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킹 던 - 나의 뱀파이어 연인 완결 트와일라잇 4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윤정숙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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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지금으로서는 온통 그 생각 뿐이다. 올초에 우연히 '트와일라잇'을 읽고는 연이어 '뉴문', '이클립스'까지 참 행복했다. 그리고 <브레이킹던>을 기다리는 동안 목빠지는 줄 알았다.  '내 다시는 완간되지 않은 시리즈에 빠지지 않으리라.' 다짐했을 만큼 몇달의 시간이 힘겨웠던 기억이 난다. 막상 책을 손에 쥐고 보니 오히려 담담해 지는 것이 이걸 하루만에 다 읽어야 할지 아껴가며 두고두고 봐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내 마음이지만 종잡을 수가 없다. 이런저런 고민도 잠시 첫장을 펼치는 순간 그냥 빠져들고 말았으니 더 설명하면 무엇하랴. 
 
 '트와일라잇'의 주된 스토리는 만남이다. 100년만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달은 뱀파이어와 평범한 소녀의 만남, 네가 누구든 어떤 존재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당찬 벨라의 모습에서 나도 한번 물려봤으면 하는 생각이 얼핏 스쳤던... ;; 뉴문은 '이별'이다. 벨라가 아무리 사고를 끌어당기는 자석이라고는 하지만 그 모든 사실을 접어두고 여전히 에드워드가 벨라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였으므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벨라는 살기위해 거의 생존 본능으로 제이콥과 어울리게 되고, 벨라가 죽은 줄 알고 자살하려던 에드워드를 구하기위해 이탈리아까지 달려간다. 그 결과 '이클립스'에서는 속터지는 삼각관계가 펼쳐졌다. 제이콥을 사랑하지만 에드워드를 더 사랑한다는 말로 독자를 경악시켰던 발칙한 벨라, 에드워드의 청혼을 받아들임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되었을지 몰라도 내 마음 속엔 여전히 앙금이... 지켜보겠쓰으~ ==;;  
  
보통의 경우는 누구랑 누구랑 만나서 사랑을 하고 우여곡절을 겪은 후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드래요, 하고 끝나기 마련인데 <브레이킹던>은 벨라의 결혼으로 스토리가 시작된다. '트와일라잇'에서 부터 집요하게 변신을 요구하던 벨라는 에드워드가 직접 그 일을 해주기를 바랬고, 에드워드는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결혼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는 벨라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것을 단 하나라도 잃지 않게 하려는 배려이기도 하다. 그러자 벨라는 결혼 후 변신 이전에 진정한 허니문을 조건으로 걸고 마침내 '빅딜'이 성사된 것이다. 이 둘은 완전 '협상 커플'이다. 한 사람은 더 주지 못해서 안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주목받거나 선물 받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그래도 결국은 다 받을 거면서...  ^^;;
 
[스포 주의] 화려한 결혼식을 마치고 에스미섬에서 꿈같은 신혼여행을 보내던 두 사람은 예기치 못한 임신에 당황한다. 신혼여행 중에 당연히 벨라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켈런가를 찾아온 제이콥도 임신한 벨라를 보고 충격에 빠진다. 벨라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자라는 태아로 인해 생명을 위협받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르네즈미를 낳고, 변신도 성공한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도 잠시, 르네즈미를 '불멸의 아이 - 뱀파이어의 규칙을 지킬 수 없는 위험한 존재' 로 규정한 볼투리가 전병력을 이끌고 켈런가로 쳐들어 온다. 제이콥이 르네즈미에게 각인된 사건으로 새로운 관계가 성립된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무리는 불투리에 함께 맞서기로 하고, 평소 친분있던 뱀파이어들에게 증인이 되어줄 것을 요청한다.    
 
