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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평점 :
흠... 솔직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퇴폐적이라든지 충격적이라는 말로는 이 책을 제대로 표현했다고 하기엔 부족하다. 우선 소재가 좀 그렇다. 하지말라고 하면 더 하고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라고 '금지된 사랑'이나 '손가락질 받을 사랑'일지라도 누군가를 향한 감정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은 내용에 빠져들어 함께 안타까워하고, 고민하고, 울고 웃기를 반복하게 된다. 하지만...이건 좀 아니다 싶다. 하여튼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의 소설이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한심함을 드러내고 있는 내 하나뿐인 혈육. 그 한사람만의 은밀한 퇴폐가 황홀했다. 역시 내 남자는 너저분해도 아름다웠다. p.41"
사랑하면 눈이 먼다. 내 남자가 어떤 모습이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세상의 모든 딸들은 아버지라는 존재가 '남자'의 첫 모델이 된다. 나 또한 어린시절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긴 남자인줄 알았고, 제일 예쁜 여자의 모델은 엄마였던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퇴폐'라든지 '너저분함'이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데...;; 하나뿐인 딸의 결혼식에 한참이나 늦게, 그것도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난 아버지. 그 아버지를 아름답다고 말하는 딸의 모습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이 부녀, 많이 수상하다.
"원래 내 것이었어. 그 아이, 전부가. 다 내 거야. p.314" 참으로 위험한 말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소유하고 소유당하는 관계가 아니다. 부모는 자식의 '보호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지만, 그게 전부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다. 인간은 소유 개념으로 설명될 수 없는 존재다. 준고는 어린시절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고, 결국 '위험한 어른'으로 자랄 수 밖에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전형적인 범죄자보다 '치명적인 칼'을 숨긴 준고의 경우가 더 심각하다.
"딸은 엄마예요. 그래서, 다, 딸을 좋아하는 거예요. p344 " 문제는 준고에 의해 길러진 하나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 이 어린 소녀는 준고에게 딸도 되었다가 엄마도 되었다가 때론 연인도 되었다가 하는 식으로 준고의 소유욕을 완벽하게 채워준다. 둘은 너무나 닮았다. 지독한 외로움도 서로에 대한 욕구도... 자신은 아빠 거니까. 아빠 손에 죽어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는 하나의 당찬 모습이 섬뜩하게 와닿는다.
준고와 하나의 사랑에는 안타까움보다 충격이 더 크다. 전혀 아름답지도, 달콤하지도 않다. 하나에 대한 준고의 사랑은 광적인 집착일 뿐이고, 하나의 사랑은 본능적인 자기 방어일 뿐이다. 세상에 홀로 남겨졌을 때, 자기를 돌봐줄 사람이 준고밖에 없다는 절실함에서 비롯된, 준고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한다는 강박증이 불러온 결과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관계에 익숙해져 버리는 것이다. 때론 익숙함이 더 무섭다.
처음부터 둘의 사랑엔 눈꼽만큼의 안타까움도 없었다. 물론 둘을 따로 떼어놓았을 때 인간적인 동정은 느끼지만 말이다. 오히려 한때 준고를 사랑했었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지만 하나때문에 준고를 떠나야 했던 고마치와 하나와 결혼한 요시로 이 두사람이 더 안쓰럽다. 그리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두 사람의 영혼은 말할 것도 없다. 이상하게도 이런 소설에서는 죄 없는 주변인들이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나쁜 사람' 인것 처럼 서술되는 것이 불만스럽다.
"빼앗기며 자라, 커다란 동공이 된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다시 빼앗아, 살아남는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인지도 모른다. 어른이지만, 성숙하지 않고 썩어 갈 뿐이다. p.347" 이 한마디가 준고를, 이 소설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충격적인 소재를 통해 이미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술술 잘 읽히고, 문체가 수려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포장만 잘 한다고 해서 본질적인 문제가 감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쇼킹함' 외에는 남는 것이 없다. 이 책의 진정한 작품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