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인데 어두운 방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사람은 오래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그 사람을 대하는게 편안해진다.남녀간의 관계가 아니라면 그 관계는 그러한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인해 더욱 돈독한 관계가 될수있지만 남녀관계라면 그 양상은 달라진다.편안함과 익숙함은 결국 권태와 지루함을 불러오고 그렇게 서로를 못 견뎌하며 이른바 권태기를 지날 무렵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인다면...그 관계는 급속도로 무너져 내릴 확률이 상당히 높다.특히 요즘처럼 자아가 강하고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많은 때라면 가정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그리고 자신이 행복해야 주변사람을 돌아볼 여유도 생긴다는 명목을 들이대며 자신의 부정을 정당화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사랑...인생을 뒤흔들 정도로 쇼킹한 사랑이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그저 그렇고 그런 불륜으로 밖에는 비쳐지지않기에 추문으로 오르내리고 이런 사랑을 글로 혹은 말로 표현하면 불결하고 추잡하기 그지없게 느껴진다.

특히 소설에서 이런 불륜을 다루는데 있어서 작가의 역량에 따라 아무리 그들의 사랑을 아름답고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그려놓아도 읽는 사람들은 그저 또하나의 불륜 소설중 하나로 치부하기 일쑤인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에쿠니 가오리는 참으로 특이하다

이상하게도 그녀가 그린 불륜소설은 왠지 이해가 되고 그들이 그런 관계로 발전하는게 자연스럽게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이렇게 멋지고 쿨하다면...나도..하는 위험한 호기심도 생긴다.그게 아마도 가오리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존스라는 미국인은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세계 각국 그중에서도 특히 동남아시아와 같은곳을 떠돌며 아내와 가족간은 별거상태로 자유롭게 지내고 있고 그래서인지 그를 편안하게 여기며 늘 그의 집으로 사람들이 찾아온다.

일본인 주부 미야코는 완벽한 주부의 표상과도 같은 일상을 보내는 조용하고 얌전한 타입의 여성

남편인 히로시와 뜨거운 신혼을 보내고 지금은 편안한 관계이지만 어느새 그 편안하고 익숙함이 조금은 틀에 박힌듯 답답함을 느낄즈음 존스를 가까이 하면서 새로운 감정을 느낀다. 자신이 살던 곳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고 평소엔 눈여겨보지않던것들도 새삼 인식하게 되지만 그런 변화를 남편 히로시는 평소처럼 무심하게 스쳐 흘려버린다.

그리고 그런 존스와 미야코의 관계를 의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정생활에 주부로서의 생활에 익숙해져버리고 스스로를 새장속의 새처럼 틀에 가둬버렸던 미야코의 삶이 마치 히피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존스라는 사람과의 만남으로 인해 조금씩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철저히 3인칭인 관찰자로서 그려놓았다.자신 스스로도 자신속에서 변화되고 있는 그 감정의 실체를 몰랐던 미야코의 어리둥절한 마음이 그래서 너무 잘 이해가 된다.

누군가를 만나 단숨에 매료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자신도 모르는 새 조금씩 물들어가고 어느새 그 사람 한사람에게만 향하게 되는것..그게 아마 사랑의 아닐까..그것이 모두가 경멸해 마지않는 불륜이라할지라도..

책속의 주인공 미야코가 존스와의 위험한 사랑에 빠지기전의 일상은 위태롭기 그지없지만 히로시라는 그 남편만 모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그가 집에 돌아오기전까지 저녁을 준비하고 집안을 완벽하게 정돈하는 그녀 그리고 그가 돌아오면 그날 있엇던 일로 대화를 시도하지만 늘 그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는 성의조차 표시하지않고 자신 편할대로만 듣는 장면들을 곳곳에 배치하여 그녀의 변화가 그녀 만의 잘못은 아님을 은근히 알려주고 있다.

미야코 역시 혼자만의 룰을 정해놓고 가급적 그 룰을 지키려 하는 모습에서 그녀가 얼마나 억압된 삶을 살고 있는지..스스로를 얼마나 옳아메고 있었는지 알수 있다.그리고 그런 미야코의 모습은 일반주부들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기에 그런 미야코를 사랑스럽게 지켜봐주고 바라봐 주고 보듬어 주는 존스라는 존재의 등장은 불륜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런 남자를 만나게 된 소설속 그녀에게 부러움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결국 자신을 향한 관심과 애정에 목말랐던 미야코의 일탈은 스스로 새장을 나오게 만들었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괴로움을 느끼는 미야코에게 죄의식이라는것 역시 자의식의 일종일뿐이라는 존스의 말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에코니 가오리 스러운 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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