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꿈 - 오정희 우화소설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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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으면서 손뼉을 치고, 무릎을 쳐가며 이따금씩 깊이 깊이 동화되는 느낌이 들었다면 적지 않은 내 나이를 인정하는 셈이 되는 것일까. 언젠가 읽은 글 중에 '인생은 두루마리 휴지 같다.' 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처음 꺼내 놓으면 줄어드는 것이 여간해서는 눈에 띄지도 않던것이 지름이 반정도 줄어든 시점부터는 금새 심지가 드러나더라는 것이다. 회식자리에서 아저씨들이 농담처럼 던지는 말들... 나이먹는 속도가 20대는 20킬로, 30대는 30킬로... 50대는 50킬로라는 말이 더이상 우습지 않다. 그저 씁쓸할 뿐이다.   
 
"나는 서른 살이 넘으면서부터 나이에 대해 신경질적이 되었다. 나, 예뻐요? 날 어떻게 생각하죠? 그냥 여편네예요? 아니면 여자예요? 아니면 인간이예요? 거의 호소에 가까운 내 물음에 남편은 픽픽 웃었다. p.79"
"당신은 내가 외로워하리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당신의 아내로서가 아닌 독립된 한 인생으로 본 적이 있나요? p.87 " 

 
<돼지꿈> 이 책에는 총 25편의 짧은 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각각의 소설에는 서로다른 1인칭 화자가 자신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어 어찌보면 일기나 에세이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3,40대 여인들이다. 남편에게 더이상 '여자'가 아닌 존재가 되어가는 것에 괴로워하고, 가족들에게 점점 존재감이 없어지는... 가끔은 우울하고 공허해지는 심리적 위기를 겪는다. 책의 표현대로 '새로이 시작하기에도, 포기하기에도 어려운' 나이가 아니던가. 

  못말리는 애주가인 남편의 술버릇을 고치기 위해 됫병짜리 소주를 입에 부어넣는 아내의 이야기, 남편이 가장 듣기싫어하는 이야기인줄 알면서도 (그렇다고 보석에 그렇게 욕심도 없으면서) 예식장만 다녀오면 예물 타령으로 한바탕 하게 된다는 부부의 이야기, 친정엄마는 푸석해진 딸이 안스러워 억지로 보약을 지어 보내자 딸은 그 보약을 남편 먹이고, 딸이 친정엄마한테 보낸 보약은 친정아부지가 잡숫더라는 어느 집안의 보약이야기하며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았다. ^^;; 
  
 그렇다고 책의 내용을 아줌마들의 수다나 푸념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때론 따뜻하고, 때론 유쾌하게...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단편에 '반전'이 들어있다고 보면 된다. 사실 책의 초반부에는 중년 남성인 화자가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데다 이웃간의 이야기나 직장이야기등 우리네 사는 이야기들이 적절히 구성되어 있어 편안하고 정감이 가는 내용이다. 

 간만에 돼지꿈을 꾼 주인공이 오래전 시누한테 빌려준 돈의 일부라도 받을 요량으로 열차를 탔는데 뜻하지 않은 업둥이를 품게 된다는 '돼지꿈'과 입양한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의 위선을 깨닫고 진정으로 아이를 끌어안게 된다는 '색동저고리'의 내용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도 그 뒷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짙은 여운으로 남은 까닭이지 싶다. 

책을 덮은 뒤에도 쉽사리 책꽂이에 꽂아 두질 못한다. 모르겠다. 마음이 심란한 것은 아닌데 그냥 책 내용을 다시 떠올리게 되고 피식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표지 그림이 내용과 어울리긴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놀이터라는 공간과 작은 소녀,  다른 친구들은 보이지 않고 소녀는 작은 박스 안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다. 그래 누구나 작고 예쁜 소녀시절이 있었지. 몸은 비록 '아줌마'이지만 마음은 아직도... ^^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살아온 그녀들의 삶과 희생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다만 중년에 뜬금없이 사로잡힌 외로움과 고독은 주위를 둘러싼 '벽'이기도 하지만 한낱 종이박스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인생의 해답은 누군가 차린 밥상을 내밀듯 답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스스로 찾아가는 것임을 마음에 깊이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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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마을의 황금산 문원아이 저학년문고 5
윤수천 지음, 오승민 그림 / 도서출판 문원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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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황금덩이같은 보름달 아래 어른 도깨비, 아이 도깨비가 옹기종기 모였다. 손에는 금덩이를 하나씩 쥐고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표지만 보아도 웃음이 절로 난다. 도깨비하면 역시나 혹부리영감님 이야기가 젤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뚝딱~ 끄집어내는 도깨비 방망이도 생각나고, 언듯 붉은악마의 치우천황의 모습이 도깨비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 
 
