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르의 책일지 짐작하기 어려운 제목과 책 설명 때문에 무슨 내용일지 아무것도 모른 채 첫 문장을 읽었다.
어린 두 소녀가 서로의 손바닥을 그어 피를 나누고 그 피가 섞인 우유를 마시며 서로에게 속하게 되었다 느끼는 부분을 보면서 소녀들의 우정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했었지만 뒤이어 나오는 이야기는 강렬한 충격을 안겨준다.
어떤 징조도 없이 돌연 뛰어내려버리는 소녀의 모습은 충격과 함께 의문을 던지지만 더 놀라운 건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버린다는 것이다.소녀가 왜 그런 선택을 한 건지에 대한 의문만 남겨두고...
그때부터 이 책이 도대체 어떤 책인지 그리고 작가의 의도는 뭔지가 책 내용과 상관없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나온 이야기는 뱃속의 아이를 잃은 여자의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자신이 낳지 않은 남편의 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는 향연이었다.
이 작품은 첫 작품과 달리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가고 왜 그런 마음을 느끼는지 공감이 가면서 더더욱 이 책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중년 남자가 매주 아내가 아닌 젊은 여자와 시시덕거리면서 자신의 남자로서의 존재감을 확인받고자 하는 이야기가 담긴 천국을 잃다는 곁에 있는 아내의 나이 듦을 보면서 자신 역시 늙어가고 있음을 인정하기 싫어 매주 바를 찾아가 돈을 쓰지만 아내가 떠나버리면서 결국 모든 것이 헛짓이었음을 깨닫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데 그 과정에서의 허무함과 허탈함이 진득하게 그려졌다.
혀들에서도 그렇고 적들의 심장에서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자의 모습이 아닌 그 자체로서 자유와 존엄성을 갖고자 하는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비판의 모습을 담고 있다.
혀들에 나오는 여자는 심지어 믿고 의지했던 종교에서부터 강한 배신을 당한다.
목사에게 반항적인 시선을 보내고 굴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에게서도 냉대를 받는 모습이 나오지만 자신을 핑계로 동생을 괴롭히는 아이에게 찾아가 강력한 한방을 날리면서 사회가 여자에게 요구하는 관습과 권위를 비웃는다.
물에 빠진 순간 생사를 넘나드는 긴박한 순간에 소녀가 한 행동과 그 아이가 느꼈던 감정을 그리고 있는 배의 바깥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는 사람들의 민낯을 아주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한순간의 고백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경원시당하고 부도덕한 여자로 낙인찍힌 엄마를 곁에서 지켜보며 엄마가 한 부정한 행위보다 이후 사람들에게 맞서지 못하고 스스로 자책하며 눈치를 보는 엄마의 모습에 더 분노하고 화를 내는 딸의 이야기가 그려진 적들의 심장은 자라나는 딸과 엄마 사이에서의 그 미묘함을 잘 포착했다.
거부하고 화를 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엄마가 당당하게 맞서기를 응원하는 딸의 심리와 점점 성숙해지는 딸의 곁에 맴도는 독수리같은 남자들로 부터 딸을 보호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엄마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잇다.
열세 편의 이야기의 공통점은 모두 여자이며 백인이 아닌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점이었고 변화의 순간 혹은 어떤 일을 두고 그녀들이 느끼는 감정의 이미지를 강렬하면서도 세심하게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약자의 입장에 있는 여자들이 자신이 처한 위치와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생각하면서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해 생생하게 전달하는 작가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답게 글이 감각적이며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한 번에 이해가 가지 않아 다시 한번 문장을 읽어봐야 할 때도 있었지만 분명한 건 작가는 사람들에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단편집이었지만 작가가 쓴 장편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