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선인들은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다고들 했다.
그래서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으면 소리 내어 빌고 또 빌면 그 소원이 하늘에 닿아 반드시 이뤄진다고...
그렇다면 저주의 말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될까?
저주를 믿는 사람이거나 안 믿는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는 건 그걸 말로 자꾸 되뇌거나 하면 자신도 모르는 새 언어의 힘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자기개발 책에서 간절히 원하는 걸 노트나 수첩에 적고 그걸 말로 자꾸 되뇌고 마음속에 염두에 두라고들 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사실 제목을 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로맨스 소설이거나 블랙 유머가 가득한 그런 유의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든 순간부터 단숨에 몰입해서 읽을 만큼 매력적이고 책 속 주인공들 하나하나의 캐릭터가 살아있었을 뿐 아니라 어느샌가 내 눈에 눈물이 흐를 만큼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가족이 운영하는 베이커리에서 일하고 있는 에밀리아는 스물아홉 살이나 되었음에도 독립할 생각도 결혼할 생각도 없을 뿐 아니라 연애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그야말로 세상 다 산듯한 지루한 날을 보내고 있지만 그녀에게도 나름의 사정이란 게 있다.
에밀리아의 집안에서는 대대로 둘째 딸은 사랑을 할 수도 결혼을 할 수도 없다는 저주에 걸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세상에 저주라니...
누가 그런 걸 믿을까 하지만 에밀리아의 집안에서는 모두가 이 저주를 믿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대가 흐르는 동안 둘째 딸 중 그 누구도 사랑에 빠져 결혼에 성공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집안의 아웃사이더이자 아무도 상대하지 않는 이모할머니 포피가 자신의 여든 번째 생일을 위한 여행에 에밀리아를 초대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할머니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었던 그녀가 반대를 무릅쓰고 포피와의 이탈리아 여행을 택했고 그 여행에서 이제까지 자신을 속박하고 있었던 것들에서 하나하나 벗어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새 저주의 덫에 걸려 연애도 포기하고 모든 걸 포기한 채 숨죽이며 살았던 에밀리아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싸움도 불사하는 전사로 변해간다.
책에는 조금씩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되는 에밀리아의 변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포피가 그토록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탈리아 여행의 동반자로 에밀리아를 선택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도 포피의 사연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냉전시대 서로 사랑하면서도 함께 할 수 없었던 어린 연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고... 그토록 오랜 세월 떨어져 있었음에도 서로를 향한 강력한 믿음은 사랑의 본질과 그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집안 전체를 휘감았던 집안의 저주를 깨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마침내 스스로 운명에 맞서게 되는 에밀리아의 이야기도 매력적이었지만 누구보다 강렬한 사랑을 했던 포피의 이야기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완벽하게 잡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