 도깨비는 귀신이나 구미호와는 또다른 느낌이다. 우리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도깨비는 치명적으로 나쁜 이미지보다는 익살스럽고, 짓궂으면서 노는 것을 좋아하고, 남의 것을 무턱대고 빼앗기보다는 거래를 하기도 하고 보은을 하기도 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래서 두려움보다는 호기심과 친근함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 같다. 일곱 살인 울 아들 '꼼쥐'가 먹히던 때에 무서워서 화장실은 못가면서 도깨비이야기는 좋아라 매달리곤 했다. 도깨비는 전래동화나 유아,어린이용 책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도깨비 마을의 황금산> 이 책에는 지난 30여년간 동화를 써오신 윤수천님의 글들중 가장 추천할만한 8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동화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도깨비 마을의 황금산]이다. 가난한 화가였던 주인공 '나'는 집으로 가는길에 도깨비를 만나 도깨비 마을에 가게된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도깨비들에게 그림을 그려 주게 되는데 댓가로 가져온 물건들중 황금덩이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도깨비 마을에는 황금으로 된 황금산이 있다는 것~!!! 주인공 '나'는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고 황금산을 통채 끌어가기위해 도깨비들의 도움을 구한다. 과연 황금산을 끌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

그외에도 어미개의 모정을 다룬 [별에서 온 은실이],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준 [등불 할머니], 어리석은 도둑이야기 [도둑과 달님], 효도를 주제로 한 [행복한 지게]도 좋았지만, 논두렁의 식물들에게까지 후덕함을 보여준 [기덕이 아버지의 물지게],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린 [날마다 새로워지는 선물], 자식을 그리는 옛날 어머니의 모습, 만화 '검정고무신'이 연상되었던 [용수 어머니와 전봇대]도 너무 좋았다. 

가략한 설명만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책에 실린 단편의 동화들은 전통적으로 강조되어온 교훈들을 주제로 하고 있다. 주인공들이 비록 현대식 복장을 하고는 있지만 이야기의 문맥상 전래동화로 바꾸어도 자연스러울 내용이란 뜻이다.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일깨워 주는 내용들... 따뜻하고 구수한 입담이 묻어나는 동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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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퍼시 캉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끌레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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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20년지기 친구들중 냄새를 맡지 못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어릴때 심하게 아픈 뒤로 후각에 이상이 생긴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치료를 놓쳐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단다. 이 친구의 기억속에는 냄새에 대한 개념이 없다. 좋은 점은 악취로 인상 찌푸릴 일이 없다는 것. 그리고 군대에서 화생방 훈련할 때 가장 뿌듯(?) 했다나... 나쁜 점은 상한 음식도 입에 넣어봐야 안다는 것. 그리고 맛에 대한 인지도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배탈이 잘 난다. 중요한 것은 친하다는 것을 빙자하여 새집지은 머리로 잘 나타나는데 정작 자신이 풍기는 냄새에 대해서 미안해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이냐?" 처음 이 질문을 받았을때 정말 당황스러웠다. 글쎄... 냄새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마는 좋은 냄새라는 것은 아름다운 경치 혹은 부드러운 촉감, 달콤한 맛과 같은 것이고 나쁜 냄새는 지저분한 모습, 까칠한 느낌, 역거운 맛 그런 것 아닐까 라고 말해주었다. 친구들의 면박을 무시하면서 당당하게 가스를 발산하고 발냄새, 머리냄새를 풍기던 사람이 갑자기 냄새에 관심을 보이다니... 그러던 어느날인가 이 친구가 부스스한 모습을 정리하고 훈남으로 변신한데다 왠일로 상큼한 향기까지 뿜으며 나타났다. 알고보니 좋아하는 여자분이 생겼단다. 오, 위대한 사랑의 힘~

