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는 양들의 축연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엘릭시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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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책을 처음 접한 건 아마도 청춘 미스터리물인 고등부 시리즈 중 하나였던 걸로 기억한다.

제목부터 장난스럽고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들 역시 고등학생이라는 설정 탓인지 재밌기는 했어도 그다지 인상적으로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내 인식을 완전히 바꿔준 게 부러진 용골이었다.

기존의 작품과 전혀 다른 시대물이라는 점도 그렇고 스케일도 컸을 뿐 아니라 환상과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섞여 있어 엄청 몰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는 개는 어디에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의 미스터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사건 전체의 인상이 달라지는 뭔가가 있어서 반전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런저런 다양한 작품을 제법 읽었지만 이 책 덧없는 양들의 축연은 내 미스터리 컬렉션에서 빠져있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엘릭시르에서 복간되면서 읽을 기회가 생겼다.

책은 일단 다섯 편의 에피소드로 되어있는 데 서로 전혀 연관이 없는 가문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다섯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게 일명 바벨의 모임이라는 독서회가 있다.

이 바벨의 모임은 일반적인 독서 모임이 아니다.

일단 전통 있고 명망 높은 집안의 여자들이 모여 독서회를 갖는다는 것도 그렇지만 이외에 은밀한 뭔가가 있음을 이 모임에서 제명된 사람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다섯 편의 에피소드에는 명문가 집안의 자식 혹은 후계자라는 이유로 자유가 억압되고 어떤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 채 마치 양육당하는 짐승처럼 길러진 여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살피거나 곁에서 어떤 명이라도 받들도록 명령받아온 하녀 혹은 몸종과도 같은 존재가 있었다.

이런 구성은 아가씨의 원작으로 유명한 핑거 스미스가 생각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섯 편의 에피소드 중 특히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 와 다마노 이즈스의 명예에서의 아가씨와 몸종의 관계가 특히 그렇다.

자신이 모시는 아가씨에게 은밀한 연정을 품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아가씨를 지키는 걸 자신의 명예로 여겨서 사건을 일으킨다는 점등이 닮아있다.

북관의 죄인에서는 대단한 집안의 자식이 억압되고 구속당한다는 설정은 같지만 다른 작품과 달리 대상이 장남이라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그런 장남을 감시하면서도 보살피는 역할을 하는 몸종 역시 평범한 여자가 아니라 이 집안의 핏줄이라는 점이 다를 뿐...

다른 몸종들과 달리 북관의 죄인에서의 몸종은 출신이 다른 만큼 원하는 바도 달랐고 그 다른 차이가 이야기의 정점을 찍는다.

이렇게 이야기들 자체는 사실 복잡하거나 꼬여있지 않아 책을 읽는 사람 대부분이 그 결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마치 동화의 잔혹 버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지... 아니면 블랙 유머를 담고 있는 것 같은 이야기가 나름의 매력을 발하고 있어 이건 이것대로의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했다.

누가 봐도 너무나 대단하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결국 그 대단한 집안의 명예를 위해 바스러지고 소멸되어가는 과정을 가장 잘 보여준 게 마지막 에피소드 덧없는 양들의 만찬이 아닐까 싶다.

한편의 블랙 유머처럼 느끼게 했던 다섯 편의 에피소드를 담은 덧없는 양들의 축연은 기괴한듯하면서도 어딘지 유머러스한 감각이 작가의 다른 작품과는 다른 재미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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