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의 계절을 지나
아오야마 미나미 지음, 최윤영 옮김 / 모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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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열애에 빠졌을 때라면 그 사람을 위해서 별도 달도 다 따줄 수 있을 것 같은 건 물론이고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는 마음을 가지지만 사랑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지고 서로에게 익숙해질 때면 그때의 마음과는 조금 달라지는 게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다.

물론 처음과 끝이 꾸준히 한 사람을 위해 맹렬히 타오르는 사랑도 없진 않겠지만... 솔직히 그런 사람은 드문 게 현실

오죽하면 사랑의 유효기간은 18개월이라느니 3년이라느니 하는 말이 있을까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할 수 있다는 그런 사랑이 드물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 혹은 소설에서나마 그런 사랑을 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고 판타지 같은 그런 내용을 보면서 대리만족하거나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그런 걸 보통 신파라고 얕잡아 보거나 비웃음을 띠고 이야기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런 장르는 꾸준히 사랑받아오고 있다.

특히 일본이 요즘 이런 장르에 강세를 띠고 있는 데 어쩌면 살기 힘든 팍팍한 세상에 소설 혹은 드라마에서나마 그런 판타지 같고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마음이 반영된 덕분이 아닐까

이 책 열한 번의 계절을 지나 도 그런 작품 중 하나다.

첫사랑과 결혼해 행복한 생활을 하던 미노리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알고 보니 중학생 때 머리를 세게 부딪친 적이 있는 데 그때의 충격이 쌓여 돌연사하게 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된 남편은 그녀 없는 세상은 더 이상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자신만의 능력을 살려 그녀의 목숨을 구하기로 결심한다.

그 능력을 사용하게 되면 자신의 수명이 단숨에 되돌린 시간의 5배인 55년이 사라진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아닌 그녀 미도리의 행복을 위해서 한치의 망설임 없이 타임워프를 감행한다.

그리고 그녀와 자신의 중학생 시절로 돌아가 미노리의 곁에서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내며 그녀와의 관계도 돈독히 하지만 예견되었던 시간은 돌아오고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사랑의 본질은 자신보다 상대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그 사람을 위해서 뭐든 주고 싶어지는 마음이 아닐까

그런 순수함이 점점 사라져 연애 상대에게서도 냉철하게 계산하고 온전하게 그 사랑에 모든 걸 쏟아붓는 사람이 점점 적어지는 요즘 세대지만 누군가를 온전하게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는 게 요즘 일본에서 나오는 청춘소설이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연인 중 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불치병 혹은 시한부 삶을 살다 잃어버린 후 남은 사람의 절절하고 애타는 마음을 담은 책들이 많아 나오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 열한 번의 계절을 지나 역시 그 궤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갑작스럽게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남은 사람의 절절한 아픔과 상실감을 묘사하는 건 물론이고

여기에다 주인공에게 이 모든 걸 다시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만 빼면...

물론 주인공은 그 능력으로 마치 슈퍼맨이 사랑하는 여자를 살리기 위해 지구를 되돌 리 듯 시간을 되돌린다.

여기까지라면 기존의 작품들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더 극단적이고 놀라운 선택을 한다.

시간을 되돌린 만큼의 다섯 배에 해당하는 자신의 시간을 희생한다는 것에 더해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 걸 던진다.

두껍지 않은 분량이고 어렵거나 막히는 내용이 없어 술술 잃어가다 어느 순간이 오면 나도 모르게 맨 앞장으로 되돌아가 새로 확인하게 하는 부분이 있는 데 그건 독자를 놀래기 위한 작가의 히든카드가 아닐까 싶다.

다소 진부하고 신파에 치우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대체로 담백하고 덤덤하게 그렸고 눈물을 강요하는 느낌이 아니어서 더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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