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 악녀 이야기
시부사와 타츠히코 지음, 이성현 옮김 / 삼양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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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미이든 혹은 나쁜 뜻으로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인들에 관한 책을 자주 접하고자 하는 편이다. 우리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를 통틀어 '여인'으로서 이름을 남기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과연 그녀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크기 때문이다. 사실 비슷한류의 책을 몇권만 비교해 보아도 소개하는 인물들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처음 '악녀 이야기'라는 제목을 보고는 머리속에 떠올렸던 클레오파트라와 메리 여왕, 마리 앙뜨와네뜨, 측천무후같은 여인들... 역시나 등장한다. 그리고 소개된 15인중 반수 정도는 낯선 이름이어서 괜시리 반가웠다. 비록 악녀이긴 하지만 그녀들이 뿜어내는 포스에 기꺼이 사로잡히고픈 마음이다.   
 
'아름다운 것은 치명적인 것과 함께 온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 문장이 입가에 맴돌았는데 어디서 읽었더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생각해 냈다. 무용가 최승희를 주인공으로한 <나는 춤이다>라는 소설에서 보았던... ;; 어쨌거나 '악녀이야기'를 풀어놓은 이 책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말이다. 아름다운 것이 치명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름다움 속에 '독'이 있기 때문이며, 그것도 한번에 약기운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빠져드는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악녀들은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이용해 최고 권력자를 무력화 시키고 부와 권력을 마음껏 휘둘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녀들은 정말 악녀였을까?' 라는 생각. 물론 몇몇 여인들은 권력을 위해 주변사람들과 남편, 가족들 심지어 자식까지 죽였을만큼 사이코 패스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클레오파트라의 경우 로마로부터 조국을 구하기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던졌을 뿐이고, 음란한 악녀로 꼽은 루크레치아 보르자는 아버지와 남자 형제에 의해 거듭 정략결혼은 올려야 했고, 엘리자베스와 메리 여왕의 경우도 어린 시절 겪은 비참한 가족사를 생각하면 정상적인 것이 도리어 이상할 정도다. 

악녀, 악녀, 악녀~!! 계속되는 세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워할 수 없는 그녀들(일부 제외)이란 생각과 함께 오히려 측은하기까지 하다. 기억하건데 앞서 언급한 악녀들을 포함해서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여인들이 '역사를 빛낸' 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소개된 책도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은가. 역사는 어떻게 조명하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법. 그녀들은 본능적인 악을 표출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남고자 몸부림쳤던 것은 아닐까. 어쩔 수 없이 더 강해져야만 했고, 더 악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인데 그러면서도 결국은 권력에 의해 이용당하고 내쳐지면서 '악녀'라는 낙인까지 찍혀야만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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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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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표지를 보았을 때는 뭐랄까... 스릴러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검은 바탕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나비인지 나방인지가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는 날벌레를 연상시켰던 것이다. 거기다 제목은 또 어떤가. 글자 그대로 죽음이 중지되었다고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죽음의 가운데 손가락' 쯤 되는 줄 알았다. ^^;; 나이가 들수록 자꾸만 이해력이 떨어지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저자가 주제 사라마구라는 사실을 잠시 간과했던 탓이 크다. 그가 아니면 누가 감히 죽음 없는 세상이라는 엄청난 설정으로 소설을 쓸 생각을 했겠는가. 
 
한마디로 "이 책은 '반전드라마' 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섬짓하면서도 치명적인... 가령 한 여자를 너무나 사랑한 주인공이 악마와 거래를 한다. 자신의 삶이 다하는 날 까지 그녀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이다. 주인공은 소원대로 그녀와 늘 함께 한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녀는 '귀신'이다. 이건 아니잖아~!! 라고 절규하는 주인공에게 악마는 이렇게 말한다. 약속을 지켰을 뿐이라고, 죽을 때까지 그녀와 함께 할 수만 있게 해달라고 했지 '살아있는' 혹은 '죽어있는' 이라는 옵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물론 책에서는 특정 인물의 거래로 사건이 시작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어떠한 조짐이나 이유에 대한 설명도 없다. 첫장면에서 죽음이 중지되었다고 선포하듯 내용이 시작될 뿐이다. 새해 첫날 이제부터 아무도 죽지 않는다. '죽음 없는 사회'라니 이 얼마나 환상적인가. 고대로부터 인간은 유한한 삶을 뛰어넘는 '영원한 삶', '불사의 존재'를 꿈꾸어 왔다. 그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열광한다. 새로운 세상, 이곳이야 말로 파라다이스라고 외치면서 기쁨을 나눈다. 더이상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없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말도 사라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뭔가 찜찜함은 남아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콕 찝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첫장면으로 잘못 편집된 것만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역시나 죽음의 중지는 꿈의 실현이 아니라 재앙임이 드러난다. 임종을 앞둔 노인들은 죽었다고도 그렇다고 살았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고, 사고로 실려온 사람들은 고통속에서 죽음을 달라고 부르짖는다. 장례업과 관련된 직종들은 파산 위기에 몰리고 사회를 정신적으로 받쳐주던 종교계도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죽음이 없으면 부활도 없는 것. 종교라는 자체가 무의미해 진다. 