주인공 아르망 엠므씨는 69세의 노신사로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유부녀인 정부와 밀회를 즐기며, 이따금씩 여인들을 유혹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인물이다. 그가 이토록 왕성한 남성다움을 과시할 수 있는 비결은 40여년간 한결같이 고수해온 '머스크 향수' 덕분이다. 옷차림의 마지막 단계는 항상 머스크 향으로 마무리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그렇지 않으면 벌거벗은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작가는 주인공을 전직 스파이로 설정함으로써 매사에 철저하고 세심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엠므씨의 성격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사건의 시작은 정부의 한 마디에서 비롯되었다. 평소와 다른 냄새가 난다는, 물론 나쁘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엠므씨에겐 너무나 충격적이고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어쩐지 수십년간 한결같았던 향수병이 바뀌어 있었다는 것을 너무 쉽게 지나쳤다는 것을 깨닫는다. 엠므씨는 향수 제조사의 인수합병과 관련해 머스크향의 원료가 천연재료에서 합성물질로 대체된 사실을 알게된다. 역시 그는 철저했다. 앞으로 남은 자신의 수명과 필요한 향수량을 계산해 내고 기존 향수의 재고품을 찾아나선다. 하지만 이미 품절된 향수를 구한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음을 깨닫게 되는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향수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머스크 향수를 손에 넣기위한 엠므씨의 눈물겨운 노력은 말그대로 '집착'이었다. 엠므씨...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라는 말도 못들어 보셨나요? 전문가들조차 천년향과 인공향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을것이라고 자부하였건만 엠므씨에겐 전혀 통하지 않는다. 급한 마음에 하루 사용량을 줄여가면서 사용일수를 조정해 보려 하지만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현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마침내 엠므씨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구차하게 생을 연장할 것인가 아니면... 품위있는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프랑스 작가의 소설을 몇권이나 읽었지만 아직도 문학에 있어서 '프랑스적'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더구나 이책의 홍보 문구에는 '키득거리다, 유쾌한, 우스꽝스러운' 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세상에 그런 표현을 써도 좋을 '죽음'은 없다.!!! 다만 인간의 집착이란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 하는 것에 대해서라면 깊이 생각해볼만 하다. 엠므씨의 경우는 주객이 전도된 경우이다. '사람이 술을 먹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먹는다'라는 말처럼 자신도 모르게 머스크향의 노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향수>에서처럼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으니 다행일지는 몰라도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을 거부하고 머스크와 남성성에 집착한 인물을 지켜보는 과정이 결코 편치만은 않았다.  

 
향수와 향기에 대한 기원은 인간이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인류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선시대 무수리들이 임금의 관심을 끌기위해 사냥노루의 주머니를(맞나?) 품에 지니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내용이다. 향기가 뭐길래... 향기를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아님 소리로 들려주거나 손으로 만질 수만 있다면 정말 속이 시원할 텐데 말이다. 향기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면서 '아로마 테라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현대인들의 고질적인 병증인 스트레스와 그로인한 불안, 불면등을 향기요법으로 치료할 수 있다니 얼마나 신기한가. 인간의 '코'와 '뇌'의 관계는 앞으로도 지켜볼 일이다. 

그나저나 냄새를 맡는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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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경제학자
최병서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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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집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평수에 비해 널찍해보이고 깔끔하다고들 한다. 알러지가 있는 아이때문에 커튼은 물론이고 패브릭 소품이 전혀 없는데다 벽면에도 장식이 거의 없다. 달리 말하면 집이 좀 썰렁하다고나 할까. ^^;; 한때는 거실벽에 큼지막한 그림이라도 걸어서 시선을 사로잡아볼까 생각했는데 미술작품 가격이 정말 장난아니다 싶었다. 그렇다고 유명 화가의 모작을 걸어둘수도 없고... 대신 자신을 미대생이라고 소개하면서 압화나 그림을 팔려는 이들을 통해서 인테리어용으로 몇개씩 구입하기도 했었는데 농담처럼 훗날에 유명한 화가가 되면 그림의 가치가 높아질지도 모른다면서 웃곤 했다. 알고보니 그런 것을 파는 사람들은 미대생이 아닐 가능성이 높고 (물론 학생이 아닐 수도...), 직접 그린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기분이 별로 좋진 않다. 
 