 벨라는 자신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며 속상해 하다가 '방어능력'이 있음을 알게되고, 쉴드를 자유롭게 조종하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르네즈미를 제이콥과 함께 피신시키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둔다. 결전의 날, 볼투리는 르네즈미가 아무런 위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꼬투리를 물고 늘어진다. 하지만 늑대인간과 벨라의 능력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그들은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수세에 몰리고, 겨우 체면을 유지한 상태로 도망치듯 떠나버린다. 에드워드는 모두에게 벨라의 능력에 대해 말하고 벨라는 늘 그랬듯이 부끄러워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벨라는 자신을 감싸던 쉴드를 완전히 끄집어 냄으로써 에드워드가 자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를 처음 만났던 날, 제임스에게서 구해준 일, 결혼식, 에스미섬, 변신 후 처음 그의 얼굴을 보았을 때 등 벨라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없이 행복했던 순간들을 펼쳐보인다. 그리고 '영원히 행복하게'라는 말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스포 종료]
 
스토리 전개가 정말 빠르다. 800페이지나 되는 분량을 어떻게 읽어는지도 모를 정도로 크고 작은 사건들과 에피소드들이 넘쳐난다. 에드워드라는 캐릭터가 흥미로운 것은 1차세계대전 당시의 고리타분한 사고를 가졌음에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벨라가 했던 말처럼 그의 잘 생긴 얼굴 이면에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려는 노력, 끝없는 이타심 등 내면적인 부분이 여심을 사로잡는다. '브레이킹던'에서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뱀파이어들이 대거 등장함으로써 에드워드의 존재감이 조금 약해진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벨라가 에드워드 보다 더 강해지면서 (변신 직후 인간의 피가 남아있는 동안 한시적이긴 하지만) 전보다 더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지금까지 벨라에게 감정이입을 시킴으로써 대리만족을 누려오다가 벨라가 인간이 아닌 뱀파이어가 되어 버리자 방향을 잃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신랑(신부)은 신부(신랑)를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겠습니까?" 항상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다. "죽음이 우릴 갈라 놓을 때까지" 이 말도 '사랑의 끝', '유한성'을 나타내는 말이라서 싫다. 누군가로 인해 눈에 콩깍지가 씌여지면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그렇기에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라는 대답이 나와줘야 되는 것이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판타스틱한 러브스토리가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다.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폭팔적인 인기몰이를 하는 이유도 기존의 뱀파이어 이미지를 바꾸었다는 측면도 있지만, '불멸의 사랑' 이라는 이상적인 러브스토리를 실현해 주었기 때문이다. 원나잇 스텐드가 거리낌 없이 행해지고, 이혼율이 솟구친다는 21세기 오늘날에도 첫사랑의 설렘을 기억하고픈,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믿고싶다. 해커때문에 단단히 화가 나셨다는 스테프니 여사께서 이젠 독자들 생각도 좀 해 주시기를...  이젠 <미드나잇선>만이 희망이다.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그리고 우리는 작지만 완벽한 우리의 한순간을 이어나갔다. 영원히 행복하게. (p.821) 라는 말처럼 앞으로도 행복한 순간을 계속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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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 A
조나단 트리겔 지음, 이주혜.장인선 옮김 / 이레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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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귀가하는 남편이 그런다. 우리집 담벼락에 기대 담배피는 아이들 보고도 아무 말 못하는 것이 현실이리고 말이다. 어린 애들한테 험한 경우를 당하는 것이 두려운 것보다 앙심을 품고 가족들한테 해코지 할까봐 겁난다는 것이 더 큰 이유다. 사회가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요즘은 청소년 범죄 연령도 점점 더 낮아지고 수법도 잔인해 지는 것 같다. 최근에는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 자신들은 미성년자라서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랬다는 말을 함으로써 청소년 범죄 처벌 수위에 논란을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 우리 사회, 무엇이 문제이고 우리 아이들 어떻게 키워야 할지 정말 고민된다.

 

<보이 A> 이 책은 영국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소년 범죄를 모티브로 집필되었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10살 밖에 되지 않은 소년이라는 것은 어느 사회라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일 것이다.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민심은 사건의 단편적인 면만 보게 될 것이고 진정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을 놓치게 만든다. 작가는 소년 A의 어린시절부터 감옥에서의 생활, 잭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가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았다.    

 

소년 A는 '잭'이라는 이름을 직접 골랐다. 평범하면서도 멋있다는 것이 이유다. 어쩌면 어린 시절, 그의 진짜 이름이 서류철에 묻혀 버리기 전부터 그가 원했던 것은 그저 평범한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모님께 사랑받고, 친구들과 어울려 논다든지, 선생님께 관심을 받는 것들 말이다. 불행하게도 그는 보통의 아이들이 가졌던 것들 중 어느것 하나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고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소년 B와 함께 있을때만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공범 B와 구분하기 위해 A라고 불렸던 소년은 15년의 세월동안 죄값을 치른 후 사회에 복귀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잭으로 살아 갈 것이다.  