 책장을 넘길수록 너무나 무섭고, 잔혹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죽음이 중지되었기때문에 비롯된 문제들이다. 순식간에 혼란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사회, 죽음이 사라져버린 극단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죽음 자체가 희망이고 답이 되어 버린다. 환자들의 인위적인 죽음을 놓고 살인인가를 논쟁하는 사람들, 그 과정에서 이권을 챙기려는 검은 세력들도 등장한다. 죽음이 유효한 국경지대의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정치적인 문제도 커져만 간다. 그래서 이 책이 '반전드라마'인 것이다.

<죽음의 중지> 설정부터 전개, 결말에 이르기까지 <눈먼 자들의 도시>와 흡사한 정말이지 주제 사라마구 스러운 책이다. 너무나 엉뚱한 설정이지만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개가 그렇다. 앞서 읽었던 <수도원의 비망록>의 경우는 좀 어려웠던 기억이 있는데 이 책의 중반부터 등장하는 '죽음의 신'이 그러하다. '죽음의 중지'에서 살짝 벗어나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처럼 새로우면서도 부분적으로는 난해하기도 하다. 

 '삶이 아름다운 것은 유한성에 있다.' 라는 말을 자주 써먹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유한성'의 의미가 단절이나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만큼 끈질긴 생명체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재확인 했다고나 할까. 혹자는 지구의 마지막날에 살아날 확률이 가장 높은 생명체는 무엇무엇이다 라고들 하지만 누가 뭐라해도 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삶의 길이도 중요하지만 역시 '질'이 우선이다 하는 것. 금기사항처럼 덮어두었다가 한번씩 이슈가 되는 '존엄사' 문제에 대해서도 사회적인 고민이 필요한 때다. 삶과 죽음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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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명작 영화 50
노비친 지음, 박시진 옮김 / 삼양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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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독서' 라고 대답하면서도 정작 '요즘 읽을만한 책 추천해주세요~' 라는 말을 들으면 머뭇거리게 되고,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에서 어떤 책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라는 질문을 받아도 역시나 주춤한다. 그러다가 겨우 나오는 대답이란 것이 책은 장르도 다양하고 각자의 취양이 다양하다 보니 선듯 추천하기가 어렵고,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어린왕자',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빨간 머리 앤' 같은 20여년 전에 읽은 책만 떠올라 서로 민망하기만 하다. ^^;;  하지만 '명작'의 힘이란 것이 그렇다. 처음 읽었을 때의 강렬함이 평생토록 지속되는 것. 수많은 책을 읽어도 '가장 ~한' 이란 수식을 붙일 수 있는 책은 손에 꼽힌다는 것. 

