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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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한 집안에 서넛의 자녀를 둔 가정이 일반적이어서 엄마가 동생을 출산하거나 혹은 몸이 여의치 않을 때 많은 아이들 중 한두 명을 친척이나 친지에게 잠시 보내는 일이 그다지 드물지 않았다.

요즘같이 한 명 혹은 기껏해야 두 명 정도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예전에는 그렇게 서로 잠시 아이를 맡아두는 일이 큰 흉도 아니었던 시대도 있었다.

그래서 책 제목을 보고 내용을 살짝 훑어봤을 때 소녀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곧 출산을 앞둔 엄마의 손을 덜어주고자 소녀는 외가 쪽 친척 집에 맡겨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제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 어른의 보살핌과 관심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아이들이 복작이는 집... 언제나 무심한 아버지... 그리고 아이들 뒤치다꺼리와 잦은 출산으로 언제나 피곤에 지쳐있는 엄마

언제나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은커녕 관심조차 받아보지 못했던 소녀에게 친척 집에서의 하루하루는 낯설지만 즐겁고 행복했다.

그렇게 많은 아이를 낳았으면서도 한 번도 아이에게 관심 어린 손길을 보내지 않았던 아버지에 비해 무심한듯하면서도 작은 것도 함께 하는 즐거움을 알려준 아저씨

아저씨는 그 당시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식사 준비를 함께 하며 가정의 일에 남녀 구별이 없이 함께 하는 다정한 남편이기도 했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이 한 대목의 글에서 소녀가 살아온 환경이나 집안 분위기 등 모든 것이 설명되는 이유다.

소녀는 친척 집에 맡겨진 이후로 이제까지 자라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면서 혼란과 더불어 결핍이라는 감정을 배우게 된다.

짧은 글이었지만 그 속에서 소녀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묘사가 참으로 섬세해 문장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곱씹어 읽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소녀가 친척 부부가 가지고 있는 슬픈 비밀을 알게 된 순간 소녀는 어른들의 규칙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평온해 보이는 그 부부가 가지고 있는 슬픔을 어린 소녀는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떤 순간에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어린 소녀가 처음 낯선 곳에서 불안감을 느끼다 점차로 가족 같은 친밀감을 느껴지만 예정된 시간이 다 함에 따라 이별하는 슬픔도 배우게 되는 과정이 아름답게 그려진 맡겨진 소녀는 결말 역시 인상적이었다.

마치 불안정한 소녀의 심리처럼 독자로 하여금 결말을 상상하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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