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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들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1월
평점 :
엄숙한 법정에서 오로지 증거만으로 검사와 변호사가 치열하게 공방을 하는 법정물은 생각지도 못한 증거물이나 증인의 등장으로 이제까지의 진술이 뒤집히거나 수세에 몰렸던 억울한 용의자가 단숨에 무죄를 증명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물론 주인공이 검사나 경찰인 경우 심증이 있고 모든 상황이 그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그걸 입증할 증거 부족으로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용의자를 마지막 순간에 결정적 증거가 나타나 죗값을 치르게 하면서 통쾌함을 느끼게도 한다.
법정에서의 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결정적 순간에 멋진 한방을 날려 법정 스릴러의 참맛을 느끼게 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 바로 존 그리샴이었다.
작가 스스로 변호사였기에 그때의 경험을 제대로 살려 특히 현장감 있는 법정물을 잘 썼었는데 언젠가부터 다른 소재를 다루면서 내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번에 이 작품 수호자들로 정통 법정 스릴러물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 칼런 포스트는 이전처럼 변호사인 건 마찬가진데 평범한 변호사가 아닌 성공회 신부이자 변호사라는 특이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포스트는 여느 의뢰인들과 달리 불합리한 권력과 정부의 무능으로 인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자신이 한 짓도 아닌 죗값을 치르고 있는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단체 수호자 재단의 변호사이다.
당연히 무기수나 사형수를 상대로 그들의 무죄를 증명하는 일은 돈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많은 돈이 드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포스트와 재단의 사람들은 이 일을 소명으로 생각해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그들이 상대하는 건 사건 당시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아 엉뚱한 사람을 가해자로 몬 주정부와 거기에 속한 검사와 경찰을 상대로 하는 일이기에 협조를 받기도 쉽지 않고 의뢰인의 무죄를 증명하는 것 역시 쉽지 않지만 벌써 8명째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활약을 보이고 있다.
현재 수호자 재단이 맡은 사건은 잘나가는 변호사를 산탄총으로 잔인하게 살해한 죄로 22년째 수감 중인 키스 루소의 무죄를 증명하는 일이다.
한번 판결이 내려진 사건을 뒤집는 건 쉽지 않지만 특히 이번처럼 피해자가 백인이고 어느 정도 성공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 것에 반해 가해자가 흑인이라면 사람들이 쉽게 판결을 내릴 뿐 아니라 그가 죄가 없을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뿌리 깊은 편견은 이렇게 누군가의 일생을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음을 퀸스 밀러라는 무고한 죄인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놀랍게도 이 사건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키스 루소의 사건은 조금만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너무나 허술한 증거를 바탕으로 기소가 이뤄졌다는 걸 알 수 있음에도 어떤 반대도 없이 형이 결정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야말로 믿었던 공권력의 배신이었다.
하지만 은근과 끈기로 하나둘씩 당시의 증거와 증인의 진술을 무력화하고 있는 가운데 교도소안에서 키스 루소를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르도록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건은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필 운 나쁘게도 경찰의 레이더망에 올라 인생이 시궁창에 빠졌을 거라 생각했던 키스의 사건은 조사가 거듭되면서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조작되고 계획된 사건임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수많은 사람이 여기에 가담해 이익을 본 사건임이 드러난다. 더불어 시골 마을의 경찰 조직과 마약 카르텔과의 비리와 커넥션이 점점 모습을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모든 진실이 드러났음에도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주정부와 그곳에 속해있는 관료들의 행태는 구태의연하다 못해 악의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포스트의 말마따나 판결은 쉽게 내려도 재심으로 무죄를 입증해 피해자를 구제하는 건 너무나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작가의 전성기 때의 소설처럼 문장마다 힘이 있고 긴박감 넘치는 점은 좀 부족했지만 관록의 작가답게 어떻게 전개를 하면 독자들이 좋아할지를 잘 알고 쓰는 소설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 진정성 면에서도 그렇고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해자가 느꼈을 심리상태의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해 가슴에 와닿았다.
감동과 재미 사이의 적절한 밸런스가 돋보인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