깔 튀어 나온다. 등등' 죽 나열하면서도 민망하다. ^ ^;; 그리고 기억력이 0.4초 밖에 안된다고 조롱하는 붕어가 "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 곁을 떠나서 지금까지 순전히 자립으로만 성장했습니다. " 라고 인간들을 꾸짖는 글에서 맘이 숙연해 진다.
이외수님도 독자들의 평이 엇갈리는 작가들중 한 분 이라고 알고 있다. 마니아들이 있는 반면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찮다고 말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독자층을 뛰어넘어 젊은층에 어필하고자 한 의도는 좋았다. 그 연세에 나조차도 낯선 인터넷 용어들을 남발해가면서 독자들을 만나려 애쓴 모습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얇지 않은 책 두께에 널널한 여백들은 삶의 여유를 말하는 것인까. 양장도 아니고 문고본도 아닌 특이한, 약해보이는 제본이 맘에 걸린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종이가 생존을 배우려는 독자들의 주머니를 더욱 무겁게 한다면 생각해볼 일이지 싶다.
앞서 말했듯이 이외수님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 않아 전작과 비교할 수는 없다. 이 책 한권만 놓고 본다면 분명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라는 점에는 공감한다. 애초에 의도한 바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 또한 명확하기 때문이다. 저자에 대한 화려한 수식어에 걸맞는 기발함이 돋보이는 문장들, 내 것이라 생각하고 줍는 사람이 임자다. 여러분~~ 즐!!
태양으로는 결코 담배불을 붙일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태양의 결점은 아니다. P.51
장인정신이 투철한 도공은 흔히 마음에 들지 않는 도자기를 모조리 깨뜨려버리지만 예술적 안목이 없을 때는 명품만 골라서 깨뜨린다. 캐안습이다. P.127
그래, 다양성은 인정하자. 바다에는 정어리만 사는 것도 아니요, 육지에는 소나무만 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버려진 페트병도 정어리나 소나무와 똑같은 생명체로 취급해야 한다는 억지 따위는 부리지 말자. 오늘도 리플만복래. P.135
이쑤시개가 야구방망이를 보고 말했다. 그 몰골로 누구의 이빨을 쑤시겠니, 쓸모없는 놈. P.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