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퍼시 캉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끌레마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남편의 20년지기 친구들중 냄새를 맡지 못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어릴때 심하게 아픈 뒤로 후각에 이상이 생긴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치료를 놓쳐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단다. 이 친구의 기억속에는 냄새에 대한 개념이 없다. 좋은 점은 악취로 인상 찌푸릴 일이 없다는 것. 그리고 군대에서 화생방 훈련할 때 가장 뿌듯(?) 했다나... 나쁜 점은 상한 음식도 입에 넣어봐야 안다는 것. 그리고 맛에 대한 인지도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배탈이 잘 난다. 중요한 것은 친하다는 것을 빙자하여 새집지은 머리로 잘 나타나는데 정작 자신이 풍기는 냄새에 대해서 미안해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이냐?" 처음 이 질문을 받았을때 정말 당황스러웠다. 글쎄... 냄새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마는 좋은 냄새라는 것은 아름다운 경치 혹은 부드러운 촉감, 달콤한 맛과 같은 것이고 나쁜 냄새는 지저분한 모습, 까칠한 느낌, 역거운 맛 그런 것 아닐까 라고 말해주었다. 친구들의 면박을 무시하면서 당당하게 가스를 발산하고 발냄새, 머리냄새를 풍기던 사람이 갑자기 냄새에 관심을 보이다니... 그러던 어느날인가 이 친구가 부스스한 모습을 정리하고 훈남으로 변신한데다 왠일로 상큼한 향기까지 뿜으며 나타났다. 알고보니 좋아하는 여자분이 생겼단다. 오, 위대한 사랑의 힘~

주인공 아르망 엠므씨는 69세의 노신사로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유부녀인 정부와 밀회를 즐기며, 이따금씩 여인들을 유혹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인물이다. 그가 이토록 왕성한 남성다움을 과시할 수 있는 비결은 40여년간 한결같이 고수해온 '머스크 향수' 덕분이다. 옷차림의 마지막 단계는 항상 머스크 향으로 마무리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그렇지 않으면 벌거벗은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작가는 주인공을 전직 스파이로 설정함으로써 매사에 철저하고 세심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엠므씨의 성격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사건의 시작은 정부의 한 마디에서 비롯되었다. 평소와 다른 냄새가 난다는, 물론 나쁘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엠므씨에겐 너무나 충격적이고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어쩐지 수십년간 한결같았던 향수병이 바뀌어 있었다는 것을 너무 쉽게 지나쳤다는 것을 깨닫는다. 엠므씨는 향수 제조사의 인수합병과 관련해 머스크향의 원료가 천연재료에서 합성물질로 대체된 사실을 알게된다. 역시 그는 철저했다. 앞으로 남은 자신의 수명과 필요한 향수량을 계산해 내고 기존 향수의 재고품을 찾아나선다. 하지만 이미 품절된 향수를 구한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음을 깨닫게 되는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향수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머스크 향수를 손에 넣기위한 엠므씨의 눈물겨운 노력은 말그대로 '집착'이었다. 엠므씨...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라는 말도 못들어 보셨나요? 전문가들조차 천년향과 인공향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을것이라고 자부하였건만 엠므씨에겐 전혀 통하지 않는다. 급한 마음에 하루 사용량을 줄여가면서 사용일수를 조정해 보려 하지만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현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마침내 엠므씨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구차하게 생을 연장할 것인가 아니면... 품위있는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프랑스 작가의 소설을 몇권이나 읽었지만 아직도 문학에 있어서 '프랑스적'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더구나 이책의 홍보 문구에는 '키득거리다, 유쾌한, 우스꽝스러운' 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세상에 그런 표현을 써도 좋을 '죽음'은 없다.!!! 다만 인간의 집착이란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 하는 것에 대해서라면 깊이 생각해볼만 하다. 엠므씨의 경우는 주객이 전도된 경우이다. '사람이 술을 먹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먹는다'라는 말처럼 자신도 모르게 머스크향의 노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향수>에서처럼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으니 다행일지는 몰라도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을 거부하고 머스크와 남성성에 집착한 인물을 지켜보는 과정이 결코 편치만은 않았다.  

 
향수와 향기에 대한 기원은 인간이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인류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선시대 무수리들이 임금의 관심을 끌기위해 사냥노루의 주머니를(맞나?) 품에 지니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내용이다. 향기가 뭐길래... 향기를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아님 소리로 들려주거나 손으로 만질 수만 있다면 정말 속이 시원할 텐데 말이다. 향기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면서 '아로마 테라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현대인들의 고질적인 병증인 스트레스와 그로인한 불안, 불면등을 향기요법으로 치료할 수 있다니 얼마나 신기한가. 인간의 '코'와 '뇌'의 관계는 앞으로도 지켜볼 일이다. 

그나저나 냄새를 맡는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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