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록 미궁에 빠진다...
일가족 살해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라는 설명도 그렇지만 도대체 어떤 수수께끼가 있어 읽을수록 점점 더 미궁에 빠진다는 걸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여기에 이 책이 처음 출간이 아니라 절판되었다 독자들의 요청으로 10년 만에 복간되었다는 문구는 누가 봐도 충분히 궁금증을 불러온다.
과연 얼마나 재밌었으면 독자들이 복간 요청을 했을까 하는...
이 책에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사건이 벌어진 후 수십 년이 지나서까지 풀지 못한 사건 일명 종이학 사건이 그 하나고 두 번째는 현재 우연한 계기에 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와 얽힌 한 남자의 이야기다.
사실 두 이야기 모두 어둡고 침울하기 그지없다.
사건의 배경이 된 그 집은 남들이 볼 땐 평범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시작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 같은 집이었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아내를 둔 평범한 남편... 이 모든 불행의 시작은 이 맞지 않은 밸런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기에게 과분한 아내를 둔 남편은 늘 아내가 혹시 딴 남자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감시하고 또 감시했지만 아내는 그런 남편의 행동을 거부하지 않는다. 마치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아내가 그렇 수록 남편은 더욱더 집착하기만 하고 이런 부부 사이에 낀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 바깥세상과 단절한 채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안으로 안으로 움츠려들기만 한다.
그리고 그날 밤 마침내 사건이 벌어지고 이후 22년이 흐르도록 그날의 사건 진상은 물론이고 범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동창과 합석한 후 그대로 그녀의 집까지 들러 잠자리를 한 남자
이 남자도 평범하지는 않다. 어릴 적부터 자신 안에 또 다른 존재인 R 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사춘기가 되자 자신만 남겨 둔 채 떠나버린 R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게다가 그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꿈도 희망도 없는 채 그저 살아있을 뿐인 상태였고 그런 그가 만났던 동창이 우연한 기회에 22년 전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걸 알게 되면서 그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점점 더 의혹만 쌓여갈 뿐만 아니라 사건 당시 아직 어렸다는 걸 알면서도 왠지 그 사건을 자신의 분신이자 자신의 어둠을 가진 채 사라진 R의 소행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 사건 끝에는 그가 그토록 찾고자 하는 R 을 만날 수 있다고 믿으며 사건 해결에 관심을 갖는 사이 그에게도 서서히 변화가 찾아온다.
이야기는 그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데 중점을 두지 않고 오히려 그 사건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변화에 더 중점을 둔다.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고 마치 뭔가에 빨려 들듯이 사건에 몰입하는 사람은 어느 순간 길에서 벗어나 낙오자로 살아가게 된다.
어쩌면 그렇게 내부에 뭔가를 가진 사람만이 이 사건에 그토록 끌리는 지도 모르겠다.
정형성을 벗어나 어딘가 뒤틀려 있지만 그 뒤틀림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사람만이...
상당히 독특한 책이었다.
사건의 수수께끼도 수수께끼지만 그 사건에 끌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황폐함 혹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는데 이야기의 배경에는 동일본 대지진이 있다는 해설을 보고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한순간에 생사가 갈리지만 인간이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천재지변을 겪고 난 후라면 어떻게 그전과 같은 마음으로 삶을 살 수 있을까
이야기 전체에 흐르는 허무와 무기력 그리고 내면의 어둠을 작가다운 필체로 제대로 표현한 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