'왜 고흐의 그림은 수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가격으로 팔릴까?' 고흐는 자신이 활동하던 시대에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인물들중 한 사람이다. 고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화가들을 비롯해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 또한 죽은 후에 가치를 인정받은 사람들이 많다. 천재들의 작품은 대부분 보편적인 사고를 뛰어넘는 실험적이면서 독창적인 면이 강해 그 시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하지만 후대에라도 기회가 되어 가치를 인정받게 되면 더이상 생산되지 않는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가격이 치솟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작품의 '가치'와 '희소성'이 명화의 가격을 결정한다.    

 오랫동안 세계에서 제일 비싼 그림은 피카소의 작품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6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1>이라는 작품이 최고가를 갱신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밀레니엄 이후에 급부상한 클림트의 명성에 걸맞는 대우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잭슨 폴록의 <넘버 5>가 현재 세계 최고가의 미술 작품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솔직히 어리둥절하다. 폴록은 한때 알코올중독과 정신질환 치료를 받을 정도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고 알려져 있는데 우연한 기회에 뉴욕의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게 되고,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서 스타가 된 인물이다. 

 캔버스에 물감을 드리핑하는 기법으로 제작된 그의 작품은 말그대로 '흩뿌려진 물감 자국'이다. 주제도 제목도 없어 숫자로 그림을 구분한다. 전문가들은 '카오스 이론'이나 '나비효과'같은 용어를 써가면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지만 주제를 알 수 없는 추상화는 이해하기가 더 어렵기에... ^^;; 마르셀 뒤샹은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지 않고 기존의 물건들을 전시한 미술가이다. 그가 <샘>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에 출품한 옆으로 눕힌 '남자소변기'는 아무리 보아도 이해불가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세계도 어렵긴 마찬가지이나 뒤샹의 <샘>은 노력한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쨌거나 이들 모두는 최소한 남과 다른 시도, 새로운 방식을 고집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경제학'은 솔직히 만만하게 생각하고 대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따지고 보면 재화를 벌어들이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소비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하루하루 생활 자체가 경제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어떤 일이든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살때는 모르다가 이론적으로, 학문적으로 접근해보면 어렵기만 하니... ^^;; 이 책은 독특하게도 미술 작품과 경제학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미술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고, 명화 속 시대의 경제 모습이라든지, 화가와 경제라는 주제에 대해 서술하고 있따.  처음엔 명화도 잘 모르고, 경제학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주춤하기도 했지만 어렵게 느껴지던 '경제학'을 명화에 접목시킨 시도가 돋보여 흥미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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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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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집어든 남편이 관상을 살피듯 표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제목만 보고도 내용이 어떨지 대충 알것 같아. 왠지 짠하면서 묵직할 것 같은데 그리고 '엄마'가 아플 것 같고... 참, 당신이 눈물 한가지 쏟는다에 전부를 걸겠어~!!"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큰 소리치는 남편의 주장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것 다 접어두고 <엄마를 부탁해>라는 제목과 밀레의 <만종>을 연상시키는 기도하는 여인들이 그려진 표지만 가지고도 뭔가 말로 표현못할 감동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첫장을 넘기기도 전에 이토록 감정에 휘말려 보기는 처음이다. 어머니... 엄마는 그런 존재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생일상 차려준다는 자식들 힘든 걸음 시키지 않으려고 고향에서 서울 올라온 길이었단다. 가족들이 전단지 초안을 만들고 대책을 논의하는 장면을 보면서 처음엔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엄마를 잃어버릴 수 있지? 엄마가 무슨... 가방에 들어갈만한 물건도 아니고 짐짝도 아닌데 지하철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이 되도록 찾지 못하였다니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었다. 직감적으로 엄마가 치매이거나 그와 비슷한 질환을 가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휴~ 또한번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가족들중 누구도 엄마한테 일어나고 있던 일을 알지 못했다. 일이 생기고 나서야 엄마의 행동이... 말이... 이런 상황을 암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평생을 함께 한 아버지조차 나이들면 다들 그렇지 라고 생각했고, 자식들도 그저 제 할말만 하고 살았다. 초경이 시작되기도 전에 시집와 자식들을 줄줄이 낳고 살면서 시어머니보다 더 무서운 시누이 시집살이에 젊어서는 밖으로만 겉도는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늙어서는 집에 돌아온 남편 병수발하면서 사셨단다. 없는 살림에 자식들 먹이고 공부시키고 남보란듯이 훌륭히 키워냈지만 엄마에게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엄마를 잃어버린 다음에야 너는 엄마의 이야기가 너의 내부에 무진장 쌓여 있음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끊임없이 반복되던 엄마의 일상. 엄마가 곁에 있었을 땐 깊이 생각하지 않은 엄마의 사소하고 어느 땐 보잘것없는 것같이 여기기도 한 엄마의 말들이 너의 마음속으로 해일을 일으키며 되살아아났다. 너는 깨달았다. 전쟁이 지나간 뒤에도, 밥을 먹고 살 만해진 후에도 엄마의 지위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p.274"
 
