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 자연과 과학과 사람이 함께 만든 달력 이야기 토토 생각날개 6
김경화 글, 김숙경 그림 / 토토북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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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 생일 이제 몇밤이나 남았어?" / "아들아, 이틀 전에 네 생일이었잖아. ㅠ.ㅜ" / "그래도... 그러니까 다음 내 생일 몇일 남았냐고?" / "삼백 육십 삼일 남았지. ;; "  아이가 1년중 가장 기다리는 날이 있다면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유치원 방학 하는 날, 캠프가는 날... 그 중에서도 자신의 생일만큼 간절히 기다리는 날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삶, 그 삶이 시작된 날이니 어찌 기념하지 않을 수 있나요. 하지만 아이들이란... 1년동안 기다린 생일을 맞고 돌아서면서 다시 삼백일도 넘게 남은 생일을 카운드다운하기 시작하네요. 정말 귀엽죠. ^^
 
연초에 새달력으로 바뀌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달력에다 집안 대소사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시부모님 기제사일과 부모님 생신, 남편과 아이의 생일, 내 생일 그리고 직장에서의 업무가 날짜와 매우 깊은 관계를 가지는 일이라서 각종 스케줄을 달력에다 표시를 해요. 물론 아이의 유치원 행사일이나 준비물 제출일등도 자리를 차지하지는지라 제 탁상달력은 거의 빈틈이 없을 만큼 글자로 빼곡하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달력을 보고 다시 기록하는 것이 일상이예요. 달력이 없다면 이 모든 일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할까요?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 맞습니다. 달리 스승이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한줄만 알고 살아가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그제서야 우리 주위의 현상들에 대해 너무 생각없이 살아왔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요. '달력은 왜 한줄에 7일이야?' 라는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도 그랬어요. 천지창조의 7일과 상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는데 막상 질문을 받으니 대답이 명쾌하지 나오질 않더라구요. 어릴때는 숫자를 배울 때, 10단위에 익숙하잖아요. 그런데 일주일은 왜 7일이고, 매달은 30일도 되었다가 31일도 되었다가 2월은 28, 29일도 되고 도대체 달력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지 너무 궁금해 졌어요.

<달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 책에는 달력에 대한 모든 것이 시원하게 설명되어 있어요. 고대의 사람들은 해가뜨면 하루가 시작되고, 해가 지면 잠을 자는 식으로 달력이 필요없었지만 한곳에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농사도 지어야하고, 사냥도 해야하고, 사람과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날짜 개념이 필요하게 되었지요. 사람들은 달이 찼다가 기우는 모습이나 별자리, 해의 움직임을 이용해서 저마다의 달력을 만들기 시작했고 따라서 나라마다 민족마다 자기들만의 달력을 만들어 사용하였어요. 

어른인 저도 지금의 달력에 음력을 병행해서 쓰니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어요.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 처럼 모든 달력은 장단점이 있어요. 더구나 우리 고유의 절기는 모두 음력으로 되어있지요. 농사를 우선으로 생각했던만큼 계절의 변화와 잘 맞아떨어지고, 계절별로 지켜야 할 것들과 해야 할 일들이 절기별로 잘 표시되어 있어요. 어쨌거나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달력들은 오차를 피할 수 없다고 해요. 지구의 자전과 공전, 달의 인력등 여러가지 요인들때문이지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그레고리력도 몇천년이 지나면 날짜를 손봐야할 날이 오게 된다고 하니 기분이 좀 이상해요. 우리 후손들이 잘 알아서 하겠지만 말이죠. ^^ 

삼백일을 넘게 카운드다운하던 아들... 오늘은 울 아들의 생일입니다. ^^ 달력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들이 그러더군요. 1년에 나이를 한 살씩 먹는다더니 새달력이 바뀌어서 한 살, 생일이니까 한 살, 설날이 지나면 다시 한 살, 1월 한달동안 자기는 세 살이나 먹게 되었다고 너무 좋아합니다. 안그래도 서른 중반에 접어든 엄마는 나이 드는 것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는데 아들은 엄마의 마음을 너무 몰라주는 것 같습니다. ^^;; 

 소중하고 고마운 달력~ 늘 가까이에 있어서 그냥 그렇게 벽에 걸려있고, 책상위에 있어야할 존재로만 알았던 달력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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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타샤
조지수 지음 / 베아르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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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곳적 북미 인디언들은 그들 세계에 물활론적 관념을 부여했다. 북미의 새벽길을 운전할 때면 그들과 공감한다. 어둠 속의 생명들에 둘러싸운 느낌을 받는다. p.9" 

