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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떨어진 남자 ㅣ 월터 테비스 시리즈
월터 테비스 지음, 나현진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7월
평점 :
아주 오래전에 침팬지들의 별에 떨어진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있었다.
자신과 전혀 다른 유형의 그 무엇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에서 오는 공포와 두려움도 문제지만 말도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고립감이 훨씬 더 무섭게 느껴져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영화였다.
이 책 지구에 떨어진 남자 역시 그 영화 속의 남자와 같은 처지에 처했다.
아니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별에 떨어진 것이지만 책 속 주인공인 외계인 뉴턴은 자신의 가족을 비롯한 자신의 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위해 스스로가 결정하고 오랫동안 계획을 세운 후 지구로 온 것이라는 점이 확연한 차이점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계획한 만큼 뉴턴은 지구로 오자마자 준비한 매뉴얼대로 우선 부자가 되기 위한 단계를 착착 밟아나간다.
그의 원래 고향인 안테아에서는 지구인보다 훨씬 앞선 문명을 가졌을 뿐 아니라 지능 또한 높아서 그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자가 되기는 어렵지 않았다.
엄청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우주선을 만들고 자신의 별 안테아에서 살아남은 동족들을 지구로 데려오기 위한 프로젝트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착착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는데 그건 그가 좀처럼 지구의 환경에 익숙해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에게 지구의 중력은 몇 배의 엄청난 무게로 내리누르고 태양의 강렬한 빛은 눈을 멀게 할 정도로 강하다.
여기에다 뜨겁게 느껴질 정도의 온도까지...
그야말로 살아남기에도 쉽지 않은 환경이지만 자신에게 내려진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 뉴턴은 노력하고 또 노력해 이제 곧 원했던 성과를 볼 수 있게 되었을 즈음 그에게 생각지도 못한 지구인의 반격이 훅 들어온다.
엄청나게 탁월하고 뛰어난 그의 발명품을 보면서 그의 존재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난 것...
책을 읽으면서 혼자만 낯선 곳에 와서 자신보다 열등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이 다른 무엇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그가 느꼈을 고독감과 절망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와인에서 진으로 바꿔가며 체념하듯 술에 중독되어 가는 그의 모습을 태양 가까이 날아갔다 기어이 추락하고야 만 이카로스로 비유한 작가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탁월한 능력도 뛰어난 지능도 누구와 함께 할 수 없고 나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조차 비밀로 해야 하는 그가 느꼈을 절대적인 고독은 끝내 이카로스의 녹아버린 날개처럼 그의 모든 것을 소진해버린 채 텅 비게 만들었다.
외계인이 낯선 지구에 와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렸을 거라는 막연한 나의 생각을 뒤집었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전체를 관통하는 시니컬함과 인간이 가진 본능과 욕망에 대한 예리한 묘사 그리고 의외의 결말은 처음 가졌던 책에 대한 느낌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OTT에서 방영된 드라마 퀸스 갬빗의 영향으로 작가의 작품들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는데 작가의 다른 책은 어떤 느낌일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