 

 두려움으로 시작한 새 삶은 잭에게 너무나도 큰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집, 직장, 동료들, 친구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도 생겼다. 그는 위험에 처한 친구를 위해 몸을 던질 줄도 알고, 꺼져가는 한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소년은 A였던 과거를 뒤로하고 영웅 잭이 되었다. 결코 잃고 싶지 않은 삶이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소년 A가 여전히 위험한 존재이며 사회에 복귀되더라도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A는 여전히 용서할 수도, 보호할 가치도 없는 존재였다. 그들은 집요한 추적자가 되어 A를 뒤쫓고 있었다.   

 

"피곤하다고 말했지만 잭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를 괴롭히는 거짓과 위선의 무게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게 불편하기만 했다. 마치 거짓과 위선 위에 누워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짓과 위선이 벼룩처럼 그의 살갗을 따갑게 했고 온 신경이 등 쪽에 솔려서 결국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p.262)"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을 묘사한 부분이다. 잭의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죄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가 겪어야 할 부분, 그가 갚아야 할 부분이 아직도 남았음을 알고 있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들에게 과거를 털어놓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너무나도 큰 고통이다. 운명의 그 날, 소년은 스스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었을까? 소녀의 삶을 빼앗는 순간 자신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멈추었을까? 그가 치러야 할 댓가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사람들이 범죄자들에게 편견어린 시선을 가지는 것은 재범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사랑과 배려와 인내를 배워야 할 시기를 놓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시간 동안 더 많은 범죄자들과 어울릴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기 때문에, 또한 슬픈 현실을 뒷받침 해주는 '통계 자료들' 때문에 편견을 가지게 된다. 그들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에 동정을 보내고, 살아온 인생에 마음아파 해줄 수는 있어도 그들에 대한 두려움을 없에 주지는 못한다. 두려움은 사람들을 방어적으로 만들고 지나친 자기 방어는 결국 과격함으로 나타나기 마련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답이 없다. 책을 좋아하고 특히 문학이라는 분야를 너무나 좋아하지만 가끔씩 작품성과 현실의 벽 사이에 끼여 꼼짝할 수 없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범죄자 특히 성범죄자의 주거지는 반드시 공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과연 그들을 편견없이 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에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책을 덮을 때 까지도 잭의 진짜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다. 소년은 '보이 A' 그리고 '잭'으로만 기억될 것이다. 그 사실이 내내 가슴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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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은 없다 - 2008 대표 에세이
김서령 외 41인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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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지 마 이것들아~ 내가 살아온 인생을 책으로 쓰면 츄럭 100대로도 모자란다. 내가 열 여덟에 느그 할배한테 시집을 와가지고..." 라디오에선 그저 옛노래 한 곡 흘러나왔을 뿐인데... 할매 또 시작이다, 언니가 내게 눈짓을 보내며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일어설 타이밍을 놓쳐버린 나는 두 사람 몫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결국 한 시간 넘게, 50번만 들으면 100번이 될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먹고살기 힘들어 만주로 떠날려다가 그나마 가진 재산 사기당한 이야기, 6/25 때 고향 떠나 피난 간 이야기, 고릿보개 넘기느라 소나무 껍질, 칡뿌리 뽑아 먹던 이야기~ 너무 많이 들어서 거의 외울지경이다. ^^;; 

 

그땐 그랬다. 내가 겪지 않은 이야기,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거짓말처럼 수필이 좋아졌다. 그것도 무게감 있는 내용보다는 개인적이고도 소소한 일상에 촛점이 맞추어진 경수필을 더 좋아한다. "너는 나중에 수필가가 되렴~" 초등학교 때, 일기장 검사를 하시던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가 후에 수필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면 이상하게 들리려나? 수필가가 뭐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글 쓰는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수필은 위대했다. 한 없이 수줍기만 하던 한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간절히 원하는 꿈이 생겼으니 말이다.     

