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속의 나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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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범죄이긴 하지만 범죄 행위의 묘사보다 범인의 악마성과 악의에 더 초점을 맞추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취약점을 건드려 근원적인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걸로 유명한 도나토 카리시

그의 대표작인 속삭이는 자를 비롯해 전작들 대부분의 그렇듯이 이번 작품 역시 실제 일어났던 여러 편의 실화를 바탕으로 새롭게 각색해서 매력적인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이번 작품 심연 속의 나 역시 잔혹하게 피해를 본 범죄의 흔적은 있지만 잔인한 범행 장면의 묘사보다 범인의 행동과 그 이면에 깔린 심리묘사에 더 치중해 책을 읽는 사람 역시 범인의 시각으로 사건을 재구성하게 했다.

일단 심연 속의 나에는 두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 사람은 범인인 청소하는 자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남자들로부터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일명 사냥하는 여자

청소하는 자는 누군가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그 사람의 쓰레기통을 뒤져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지만 아무도 그런 그를 눈여겨보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스스로를 투명 인간이라 생각하는 그가 평소의 자신과 달리 호수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소녀를 구한다.

평소라면 신경조차 쓰지 않는 일을 한 건 어쩌면 소녀에게서 어린 시절 폭력에 시달리던 자신의 모습을 본 탓이 아닐까 싶지만 어쨌든 그의 이런 행위는 스스로를 노출시킬 수 있는 위험에 처하게 한다.

게다가 소녀는 유명하고 부유한 부모를 가졌고 이 사건을 언론에서 다루게 되면서 소녀를 위험에서 구한 뒤 말없이 사라진 그를 사람들은 이름 없는 영웅으로 칭송한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같은 호수에서 여자의 오른팔 하나가 발견되면서 사냥하는 여자의 관심을 끌게 된다.

사람들은 팔의 상처를 보고 모두 자살한 사람의 팔이라 생각하지만 사냥하는 여자는 여자의 손에서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의 일부분이 부러진 걸 발견하고 소녀가 구출된 사건과 연관성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작은 단서 하나를 바탕으로 서서히 아무도 그 이름조차 몰랐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청소하는 자의 근처까지 좁혀가는 과정이 아주 흥미롭게 그려졌다.

게다가 화자인 두 사람의 이력 역시 평범하지 않다.

범인과 추적자라는 위치를 떠나서 청소하는 자는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연쇄살인마이면서 물에 빠진 소녀를 자신이 신분이 노출된 위험을 감수하고서 구출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사냥하는 여자 역시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를 구출하지만 그녀 역시 잔인한 범죄로 인해 가정이 붕괴된 과거가 있다.

작가는 단순히 범인과 그를 쫓는 사람과의 이분법적인 관계가 아닌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이중적인 모습을 비롯해 악의는 태어나는 것인지 폭력적인 과거로부터 배운 것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복잡하지 않은 스토리에 군더더기 없는 필체는 이야기의 몰입성을 높여줬고 단순에 읽어내려갈 만큼 이야기 자체가 가진 흡인력도 대단하다.

속삭이는 자를 비롯해 이름 없는 자 미로 속의 나보다 좀 더 대중적인 요소가 더 많이 가미된 작품인 것도 그렇고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의 반전까지!!!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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