 책의 첫문장을 읽고는 제대로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대여섯번쯤 천천히 반복해서 읽고는 '물활론적 관념'이 뭐더라 하면서 왠지모를 주눅이 든다. 무슨 인문학 서적도 아니고, 책 두깨도 장난아닌데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 지는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 조지는 이른 나이부터 외국에서 유학한 한국인으로 캐나다에서 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주인공의 지적 수준에 맞춘 것인지, 아님 주인공을 대신해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말들을 쏟아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물론 두 가지 다 일수도... ^^) 지금까지 그 어떤 문학책에서도 만나지 못한 아름다운 문장들이 쉴새없이 펼쳐진다.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침묵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이 막막한 무기물의 우주에서, 영혼과 마음은 기적으로 존재하게 되었고 이것은 소통과 이해와 공감에 의해 그 존재 의의를 지탱해 나간다. 기적의 존재 의의는 서로 간의 사랑이다. p.42"

조지는 한국의 가족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자랑스런 존재이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도 총망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랜 유학생활은 그의 내면에 깊은 외로움을 그리고 외로움으로 인한 빈 공간을 남겼던 것 같다. 초반부에는 일상에서의 사소한 사건도 사건이지만 주위의 인물들 위주로 내용이 전개된다. 그들중 유진이란 인물은 유학생에서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가 다시 갑부가 되는 등의 인생역전을 겪는 사람으로 같은 한국인이란 점에서 마음속으로 응원까지 보냈건만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공의 도움을 거절하는등 결국 씁쓸한 기억으로 남고말았다.   
 
그나저나 나스타샤는 언제 나오는거야? 600여 페이지를 1/3이나 읽은 지점에야 비로소 나스타샤가 등장한다. 외진 곳의 커피숍에서 일하면서 영어도 서툰 슬라브여인 나스타샤...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가득찬 눈빛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 조지는 그녀에게 난생처음으로 사랑을 느낀다. 참으로 오랫만에 접하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다. 나라와 국적을 초월하고 학벌이나 경제력, 사회적 위치등 처해진 모든 환경을 뛰어넘어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장면들이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다만 나스타샤를 떠나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결정에는 아직도 공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남아있다. 문체가 너무나 정교하고 현실감있어서인지 논픽션이 아닐까, 작가의 체험이 담긴 내용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는데... 이 부분이 가장 비현실적이고 이해 안되는 설정이다. 한국의 보수적인 부모님들과 다른 가족들조차도 그녀를 인정했는데, 이제 행복한 미래만 남은 것처럼 보였는데, 헤어지지 않고는 방법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랑하기에 떠나보낸다는 그런 식상한 말보다는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이 책의 전반에는 맑은 물이 흐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회만 닿으면 '플라이 피싱'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작가가 실제로 플라이 피싱을 상당히 즐겼으리라 짐작될만큼 상세하면서도 전문가적인 지식이 느껴진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인간을 한없이 작게 만들고, 모든 이기심과 욕심을 투명하게 만든다. 하지만 자연의 일부가 된 인간은 그 어떤 피조물보다도 돋보이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렇듯 이 책에서는 자연과 인간, 문명, 학문, 인종문제, 전쟁등... 인류가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모든 문화적인 현상들이 조금씩 등장한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평범한 소설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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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마을 어린이 리포트 - 14개 나라 친구들이 들려주는 세계 이야기
김현숙 글, 이루다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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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를 보면서 첫눈에 맘에 들었던 이유가 소개된 14개 나라들의 구성이었습니다.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페루, 몽골, 에스파냐, 인도... 순으로 나가는데 우리가 흔히 세계문화를 공부할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들 보다는 생각할 거리가 더 많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진화된 나라는 그 나름대로의 특징과 배울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문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아이에게 우선은 우리와 문화가 확연하게 차이나는 나라, 그리고 환경이 열악하다고 생각되는 나라부터 시작해주고 싶었어요. 다른 문화를 배우기에 앞서 먼저 우리 것, 아이가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주위를 돌아볼 줄 아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바램이 앞선던 것이지요.      

