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 카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세월이 지나서 생각해보면 어느시점을 기준으로 인생이 확 변하거나 가치관이 달라질때가 있다.

물론 당시에는 그 선택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되리라는걸 예상조차 하지못했기에 뒤늦게 깨듣고선 후회를 하지만 또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고 해도 눈앞에 보이는 선택의 갈림길이 자신의 인생을 바꿀만한 선택이란걸 평범한 사람이 알 확률은 극히 드물것이다.

이 책 제목인 `길모퉁이 카페`는 왠지 그 모퉁이를 돌아서면 또다른 인생이 보이거나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르지만 당장은 그 모퉁이너머가 안보이기에 한치앞도 모르는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의 설명이 불필요한 프랑스의 지성인 프랑수아즈 사강의 단편집을 처음 접하기에 기대가 컸고 역시 사람의 쓸쓸한 허무와 시니컬함을 세련되게 그려놓았다.

19편의 이야기가 대부분 헤어짐,즉 결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예감하거나 결별을 준비하는 사람 혹은 생의 마지막 날,또는 드디어 첫연정과의 결별을 문득 깨닫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등 각자가 스스로 이별을 생각하거나 이별의 징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각자가 화자가 되거나 3인칭으로 남의 이야기처럼 들려주지만 모두가 왠지 만사가 시니컬하고 귀찮기도 하고 시들해하는 상류층인사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늘 풍족한 재산과 주위에 비슷한 친구들에 둘러쌓여있거나 언제든지 그들과 합류할수있는 편안한 삶을 살아가지만 슬슬그런삶에 조금씩 지치거나 옆에 있는 연인들이 귀찮아지기 시작한 사람들의 권태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넘쳐나는 재산으로 젊은 남자인 지골로를 마치 애완동물처럼 거느리고 사는 여자가 그에게 냉정하게 이별을 통보하면서 그의 감정변화를 냉철히 지켜보며 자신이 나이들었음을 서글프게 바라보는 `지골로`

완벽한 내 남자의 숨겨진 취향을 친구와 마주치게 된 여자의 이야기인 `내 남자의 여자`

그리고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하러 가는 기차안 그것도 일등실화장실에 갖혀 공포를 느끼는 순간에 비록 자신의 마음에 차는건 아니지만 자신에게 필요한건 헤어질려는 연인임을 깨닫게 되는 여자를 그린 `왼쪽 속눈썹`

사랑에 우여곡절이 많은 사강 본인의 체험이 녹아서인지 책속에 나오는 모든 사랑에 대한 시선이 시니컬하고 조금 냉소적이다.

대부분 한때는 뜨거웠던 연인에게 작별을 고하고자 맘을 먹지만 이별통보를 하는것에 있어서도 인정사정 볼것 없다.

친구들 앞에서 할 계획을 짠다거나 파티장에서..혹은 당사자만 모르고 주변사람은 다 이별통보를 미리 알고있는식으로..

그럼에도 한두편에선 마지막에 마음을 바꾸는데 그 계기가 되는것도 아주 작은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서이다.

마치 길모퉁이 카페를 드디어 돌아서서 안보였던 모퉁이 너머를 본것처럼...

이렇듯 이야기 전반에 흐르는 부자들의 권태와 인생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 그리고 시니컬한 태도는 사강의 작품들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그녀 작품의 특징이자 삶을 왠지 좀 냉소적으로 시크하게 관찰하는듯한 프랑스소설들의 큰 특징중 하나이다.

이 책 역시 짧은 단편임에도 그녀의 특징이 잘 살아있다.

프랑스소설에 대해 약간의 부담감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조금은 프랑스소설에 가까워지게 한 책이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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