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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와 렌
엘레이나 어커트 지음, 박상미 옮김 / &(앤드) / 2025년 6월
평점 :
죽음을 설계하는 남자와 살인을 읽는 여자와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라는 출판사 소개 글에다 실제 법의학 전문가였다는 작가의 이력이 보태져 너무 궁금했던 책이었다.
인간 사냥꾼답게 치밀한 계획하에 오랫동안 지켜보던 사람을 납치해 자신의 지하실에 가둔 채 온갖 고문을 행하며 사람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을 즐기는 남자 제러미
연쇄살인마가 저지른 난폭한 살인에서 흔적을 찾아 범인을 잡고자 하는 법의관 렌
두 사람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형식인데 초반의 설명 부분은 잔혹한 범죄현장을 설명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다지 긴장감이 넘친다는 느낌은 적었다.
살인의 행위는 충분히 충격적이고 잔혹하기 그지없는 데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마치 일상처럼 덤덤해서 임팩트가 부족한 느낌이랄까
살인사건 그 자체보다 제러미와 렌의 심리묘사에 더 중점을 둔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차근차근 곱씹어 읽어가다 보면 일견 평범해 보이는 제러미가 고통받는 희생자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의 표현에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덤덤한 묘사가 그 잔혹함을 부각시키는 느낌이랄지...
자신이 저지른 짓을 사람들 앞에 보란 듯이 진열하고 그걸 보고 놀라고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아무리 경찰들이 범행 주변을 살피고 증거물을 찾아도 절대로 자신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데서 자신감과 우월감을 느끼는 범죄자 제러미
그야말로 자아도취에 빠진 사이코패스의 전형 같은 인물이 제러미라면 렌은 범죄 피해자의 시신에서 작은 단서를 찾아 범인을 검거하는 데 있어 탁월한 실력을 가졌지만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심상치 않은 악몽을 꾸는 걸로 봐서 과거에 어떤 비밀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녀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이제까지의 분위기와 확 달라지고 그때부터 마지막까지 전속력을 다해 질주하면서 마지막 결말까지 단숨에 휘몰아쳐서 독자의 혼을 빼놓는다.
이걸 보면 앞의 덤덤하기 그지없는 전개는 아마도 이 반전을 위한 작가 나름의 포석이 아니었을까 싶다.
범인이 피해자들을 고문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방식이라든지 전체적으로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가 책 속에서 자주 언급되던 양들의 침묵과 닮아있다.
여기에도 제러미와 렌 외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이건 오로지 두 사람만의 이야기이며 반드시 둘이서 매듭을 지어야 하는 문제라는 것도 한니발 렉터와 클라리스와의 관계의 변형처럼 보인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과 마지막 결말은 이 책이 왜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를 증명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