가장 먼저 만난 친구는 캄보디아의 삐치싸라는 친구예요. 아이는 삐치싸라는 친구의 이름이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동화책을 읽으면서 동화작가의 이름이 이상하다고도 자주 말하는데 삐치싸는 특히 낯선 이름이네요. 다른 문화를 만난다는 것은 사는 장소가 다르고, 차림새와 먹거리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물론 언어가 다르다보니 우리 아이에게 특이해 보이는 호칭도 삐치싸에겐 소중한 이름일 거예요. ^^

삐치싸는 리포터가 되어 캄보디아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전해 줍니다. 캄보디아의 낮은 너무 더워서 아침 일찍부터 하루를 시작해요. 일년에 세번이나 벼농사를 할 수 있고, 수산 자원도 풍부할만큼 탁월한 자연조건을 가졌지요.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어요. 아이들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학교와 선생님이 부족해서 배움의 기회를 가지기가 어려워요. 어떤 아이들은 열 살도 채 되기 전에 가족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답니다.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은 캄보디아의 삐치싸 뿐만 아니예요. 인도의 라힘은 부모님의 빚을 갚기 위해 노점에서 일을 해야만 하고, 케냐의 여자 어린이들은 소를 얻기 위해 팔리듯이 시집을 가야만 해요. 거기다 소말리아의 아메드는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어린이였지만 전쟁에 휩쓸려 소년병이 되어야만 했지요. 이스라엘에 사는 알렉스도 어느 누구보다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어린이 랍니다. 

어른들은 쉽게들 말합니다.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새싹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햇볕을 쬐게 해주는등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네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느 곳, 어느 나라에서 어떤 환경에 처한 어린이들이라도 저마다에겐 '희망'이 있다는 사실이예요. 세상 모든 어린이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덮으며, 처음 이 책을 읽을때의 의도처럼 아이한테 너는 행복한줄 알아라... 하는 식의 이야기는 더이상 하지 않기로 했어요. 어쩜 한국의 어린이 리포터가 있었다면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을 전전하며 입시 지옥에 시달려야 하는 우리 아이들이 더욱 불쌍하게 보일지도 모르잖아요. ^^;; 다만, 내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역경이 닥치더라도 지구마을 어린이들이 보여준 용기와 희망과 열정을 떠올리기를 그것만 기억해 주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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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아나 야다몽
사토 다카코 지음, 하라다 타케히데 그림, 홍창미 옮김 / 수린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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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 생일을 맞은 쥬리는 큰할아버지쯤 되는 친척 토쿠다 영감으로부터 이구아나를 선물받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1미터가 넘는 괴물을 떠넘겨받은 것인데 토쿠다 영감의 손자인 쓰토무가 기르다가 감당이 안되던 차에 쥬리네 집을 개축한 사실을 알고는 맡겨버린 것이다. 문제는 토쿠다 영감이 쥬리 아빠가 다니는 학교의 이사장이라는 사실. 이쯤되니 엄마, 아빠는 일단 이구아나를 받아들이고 쥬리에게 돌보라고 명령한다. 
 
"야다몽을 잘 돌본다면 그건 그들이 기대하는 바이다. 잘못한다면 있는 대로 바보 취급을 당하는 데다가 아빠는 모가지다. 그 어느 쪽도 가혹한 이야기다. p.78"

너무나 황당한 쥬리는 이구아나를 돌보는 것이 정말 싫다. 결국은 '싫어'라는 뜻의 '야다몽'을 이름으로 지어주고, 이구아나를 기르는 이상한 아이로 소문이 날까봐 친구들에게도 이 사실을 숨긴다. 이 이상한 동물은 더워서 땀이 흐를만큼의 실내 온도를 유지해 주어야 하고, 특별히 신경써서 만든 셀러드를 먹여야 하고, 한번씩 탈피도 하는데다, 가끔씩 자신의 공간을 탈출해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고, 식욕부진에 걸려 애를 태우기도 하는등 많은 사건 사고를 만든다. 정작 야다몽 자신은 천연덕스럽게도 쥬리네 가족을 위해 만든 선룸을 떡허니 차지하고는 먹고 싸는 일밖에는 할줄 모르면서 말이다. 

"저기, 엄마, 있잖아. 이구아나를 한 두 마리만 더 키울 수는 없을까?" / "너, 정말, 그렇게, 그렇게, 그 도마뱀이 좋아진 거니?"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랑이 싹텄던 때문은 아니다. 생명은 소중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결국, 그 숙스러운 말은, 입밖으로 내지 못했다. p.189

몇페이지만 읽으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 것이라는 예상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즐겁게 읽었다. 애초부터 하고 싶지 않았던 이구아나 돌보기를 통해 쥬리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구아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는 과정이 너무나 예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구아나를 버리기위해 들고 나갔다가 돌볼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여의치 않자 날이 너무 추워서라는 이유를 대며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어린 소녀의 착하고 순수한 면을 엿보게 한다.   