아, 진짜 가슴이 미어진다. 가족들은 엄마를 잃어버린 후에야 비로소 알게된다. 엄마를 잃어버리기 전에 이미 엄마를 잊고 있었음을... 평생동안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동안 엄마는 그렇게 몸도 마음도 닳아 없어졌던 것이다. 아버지도, 시누이도, 자식들도 그제서야 다들 저마다의 잘못을 뉘우치며 엄마를 간절히 찾고자 한다. 엄마의 과거를 돌이켜 볼수록, 그들의 고백이 이어질수록 안타까움만큼 서운함과 약간의 분노가 치밀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곧이어 울 엄마의 거친 손이 생각났다. 셋째 며느리로 시집와 제사부터 집안 대소사 모두 치러야 했고, 지 애비 등골 빼먹는 딸년들만 셋 낳았다고 욕을 하시던 할머니 시집살이에(할머니는 엄마를 그렇게 못살게 구셨으면서 돌아가실때까지 함께 사셨다.), 자식들 공부시키겠다고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부업을 하셨었다. 어릴 때, 주말마다 딸들의 손톱을 깍아주시던 엄마, 그런데 엄마는 항상 손톱이 뭉퉁했다. 말그대로 손톱이 자랄 결흘조차 없이 일을 하신것이다.   

 엄마란 그런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고 아늑하면서도 편한 존재...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함부로 하게되고 온갖 성질 다 부리게 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잘 안된다. 어쩜 나도 소설속의 자식들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미치자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다. 

<엄마를 부탁해> 이 책은 <리진> 이후 오랜만에 만난 신경숙님의 작품이다. 밤 열시 넘어 김장때 쓸 마늘을 까는 그녀의 어머니를 통해 나의 어머니를 본다. 지난 겨울 어머니로 인해 누린 행복감이 오래전 시작한 이 소설을 계속 쓰게 했다고 한다. "누구에도 아직 늦은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은 내 식의 방법이 이 소설이다. p.296" 비록 행복감과 거리가 먼 전개이긴 하지만 화자를 구분하기 힘든 독특한 시점과 구성이 돋보였고, 무엇보다 작가의 의도가 잘 전달된 소설이다.   

"엄마가 없는데도 봄이 오고 있다니. 언땅이 녹고 세상의 모든 나무엔 물이 오르고 있다니. 그동안 너를 버티게 하던 마음, 엄마를 찾아낼 수 있으리란 믿음이 뭉개졌다. 엄마를 잃어버렸는데도 이렇게 여름이 오고 가을 또 오고 겨울은 찾아오겠지. 나도 그 속에서 살고 있겠지.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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