영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장르가 워낙 다양하다보니 100만 관객 정도 넘어선 대작이 아니라면, 상대방의 취향을 고려하다 보면 선듯 추천하기 힘든 것이 영화이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내 맘속에 지워지지 않는 '명작 영화'는 손에 꼽힌다. 가장 먼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는 명대사를 남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생각난다. 전쟁으로부터 가족과 자신을 지키기위해 강한 여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스칼렛 오하라의 삶, 그리고 레트 버틀러와의 엇갈리는 사랑에 안타까워 하며 너무나 감명깊에 봤던 영화다. <사랑과 영혼> <쉰들러 리스트> <타이타닉>도 감명깊에 봤던 영화다. 그리고 명작이라 하기엔 그렇지만 홍콩 르와르 영화로서는 빼놓을 수 없는 <영웅본색>, 대표적인 신데렐라 영화인 <프리티 우먼>, 한 때 국내에서 많은 팬을 확보했던 소피 마르소 주연의 <라붐> <유 콜 잇 러브>도 기억에 남고, 학창시절 단체 관람했던 영화로는 <아마데우스>가 기억에 남는다.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명작 영화 50> 이 책 처음 펼친 대부분의 독자들은 아마도 자신이 보았던 영화가 몇 편이나 될까 혹은 내가 꼽은 명작과 얼마나 일치할까 하는 생각으로 영화 목록을 살폈을 것이다. 일단은 좀 놀랐다. 소개된 50편의 영화들중 감상했던 영화는 열 편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내가 꼽은 명작은 한 편도 실려있지 않다는 사실. 두둥~ ;; 저자는 명작 영화 50편을 선정함에 있어서 '영화사를 통틀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친 영화를 선정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영화들이 흑백영화로 오늘날에는 새로울 것도 없는 기법들을 처음 시도한 영화이거나 특정 장르를 새롭게 선보인 '원조격' 영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에 소개된 영화들 중 도둑맞은 자전거를 찾아 헤메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그린 <자전거 도둑>이 무척 기억에 남는다. 거리의 벽에 전단지를 붙이는 일을 하기위해서는 자전거가 필수였고, 더이상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부자는 자전거를 되찾는 일에 모든 희망을 걸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분해되어 팔렸을 자전거의 각 부속품이라도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리고, 특수효과가 없던 시절 콜로세움에서의 전차 경기를 완벽하게 재현해 낸 <벤허>에 관해 15분짜리 경기 장면만 기억한다면 나머지 3시간 15분은 잊어도 좋다는 저자의 단호함에 한참을 웃었다. 또한 세 편의 영화로 자신의 이름을 영화사에 각인시킨 '제임스 딘' 이라는 배우는 영원한 반항아 이면서 동시에 모성애를 자극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에 대해 어떤 연기를 해도 제임스 딘 본인이라는 주장에 공감이 갔다. 

 사실... 개봉일에 맞추어서 원하는 영화를 봐야만 직성이 풀릴만큼의 영화 마니아는 아니다. 하지만 극장이란 곳이 어지간해서는 혼자 찾는 공간이 아닌지라 친구들이나 남편과의 추억이 특정 영화와 함께 소중한 추억으로 남은 경우가 많다. 결혼 후에는 이상하게도 영화 한편 느긋하게 관람한 여유가 없어 영화원작이나 영화를 소개한 책을 만나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비록 최근 개봉작이 아닌 오래된 영화들 위주로 되어있긴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 봄직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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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내기한 선비 샘깊은 오늘고전 8
김이은 지음, 정정엽 그림, 김시습 원작 / 알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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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은 김시습의 <금오신화>, 최초의 한글소설은 허균의 <홍길동전>, 최초의 현대소설은 이광수의 <무정>... 국어라고해서 읽고 느끼고 이해하기만 해서 되는 것은 아니더라. 가끔씩은 암기도 필요하더라. 시도 외우고, 시조도 외우고, 국사처럼 연대도 외우고 특히 <금오신화>의 경우는 시험 문제로도 자주 출제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홍길동전'이나 '무정'은 진작에 읽어보았는데 '금오신화'는 제목만 선명할 뿐 내용은 새롭기만 하다.     
 
<부처님과 내기 한 선비> 이 책은 '금오신화'에 수록된 작품중 '이생규장전(이생이 담 안을 엿보다)', '만복사저포기(부처님과 내기 한 선비)' 두 편을 소개하고 있다. '이생이 담 안을 엿보다'에서는 성균관 학생 이생과 최씨 처녀가 서로 눈이 맞아 이생이 월담을 하여 정을 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두사람은 부모의 반대로 이별을 겪는등 우여곡절 끝에 부부가 되어 행복을 누리는듯 하지만 '홍건적의 난'으로 인해 안타까운 결말을 맞는다. '부처님과 내기 한 선비'에서는 주인공 양생이 만복사에서 부처님과 내기를 하여 이긴 댓가로 아리따운 처녀와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알고보니 왜구에 의해 죽임을 당한 처녀귀신이더라 하는 내용이다.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은 '조선시대 맞아? 참 파격적이네~'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피 끓는 청춘남여라지만 열정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폭탄같은 사랑이다. 이생과 최씨 여인은 담을 사이에 두고 서로 희롱하다가 급기야 최씨 여인의 방에서 정을 통하게 되고, 양생의 경우는 처음 만나던 날 아예 신방을 차려 버리니 이생과 최씨 보다 더한 경우다. 조선시대하면 유교적인 분위기가 떠오르겠지만 시기적으로 조선초기라서 그런지 '절'이라는 공간적 배경도 그렇고, 남여간의 애정 표현에 있어서도 고려때의 자유로움이 고스란히 묻어난듯 하다. 