"눈을 뜨자, 야다몽의 새카맣고 맑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가 보였다. 귀엽지만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눈동자. 처음에는 바보라고 생각했다. 아무 생각도 없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다만, 인간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뿐. 이구아나에게는 이구아나의 사고방식이 있고, 그것을 인간이 알 수는 없는 것이었다. p. 225"

'이구아나에게는 이구아나의 사고방식이 있다.'는 말이 특히 가슴에 와닿는다. 인간은 항상 자연이 인간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그렇다고 단정짓고는 해석해 버린다. 이구아나를 키우는 것이 까다로와 보이는 것은 이구아나의 잘못이 아니다. 그네들이 사는 곳의 생태계에 가장 잘 맞게 적응된 것을 애완용으로 가지려고 하다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구아나를 하나의 생명체로, 그들만의 방식을 인정해 주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아, 나도 꿈꾸고 싶다. 초록빛 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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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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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솔직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퇴폐적이라든지 충격적이라는 말로는 이 책을 제대로 표현했다고 하기엔 부족하다. 우선 소재가 좀 그렇다. 하지말라고 하면 더 하고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라고 '금지된 사랑'이나 '손가락질 받을 사랑'일지라도 누군가를 향한 감정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은 내용에 빠져들어 함께 안타까워하고, 고민하고, 울고 웃기를 반복하게 된다. 하지만...이건 좀 아니다 싶다. 하여튼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의 소설이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한심함을 드러내고 있는 내 하나뿐인 혈육. 그 한사람만의 은밀한 퇴폐가 황홀했다. 역시 내 남자는 너저분해도 아름다웠다. p.41" 
 
사랑하면 눈이 먼다. 내 남자가 어떤 모습이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세상의 모든 딸들은 아버지라는 존재가 '남자'의 첫 모델이 된다. 나 또한 어린시절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긴 남자인줄 알았고, 제일 예쁜 여자의 모델은 엄마였던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퇴폐'라든지 '너저분함'이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데...;; 하나뿐인 딸의 결혼식에 한참이나 늦게, 그것도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난 아버지. 그 아버지를 아름답다고 말하는 딸의 모습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이 부녀, 많이 수상하다. 

"원래 내 것이었어. 그 아이, 전부가. 다 내 거야. p.314" 참으로 위험한 말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소유하고 소유당하는 관계가 아니다. 부모는 자식의 '보호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지만, 그게 전부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다. 인간은 소유 개념으로 설명될 수 없는 존재다. 준고는 어린시절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고, 결국 '위험한 어른'으로 자랄 수 밖에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전형적인 범죄자보다 '치명적인 칼'을 숨긴 준고의 경우가 더 심각하다. 

"딸은 엄마예요. 그래서, 다, 딸을 좋아하는 거예요. p344 " 문제는 준고에 의해 길러진 하나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 이 어린 소녀는 준고에게 딸도 되었다가 엄마도 되었다가 때론 연인도 되었다가 하는 식으로 준고의 소유욕을 완벽하게 채워준다. 둘은 너무나 닮았다. 지독한 외로움도 서로에 대한 욕구도... 자신은 아빠 거니까. 아빠 손에 죽어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는 하나의 당찬 모습이 섬뜩하게 와닿는다.

준고와 하나의 사랑에는 안타까움보다 충격이 더 크다. 전혀 아름답지도, 달콤하지도 않다. 하나에 대한 준고의 사랑은 광적인 집착일 뿐이고, 하나의 사랑은 본능적인 자기 방어일 뿐이다. 세상에 홀로 남겨졌을 때, 자기를 돌봐줄 사람이 준고밖에 없다는 절실함에서 비롯된, 준고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한다는 강박증이 불러온 결과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관계에 익숙해져 버리는 것이다. 때론 익숙함이 더 무섭다. 

 처음부터 둘의 사랑엔 눈꼽만큼의 안타까움도 없었다. 물론 둘을 따로 떼어놓았을 때 인간적인 동정은 느끼지만 말이다. 오히려 한때 준고를 사랑했었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지만 하나때문에 준고를 떠나야 했던 고마치와 하나와 결혼한 요시로 이 두사람이 더 안쓰럽다. 그리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두 사람의 영혼은 말할 것도 없다. 이상하게도 이런 소설에서는 죄 없는 주변인들이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나쁜 사람' 인것 처럼 서술되는 것이 불만스럽다.   

"빼앗기며 자라, 커다란 동공이 된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다시 빼앗아, 살아남는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인지도 모른다. 어른이지만, 성숙하지 않고 썩어 갈 뿐이다. p.347" 이 한마디가 준고를, 이 소설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충격적인 소재를 통해 이미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술술 잘 읽히고, 
문체가 수려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포장만 잘 한다고 해서 본질적인 문제가 감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쇼킹함' 외에는 남는 것이 없다. 이 책의 진정한 작품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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