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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샬럿 버터필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라곰 / 2025년 5월
평점 :
한창 어린 나이에 누군가로부터 자신이 죽을 날짜를 듣는다면...?
그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예언 따윈 무시하고 그냥 살던 대로 살까 아니면 예언에 구속된 채 하루하루 숨죽이며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삶을 살게 될까
이 책은 그런 상황에 처했던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칫 무겁거나 엉뚱한 코미디로 흘러갈 수 있을 소재를 가지고 작가는 로맨스를 섞고 교훈을 담아 아름다운 이야기로 완성했다.
넬은 자신의 주변과 가지고 있는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하다 한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와 뜨거운 경험을 하지만 다시 만날 생각 따윈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곧 죽을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남자친구와 갔던 여행에서 만난 예언가로 인해 자신의 삶이 앞으로 19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날 넬의 모든 것은 달라졌고 이 예언은 그녀의 삶 전체를 바꾸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그토록 굳게 믿었던 예언은 실행되지 않았다.
이야기는 이렇게 죽을 날에 산 채로 눈을 뜬 넬과 그녀를 둘러싼 소동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삶이 끝나는 날을 알고 있기에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재밌고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신의 그런 태도가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벽을 쳐 상처를 주는 일이었음을 깨닫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더불어 예정된 삶에서 어떤 여한이 남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즐겁게 즐기며 살았던 넬의 삶의 방식은 그녀가 일상으로 돌아온 후 그녀 주변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한다.
자신의 옛 남자친구이자 자신과 함께 여행을 즐겼던 그렉은 그녀가 온 세계를 여행하며 사는 동안 다른 사람들처럼 양복을 입고 하루하루 똑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우연히 넬과 재회하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오래전 자신의 자유로웠던 모습을 그리워하며 뒤늦게 일탈하게 된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평범하면서도 안락한 주부의 삶을 살던 넬의 언니 역시 자신이 죽을 거라 믿었던 넬의 충격적인 고백으로 한순간에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된다.
우아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이 분명했던 노부인 주노 역시 넬과 만나면서 삶이 달라졌고 무엇보다 그녀로 인해 이제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된 남자 톰 역시 그녀를 만나기 전과 후과 확연히 변해버린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넬은 그렇게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그녀 주변의 삶을 변화시킨 일등 공신이지만 언제나 조금 복잡하거나 힘들어지면 도망치거나 외면함으로써 문제를 피하는 자신의 태도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이기적인 행동이었음을 깨닫고 변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이 사랑스럽게 펼쳐진다.
이 책에는 나오는 사람들마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심지어 넬의 아빠와 바람이 났었던 여자조차도 밉다기 보다 오히려 이해하게 만들 정도로 등장인물 하나하나 모두를 애정이 넘치고 미운 구석이 하나 없는 이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만들어 놓은 게 오히려 이야기를 단점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마치 모두가 행복했습니다로 끝나는 동화 같달까...
이런 아쉬움을 빼면 주인공 넬이 밝은 웃음 뒤에 숨겼던 고민이나 자신에게 어필하는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분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섬세하게 묘사해 한편의 멋진 드라마를 본 것 같았다.
적당히 유쾌하고 무겁지 않아 단숨에 읽게 만든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