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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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일어난 사건을 추적하는 르포작가
그 작가는 20명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한 남자를 쫓는다.
가고시마 시 시로야마 동굴에서 6명의 여자와 함께 자살해 일본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남자... 그 남자의 이름은 기우라 겐조였다.
기우라는 오랜 전통을 가진 여관 하기노야를 점거해 여관을 탈취하고 그 여관의 주인 부부를 포함 여러 사람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죄목으로 쫓기던 중 이런 집단자살이라는 형태로 스스로를 드러냈다.
이렇게 잔인하게 여관 주인 부부을 살해하고 빼앗은 범죄자임에도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 자살을 택한 여자들이 있다는 건 그의 잔인한 범죄와 어딘가 어긋나 보이는데 그건 아마도 기우라 그가 가진 이중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잔인하게 살해를 지시하면서도 범죄자 특유의 화가 나거나 분노한 모습이 아닌 조용하고 이지적인 태도를 보이는 어딘지 철학적이고 관조적인 남자... 그가 바로 기우라였다.
이 작가의 전작인 `크리피`에서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범죄를 다뤘지만 조용히 그 목표물에 접근해서 그 집 사람들의 호의를 얻거나 혹은 은근한 위협을 가해 둥지를 틀고앉아 슬금슬금 그 집에 대한 소유권을 빼앗아버린 후 누군가가 깨닫기도 전에 사라진다.
집안사람들이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모든 건 끝난 상태, 더 이상 자신들이 어찌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마침내는 누군가의 손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린다는 이야기가 주요 얼개인데 이 책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주인공이자 이 모든 범죄를 저지르는 남자인 기우라는 도쿄대 경제학부를 나와 부교수까지 한 인텔리이지만 일본의 류진 연합이라는 전국구 폭력단의 조장 딸과 결혼을 한 후 6개월도 지나지 않아 그 여자를 목졸라 살해한 혐의로 12년간 감옥생활을 한 특이한 이력을 가진 남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 남자를 아는 사람들로부터의 평가도 많이 엇갈린다.
누군가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눈빛을 가진 점잖은 남자라는 평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칼과 같은 눈빛을 가진 무서운 남자라는 평가...아마도 이맇게 극단적으로 평가가 갈리게 된 계기는 아내를 죽인 사건때문이고 그의 인생이 달라지는 터닝포인트가 된다.
이렇게 작가가 그의 발자취를 따라 기우라가 과연 그때 그 여관 하기노야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왜 그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건지를 밝혀가고 있는데 읽을수록 그 뒷맛이 개운치 않다.
차라리 돈을 노리고 스스로 피를 묻혀가며 살인을 했더라면 좀 더 납득하기 쉬웠을걸 이 남자 기우라는 스스로의 손이 아닌 가족 중 한 사람의 손으로 그들을 처단하는 잔인한 방법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는다.
결국 피해자를 끌어들여 자신의 범죄에 이용해 가해자로 만드는 방법을 써서 그들이 도망을 가지도 못할 뿐 아니라 신고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치밀함을 보이는데 그 태도조차 늘 한발 뒤에서 모든 걸 지켜보는듯하다. 마치 자신은 이 모든 것과 상관없다는 듯이...
타고난 머리를 가지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승승장구하던 남자가 왜 폭력단의 여자를 아내로 맞는 위험을 감수한 건지... 그 위험을 감수하고 한 결혼을 왜 6개월도 지나지 않아 그렇게 폭력적인 방법으로 끝내버려야 했는지 그 이유가 밝혀졌음에도 그 남자의 선택을 이해하기보다 찝찝함이 남아있다.
희생자들이 반항할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어두운 범죄에 순식간에 끌려들어 가는 모습이 섬뜩하기도 하고 이런 범죄가 터무니없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으면서 더 찜찜해졌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까지 이용할 수 있는지 그 최악의 사례를 보여줬달까...
과연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그들처럼 무기력하지 않고 발을 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씁쓸한 뒷맛을 남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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