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키초의 복수
나가이 사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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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그믐날... 하얗게 내린 눈 속에 빨간 선혈이 낭자하고 누군가의 목이 베어졌다.

고비키초의 극장 뒤편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버젓이 행해진 이 살상급은 당시 무사에게 허용된 복수극이었고 그렇게 복수는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는 당시 이 살인을 지켜본 사람들에게 2년 후 누군가가 찾아와 다시 한번 그때의 진상을 들려 달라 청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챕터마다 당시 사건을 목격한 목격자의 진술이 이뤄지는 데 처음 한동안은 목격담에서 어떤 차이도 느껴지지 않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서 이야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죽이기 위해 에도로 온 어린 소년

그의 이름은 기쿠노스케이며 이노 세이자에몬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가 죽인 남자는 도박꾼이자 거리의 무뢰배 같은 남자 사쿠베에였고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죽인다는 정당한 사유가 있었기에 그의 복수는 허락된 행위였다.

하지만 그날 밤의 목격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사쿠베에라는 남자의 이미지는 조금씩 달라지고 그날 밤 비장하게 아버지의 원수에게 칼을 겨눴던 기쿠노스케는 마치 그 복수를 원치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는 왜 원치 않았던 복수극을 행해야만 했을까?

평범한 진술 속에 숨긴 진실 찾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조각조각 나눠진 듯한 이야기 속에서 하나의 진실을 찾게 되면 처음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시대극인 만큼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관습 같은 걸 이해하고 보면 훨씬 더 작품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쇼군 아래 영주와 번에서의 명령체계나 무사의 도리 같은 건 물론이고 당시 무사의 위치와 가문의 대를 잇는 장남 외 다른 아들들의 처우 같은 걸 알고 보면 기쿠노스케의 처신과 결정적 순간에 그가 한 고민에 대해 훨씬 더 공감 가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마치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 같은 모습을 글로 재연하고 있는 고비키초의 복수는 어딘지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웠고 목격자의 진술로만 사건을 재연하는 부분에서는 잘 짜인 연극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겉으로 봐선 그저 단순한 복수극처럼 보였던 그날의 진실이 목격자의 진술이 더해갈수록 훨씬 더 정치적이고 복잡한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된다.

더불어 각각의 목격자들이 사건에 대해 진술하는 것 외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연에 대해서 듣다 보면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복수극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어딘지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드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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