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

박쥐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스노우맨에서의 해리는 어둡지만 강하고 빠르고 영리했다면 

레드브레스트의 해리는 젊고 강하면서도 밝았다.

그리고 해리가 처음 나온 박쥐에서의 그를 평가하라면...박쥐에서의 그는 여리고 미숙하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라고 말하고 싶다.그래서 상처를 받으면 온몸으로 아파하고 비틀거리면서도 그의 지금 모습 그대로 직진하는 올곧은 모습도 보인다.

만약 나에게 어느 모습의 해리가 좋은가 하고 묻는다면..염세적이면서 빠른 직관과 행동력을 보였던 스노우맨에서의 해리가 가장 좋지만 그럼에도 어딘지 안쓰럽고 연민을 자아내는 박쥐의 해리도 못지않게 좋다고 말하고 싶다.

박쥐를 처음 손에 들었을땐 처녀작이기에 조금은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거장이라고 해도 처녀작에서는 어느 정도 미숙함을 보일수 있기에...

어쩌면 그래서 박쥐부터가 아닌 스노우맨을 우리가 맨 먼저 만날수 있었던건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우중충한 날씨와 눈이 덮힌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의 해리가 아닌 환하고 작렬하는 태양아래에서의 해리는 좀 낯설긴하다. 

그럼에도 이 작품 박쥐는 나에게 묘하게 가슴한쪽이 아프게 하는 작품으로 인상을 강하게 남겼고 내가 좋아하는 해리 시리즈 중 하나가 될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해리가 오스트레일리아로 날아 왔다.

자국의 아가씨가 이곳에 와서 잔혹하게 살해 당한 사건을 공조수사하기 위해서지만 이곳에서는 그를 구경온 관광객취급을 하며 정식적인 수사 참여를 반대한다.

그런 해리와 짝을 지은 수사관이 애버리진인 앤드류

앤드류와 피살자인 잉게르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다 용의자의 범위를 좁혀가지만 그에겐 사건당시의 알리바이가 있고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살인사건의 공통점을 조사하다 드러난 또 다른 용의자 역시 그들의 검거 직전에 그들의 눈앞에서 보란듯이 살해되고 그를 죽인것이라 짐작했던 사람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사건은 마치 종결된듯 하지만 해리는 지독한 자괴감에 빠져 술을 먹기 시작하는데...

제목이 왜 박쥐인지는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호주 이민의 역사와 그곳 원주민이엇던 애버리진이라 불리던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 ..그리고 백인과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나 합법이라는 탈을 쓰고 인간으로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도둑 맞은 사람들...

그들은 이쪽도 저쪽도 낄수 없는 세대이자 당시의 법 인 `원주민 복지 법령`에 따라 부모로부터 강제로 격리된 삶을 살았고  평생을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아픈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요 뇌스뵈가 대단한것은 자신이 잘하는 이야기 방식인 스릴러와 추리의 형식에다 그런 아픈 역사와 과거를 심도있는 조사와 연구를 통해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그런 역사를 되돌아 보게 한다는 것이다.

이 책 전체를 통해 그들의 아픈 역사를 이야기하고자한 그의 의지를 알수 있었다.

레드 브레스트에서는 2차 대전의 상흔과 그들 노르웨이인들의 과오를..그리고 이번 박쥐에서는 호주원주민인 애버리진의 역사와 그들의 현재 모습을 앤드류와 투움바와 같은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기에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와닿는다.

백야가 있고 눈이 오거나 악천후로 인해 태양을 별로 보지못했던 어두운 분위기에서 보여주는 살인의 진실도 무섭지만 이에 못지않게 태양이 환하게 빛나고 모든것이 반짝이는 낮과 같은 곳에서 만천하에 드러나는 진실도 이에 못지않게 추악하고 무서웠다.

스노우맨에서 보여주는 것만큼 완숙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아니지만 비틀거리고 흔들리며 실수도 하는...조금은 말이 많은듯한 모습의 해리를 보는것도 나에겐 즐거움이었다.

30대의 해리는 그래서 안쓰럽고 보듬어 주고 싶은 남자였고 해리가 왜 그렇게 염세적이고 어두운 분위기의 남자가 됐는지..그의 과거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약간은 이해하게 되었다.

해리 홀레...

너무나도 쓸쓸하고 여자들로 하여금 연민을 가지게 하는 이 남자의 모습을 계속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