 

수필이 좋은 이유는 정형화된 형식이 없고 주제가 자유로워 편하게 읽히기 때문이다. "수필은 잡탕이어야 한다. 잡식성이어야 한다. (p.5)" 라고 주장한 저자의 생각에 100% 공감한다. 수필에다 어떤 기준을 적용하고 규격화 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그 글은 더이상 수필이 아니다. 왜냐면 수필은 '인간극장'이기 때문이다. 연출가가 있고 편집도 하지만 대본은 없다는 것. 허구가 아닌 저자의 경험과 생각, 느낌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생생한 리얼다큐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읽더라도 '논픽션'이라고 하면 감동이 배가 되는 것처럼 수필은 한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글이기에 더 큰 울림이 있다.  

 

<약산은 없다> 이 책에는 2008년도 에세이스트에 소개된 300여 편의 수필중 42편을 '엄선'해서 수록하였다.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글~ 제대로 된 '잡탕'을 맛볼 수 있다. ^^ 리 땅 지키기위해 농촌으로 내려갔지만 투기바람이 불어 이웃마저 배신하는 현실, 자식들 대학시험 치르는 날 고행하듯 찬바람 맞고 서있던 모정, 스물 아홉에 큰 뜻을 품고 가출하였다가 결국 고래만 잡고 3박 4일만에 귀가한 이야기, 자신에게 혹은 친구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내 마음도 숙연해지는 것 같았다. 이처럼 유년에 대한 그리움과 젊은 날의 추억, 크고 작은 일상이 주를 이룬다.    

 

 수필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문학이다. 이 말에 대해서는 누구나 생각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많지만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참 어렵기 때문이다. 내용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그저 수다스런 말로 그쳐서는 아니될 것이기에 드러나지 않게 주제를 심는 것도 중요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수필이 참 쉬워보인다는 것이다. 고음 파트를 힘 들이지 않고 노래하는 가수처럼 심오함이 느껴진다. 문득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글 한 줄 쓰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인간극장'이요, '수필'의 한 장면인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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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기희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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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크게 떠~!!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구~!! 작년인가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의 론도>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눈이 팽팽 돌았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요리조리 스토리를 얽어 놓고는 능청스럽게 빠져나가 버리더니 마지막에 연이어 반전에 반전을 터뜨리는통에 사람 어리둥절하게 만들던, 나 완전 바보된 기분이었지. ^^;; 이번에는 그냥 당하지 않을거다. 검은 연기가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것 같은 표지를 보면서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는다.    

 
 일가족이 사라졌다. 식지 않은 아침상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들의 생사 여부는 물론이고 누가 이들을 데리고 갔는지, 그날 아침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다. 르포라이터인 이라가시 미도리는 미스테리한 행방불명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사건의 진실을 조사하기위해 마을을 찾는다. 마을 사람들은 5년전 마을의 양대 명문가 중 하나였던 요시가와 가문의 일가족이 살해되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다키자와 가문에 '구로누마'의 전설이 적용된 것이라고 말한다. 신이 이따금씩 초자연적인 힘으로 사람들을 감춘다는, 깊이를 알 수 조차 없다는 검은 늪... 사건도 그렇게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신인작가인 후루타 도모아키는 전철을 타고 귀가하던중 여장한 남자로부터 치한이라는 누명을 쓰고 구타를 당하게 된다. 억울함을 풀기위해 남자의 집까지 미행한 후루타는 그 남자와 닮은 의문의 여인이 사람을 해치는 장면을 목격한다. 후루타는 자신이 경험한 일을 추리소설로 쓰기로 결심하고 그(혹은 그녀)의 주위를 맴돌게 되는데 어느 순간 자신이 '부녀자 연쇄 폭행범'으로 몰리게 되었음을 깨닫고는 당황스러워 한다. 이처럼 소설의 흐름은 초반부터 크게 두 줄기로 흘러간다. 두 사건 사이에는 어떠한 연결고리도 찾을 수 없기에 어느 지점에서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지켜보는 과정이 흥미롭다. 짐작대로 그 부분이 소설의 절정이기도 하고 말이다. ^^
 

 솔직히 중반부를 넘어선 지점까지도 도무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억나는 것은 명문가였던 다키자와 가문이 쇠퇴하는 과정이다. 그래도 한때는 부와 명예를 모두 가졌던 집안인데 그 속은 온통 감추고픈 것들 투성이다. 명문가의 마지막 자존심이랄까. 하나의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한 것 처럼 비도덕적인 행위를 덮으려는 노력때문에 결국은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루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처음부터 경찰을 찾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집착'에 사로잡혀 상대를 뒤쫓는 인물이 되고 만다. 두 사건을 이어주는 것은 결국 구로누마, 검은 늪이다.   

