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
정세진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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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내 눈을 끌었던 건 1억 원의 가치를 지닌 비밀을 알려달라는 범인의 요구였다.

도대체 어떤 비밀이 그 정도의 가치를 가졌을까 하는 호기심이 우선 생겼고 범인이 그런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하게 된 배경의 궁금함이 두 번째로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실 단편은 좀처럼 탁월한 뭔가가 없으면 인기를 끌기 쉽지 않다.

더군다나 이런 비주류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장편도 아닌 단편이라니... 출판사에서 그만큼 작품에 자신이 있지 않고서야 이런 모험을 강행할 수 있을까 하는 내 의심은 첫 번째 단편에서 완전 허를 찌르고 들어왔다.

부잣집 어린 딸아이를 유괴한 채 돈을 요구하는 유괴범

그런데 이 유괴범의 행태가 예사롭지 않다.

얼굴도 숨기지 않고 당당히 자신이 유괴한 딸아이의 집을 제 발로 찾아가 아이의 부모에게 1억 원을 요구하는 대범함이랄지 무모하게까지 보이는 범인은 여느 범인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돈을 받아 간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어서 빨리 딸아이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부모에게 그는 그들이 자신을 신고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알려지만 엄청난 대미지 때문에 절대로 발설하지 않을 비밀을 말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들 부부의 입을 통해 드러난 비밀을 보면 왜 이 작품의 제목이 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한 건지 이해가 간다.

나를 버릴지라도 에서는 집으로 가던 길에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었고 정신 차려보니 노인들이 대부분인 외딴 섬에 고립된 상황에 처한 한 소녀의 이야기다.

사실 섬 주민들 대부분이 소녀가 처한 상황을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했고 납치 당사자는 소녀를 감금하고 감시하면서 집안일을 시키고 좀 더 자라면 자신의 아이를 낳아 키우도록 짐승처럼 양육하고 있는...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상황이었다.

섬을 관리하는 사람들마저 이 상황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복잡한 게 싫다는 이유로 모르는 척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수도 섬을 벗어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마치 기적처럼 누군가가 섬에 홀연히 나타나 단숨에 상황을 정리한다는 설정이 단순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섬에 갇혀 제대로 일한 값도 못 받고 노예처럼 부려졌다 천신만고 끝에 구출됐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가끔 들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대상만 다를 뿐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다 이를 해결한 사람과 방법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기발함을 보여준다.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가지만 나의 시간은 멈췄다에 서는 요즘 뉴스에 거론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이 갓 성인이 되자마자 500만 원이라는 방 한칸 얻기도 힘들 정도의 적은 돈을 가지고 강제로 사회에 나와야 한다는 현실을 호르몬의 이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하이랜드 증후군을 앓고 있는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있는 주인공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가족을 얻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하지만 그를 원하는 부부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입양을 했다는... 어찌 보면 너무 슬픈 현실이라 웃음이 난다.

이외에도 원자력발전소의 폭발로 방사능에 노출된 도시에서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라든지 자신이 가지지 못한 재능을 얻기 위해 평행세계에서 다른 사람의 재능을 훔쳐 살아가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이 책에 실린 7편의 단편은 현실과 비현실적인 상황을 묘하게 조합하고 있다.

비현실적인 상황을 통해 지금 현실 사회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내용이 담긴 단편에는 그 차이에서 오는 미묘함이랄지 아니면 현실을 타파하는 방식의 비현실성이 묘하게 어울려 매력적으로 느끼게 한다.

어차피 상식으로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을 판타지 같은 비현실적 방식으로 해결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이야기 혹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야말로 판타지 같은 이야기를 섞어 놓은 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는 가독성도 괜찮았고 이야기의 의외성과 참신함에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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