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타샤
조지수 지음 / 베아르피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태곳적 북미 인디언들은 그들 세계에 물활론적 관념을 부여했다. 북미의 새벽길을 운전할 때면 그들과 공감한다. 어둠 속의 생명들에 둘러싸운 느낌을 받는다. p.9" 

 책의 첫문장을 읽고는 제대로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대여섯번쯤 천천히 반복해서 읽고는 '물활론적 관념'이 뭐더라 하면서 왠지모를 주눅이 든다. 무슨 인문학 서적도 아니고, 책 두깨도 장난아닌데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 지는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 조지는 이른 나이부터 외국에서 유학한 한국인으로 캐나다에서 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주인공의 지적 수준에 맞춘 것인지, 아님 주인공을 대신해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말들을 쏟아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물론 두 가지 다 일수도... ^^) 지금까지 그 어떤 문학책에서도 만나지 못한 아름다운 문장들이 쉴새없이 펼쳐진다.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침묵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이 막막한 무기물의 우주에서, 영혼과 마음은 기적으로 존재하게 되었고 이것은 소통과 이해와 공감에 의해 그 존재 의의를 지탱해 나간다. 기적의 존재 의의는 서로 간의 사랑이다. p.42"

조지는 한국의 가족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자랑스런 존재이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도 총망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랜 유학생활은 그의 내면에 깊은 외로움을 그리고 외로움으로 인한 빈 공간을 남겼던 것 같다. 초반부에는 일상에서의 사소한 사건도 사건이지만 주위의 인물들 위주로 내용이 전개된다. 그들중 유진이란 인물은 유학생에서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가 다시 갑부가 되는 등의 인생역전을 겪는 사람으로 같은 한국인이란 점에서 마음속으로 응원까지 보냈건만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공의 도움을 거절하는등 결국 씁쓸한 기억으로 남고말았다.   
 
그나저나 나스타샤는 언제 나오는거야? 600여 페이지를 1/3이나 읽은 지점에야 비로소 나스타샤가 등장한다. 외진 곳의 커피숍에서 일하면서 영어도 서툰 슬라브여인 나스타샤...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가득찬 눈빛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 조지는 그녀에게 난생처음으로 사랑을 느낀다. 참으로 오랫만에 접하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다. 나라와 국적을 초월하고 학벌이나 경제력, 사회적 위치등 처해진 모든 환경을 뛰어넘어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장면들이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다만 나스타샤를 떠나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결정에는 아직도 공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남아있다. 문체가 너무나 정교하고 현실감있어서인지 논픽션이 아닐까, 작가의 체험이 담긴 내용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는데... 이 부분이 가장 비현실적이고 이해 안되는 설정이다. 한국의 보수적인 부모님들과 다른 가족들조차도 그녀를 인정했는데, 이제 행복한 미래만 남은 것처럼 보였는데, 헤어지지 않고는 방법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랑하기에 떠나보낸다는 그런 식상한 말보다는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이 책의 전반에는 맑은 물이 흐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회만 닿으면 '플라이 피싱'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작가가 실제로 플라이 피싱을 상당히 즐겼으리라 짐작될만큼 상세하면서도 전문가적인 지식이 느껴진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인간을 한없이 작게 만들고, 모든 이기심과 욕심을 투명하게 만든다. 하지만 자연의 일부가 된 인간은 그 어떤 피조물보다도 돋보이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렇듯 이 책에서는 자연과 인간, 문명, 학문, 인종문제, 전쟁등... 인류가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모든 문화적인 현상들이 조금씩 등장한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평범한 소설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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