 
같은 작가여서 그런지 <행방불명자>와 <도착의 론도>는 여러 면에서 비교될 수 밖에 없다. '서술트릭'이라는 서술기법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마지막에 휘몰아치듯 반전이 이어지는 결말이 그렇다. 눈 크게 뜨고 절대 속지 않으려 애썼는데... 작가는 또 이렇게 말하겠지. "그건 니 생각이고~ 난 그렇게 말한 적 없어. 다시 한번 읽어봐~" 라고 말이다.  책을 덮고 나서야 깨달았다. 맨 첫장에서 부터 작가의 의도에 말려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맨 첫장부터...;; 나 또 바보 된 거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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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눈물 - 한니발보다 잔인하고, 식스센스보다 극적인 반전
라파엘 카르데티 지음, 박명숙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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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하필 마키아벨리일까, 라는 의문으로 시작했다. 솔직히 팩션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기에는 마키아벨리라는 인물의 부정적인 면이 너무 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군주론'을 통해 권력은 도덕과 분리되어야 하며, 권력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심지어 군주가 국민들에게 했던 약속을 저버려도 된다고까지 주장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냉혹한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 주인공이라니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 과연 그는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런지, '마키아벨리의 눈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읽었다.  

 
 15세기의 피렌체, 도시 곳곳에서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된 시체가 발견된다. 민심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공포와 두려움이 만들어낸 분노의 화살은 누구를 향하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수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벽에 부딛치고 만다. 목격자들의 증언이 지목하고 있는 인물은 부패한 성직자를 비판하고 시민들의 편에 서있던 종교개혁가 사보나롤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개혁가의 억울한 죽음은 물론이고, 그를 지지하던 피렌체의 최고 지도자인 소데리니까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서기관 마키아벨리는 스승인 피치노가 도난당한 수사본이 이번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임을 깨닫게 되고 친구들과 함께 살인범을 뒤쫓는다.      

 
"한니발보다 잔인하고, 식스센스보다 극적인 반전", 솔직히 이 문구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보다' 라는 말은 명백하게 과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컸던 까닭이다. 그동안 속기도 많이 속았고 말이다. 그런데 첫 장면부터 너무 끔찍해서 몸이 굳어버리는 줄 알았다. 어쩜 고문하는 장면을 그렇게 길게, 상세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 '살인자는 아마도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일겁니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기가막혔다. 살인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길래 인간이 이렇게도 잔인해 질 수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내용의 전개는 흩어진 퍼즐들을 모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없는 화가가 모사한 '성모영보'라는 그림, 단테의 수사본, 오래전 피렌체를 떠들석하게 했던 스켄들의 진실과 신비스런 여인 보카도르의 등장까지 이 모든 퍼즐들이 어떻게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될지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작가는 젊은 시절의 마키아벨리를 열정적이고 정의로운 캐릭터로 묘사하고 있는데, 잔혹한 살인마를 쫓는 인물로 마키아벨리 만큼 적당한 인물이 없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후반부의 반전은 감탄사를 자아내기 보다 혼란스럽고 충격적이었다는 것만 말해두고 싶다.  


 
 당시 피렌체가 유럽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던 것은 사실이나 정세는 매우 불안했다. 주변국은 호시탐탐 피렌체를 노리고 있었고 내적으로도 분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책에서도 프랑스 대사 자격으로 피렌체에 머물던 추기경이 무리한 요구를 함으로써 피렌체의 지도자와 마찰을 빚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존했던 마키아벨리도 '주변국과의 교섭'을 담당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군주만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가 <군주론>에서 주장한 내용도 같은 이유로 설명이 된다. 비록 팩션으로 되살아난 캐릭터이긴 하지만 젊은 시절 마키아벨리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어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그림의 완벽해 보이는 아름다움 뒤에는 종종 가장 끔찍한 공포와 견디기 힘든 폭력성이 숨어 있기도 한다는 것을. 그 잘못은 우리 인간들과 그들의 거짓 순수성에 기인하는 거야. (중략) 더 잘 감추기 위해 보여 주고, 더 잘 드러내기 위해 감추는 것. 예술은 그렇게 모순에서 탄생하는 것이지!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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