그렇다면 이 책이 단순히 남여간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씌여진 것이란 말인가? 저자는 당대 손꼽히는 문장가였던 김시습이 아니던가. 두 편의 작품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렇다. 주인공들의 사랑을 통해서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두 남자주인공이 일편단심으로 한 여인만을 바라보고 사랑하였으니 임금에 대한 죽어서도 변하지 않을 충성심을 말하고자 함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왕위찬탈, 단종 복위 시도, 사육신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교차되는 오만가지 생각들을 추스려 글로 쓴 것이 바로 '금오신화'는 아닐까. 아름다우면서도 기묘하고, 판타지 스러우면서도 왠지 쓸쓸한 느낌이다.    

한문소설인 만큼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약간은 거리감이 느껴질 법도한데 문장이 참 매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한문학을 전공한 소설가 김이은님의 섬세함 덕분이 아닌가 싶다. 또한 '부처님과 내기 한 선비'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읊은 시들을 최대한 살려 고문의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한 노력이 엿보인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남여간의 사랑이라는 줄거리가 살짝 부담되긴 하지만 김시습이라는 작가와 시대적 배경, 수려한 문장을 비롯한 이 책의 가치등을 생각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꼭 접해보아야 할 고전중의 고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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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가는 길 - 일곱 살에 나를 버린 엄마의 땅, 스물일곱에 다시 품에 안다
아샤 미로 지음, 손미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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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어린 시절을 되짚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드디어 인도로 돌아가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인도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그곳이 바로 내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 (p.17)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부터 왔고 또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은 누구나 한번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더구나 나의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다면, 다른 친구들과 달리 엄마가 나를 낳아주신 분이 아니라면 궁금증이나 혼란스러움이 클 수 밖에 없다. 책의 저자인 아샤 미로는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스페인으로 입양되어 자랐다. 이제 성인이 된 그녀는 자신에게 생명을 준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 친부모님과 자신의 어린시절을 되돌아 보고자 결심한다.  

"나는 사람들이 순수한 혈통에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할 때면 온몸이 떨리곤 한다. 물론 순수한 피를 물려받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생명이 주어진 후에 우리 부모님이 지금껏 베풀어주신 한없이 많은 사랑과 물려주신 수많은 것을 역시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p.28)

 아샤의 양부모님은 '더할 수 없을만큼'의 큰 사랑으로 아샤를 키웠다. 입양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든지 아샤를 키우면서 기록한 일기장이 책의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는데 이따금씩 눈물이 맺힐정도로 감동적이다. 그분들은 언젠가 아샤가 크면 아샤의 여동생 파티마(역시 입양된 인도소녀)와 함께 온 가족이 인도를 방문할 계획을 세우셨다고 한다. 어쩌다보니 아샤 혼자 인도로 떠나게 되었지만 아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믿고 지원해주시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셨다.

"무엇이든 알면 알수록, 뭔가 이야기의 윤곽이 잡혀가면 갈수록 더 많이 것이 알고 싶어지는 법. 또 닥쳐올 일에 대한 두려움을 일단 극복하고 나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그 어떤 일이 됐든 간에 있는 그대로 그것을 마주할 용기가 생긴다." (p.209)

 아샤가 인도의 고아원에서 수녀님들과 면담을 했을 때, 수녀님들은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지금 아샤가 누리는 것들과 앞으로 해야할 일만 생각하라고 하셨다. 물론 수녀님들은 아샤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다. 하지만 아샤가 원하는 것은 덮어두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태어나 입양되기까지 일어났던 '진실'을 아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왜 자신을 버렸는지... 어찌보면 '진실'이 '거짓'보다 더 잔인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기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책의 내용중 아샤가 현지인들에게 '저는 어떤 계급일까요?' 라는 비슷한 질문을 한적이 있는데 이것은 아샤가 인도인들을 대할때 그들을 더 잘 이해하고 혹시나 범할지 모르는 실수를 막기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샤에게 '당신은 외국인이니 계급이 중요하지 않다.' 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말과 행동, 몸짓 하나하나까지 인도인들에게는 아샤가 외국인일 뿐이었다. 아샤의 경우도 인도는 오랫동안 동경해온 마음의 안식처와 같은 곳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열악한 생활환경, 고된 노동, 교육의 기회조차 없는 아이들... 아샤는 그제서야 친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하게 된다.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도 많은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보내는 국가들중 하나다. 가끔씩 방송을 통해 해외로 입양되었던 아이들이 성장해서 한국을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그들이 한국행을 꿈꾸고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아픔이 있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엄마에게 가는 길'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되기를, 그리고 변화되기 시작한 우리 사회에도 인식의 변화가 가속화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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