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플레저
클레어 챔버스 지음, 허진 옮김 / 다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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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사람들에게 처녀 생식 즉 처녀 수태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기꾼으로 취급하거나 상대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종교에서 가장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 책 스몰 플레저에 대한 별다른 정보 없이 책을 읽었을 때 그 부분 즉 처녀 생식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살짝 당황했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전개였기 때문이었다.

1954년 과학계에서 개구리나 토끼의 처녀생식에 관한 연구가 신문 기사에 실리면서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인간의 처녀생식도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누군가 이 기사를 보고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 즉 처녀로 아이를 낳았다는 주장이 실린 편지를 보내오고 신문사에서는 이 주장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지금 같으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 무시했을 것이지만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는 독자의 이런 주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던 신문사는 그녀를 만나보기로 하고 자신들이 하기 싫어하는 허드렛일을 도맡는 유일한 여성 기자인 진을 보내기로 한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이 기대대로 터무니없는 거짓말쟁이거나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해 허언을 남발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 보기에도 순수하고 사람을 대하는 데 거짓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었고 진이 만난 그레천 틸버리에게는 여기에다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확실한 근거가 있었다.

그녀가 딸아이를 임신했을 시기는 심한 류머티즘으로 인해 혼자 걸을 수조차 없었을 뿐 아니라 그녀가 있었던 요양원에서는 늘 다른 환자와 함께 있어 남자를 만날 수도 없었고 그런 남자조차 없었다는 걸 당시의 간호사와 요양원 관계자가 증명해 준 것

놀라운 건 그녀의 남편조차 그녀의 말을 믿었을 뿐 아니라 조사에 적극 협조하는 자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레천은 딸과 함께 병원에서 하는 검사를 하게 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디라는 동안 그래천의 가족과 진 사이에는 큰 변화가 찾아온다.

이렇게 스몰 플레저에서는 겉으로 봐선 처녀 임신을 한 그레천의 확고한 주장을 진이라는 기자가 조사하는 이야기지만 들여다보면 두 여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진은 일을 하는 커리어 우먼이자 독신 여성이면서도 모든 걸 통제하고 싶어 하는 노모와 함께 살고 있어 자신을 위한 시간을 한 시도 낼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 그녀의 눈에 비치는 그래천은 비록 딸아이의 출생은 의심스럽지만 그녀를 믿고 사랑해 주는 남편과 엄마를 사랑하고 따르는 사랑스러운 딸을 둔 행복한 주부였다.

자신은 가질 수 없는 모든 걸 손에 쥐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진은 사랑하는 사람도 아이도 없는 자신의 처지가 쓸쓸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지만 진이 그래천의 주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 옛 친구의 출현은 이 모든 걸 단숨에 뒤집는 결과를 가져온다.

행복하고 완벽하게 보였던 틸버리 가는 한순간에 흔들리고 무너졌으며 이 과정에서 뜻밖의 행운을 안게 된 건 진이였다.

과거 안타까운 연애의 실패 이후로 언제나 혼자이고 평생을 노모를 보살피며 자식도 갖지 못한 채 사랑받지 못하고 늙어갈 것만 같았던 진에게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보석 같은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처녀 생식이라는 의외의 소재로 한순간 짧은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스몰 플레저는 제인 오스틴의 뒤를 잊는 작가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여성의 심리묘사에 탁월했다.

특히 진이 여성으로서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기쁨과 두려움, 질투의 감정의 묘사뿐 아니라 여기에 자신이 찾아낸 진실을 밝힐 때 누군가가 받을 크나큰 아픔과 상처에 대한 기자로서의 고민과 갈등에 대한 묘사는 섬세하면서도 그 미묘함을 잘 표현해냈다.

그럼에도 작가는 갈등 상황을 타당한 마무리로 잘 매듭지었다 생각했는데 의외의 반전을 남겨둬 마지막까지 독자를 놀라게 했다.

제목이 왜 스몰 플레저일까 하는 의문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었는데 마지막에 가서야 의문이 풀렸다.

섬세하고 사랑스럽고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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