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아이
조진주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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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성공하기 어려운 범죄 중 하나가 유괴고 범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대부분 검거되지만 안타깝게도 유괴되었던 피해자들은 죽음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유괴사건이 빈번하게 벌어진 때가 있었는데 그 대상은 안타깝게도 어린아이일 때가 대부분이었고 결과 역시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을 맺은 게 대부분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아이의 귀가가 늦거나 행방이 불분명할 때 즉각적으로 전국에 경보가 내려지기도 하고 CCTV가 사방에 깔려 있어 이런 범죄가 줄어들었지만 우리에게 아직도 범인이 검거되지 않은 채 피해자 가족에게 돈을 요구하던 유괴범의 목소리만 남은 사건이 기억에 남아있다.

이 책 살아남은 아이는 유괴사건의 피해자면서 살아남은 후 혼자만 살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목격자면서 제대로 된 진술을 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믿지 못해 끝없이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범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희는 오늘도 한 사람의 몽타주를 그리고 있다.

자신이 돌보던 동생 같은 아이 미성이랑 함께 유괴된 후 혼자서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자신이 봤다고 생각하는 유괴범의 얼굴을 매일매일 자신도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범인의 얼굴은 유괴당한 미성의 아빠 얼굴이었고 당시 지희의 증언으로 그는 상당히 고초를 겪은 후 풀려났었다.

그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고 당시의 충격과 범인의 협박이 트라우마로 작용해 당시의 기억 일부가 지워졌고 특히 범인의 얼굴은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나지 않아 미성이의 구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매번 바뀌는 증언에다 엉뚱하게도 미성의 아빠 이동형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바람에 증언에 신빙성이 떨어져 나중에는 그녀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게다가 미성이가 결국 죽어 돌아오면서 미성이를 구출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뿐 아니라 그녀 역시 피해자라는 걸 간과한 사람들의 독촉과 차가운 시선에 상처받고 마음을 다친 채 오늘에 이르렀다.

17년이 흘러 마침내 당시의 범인이 죽음으로서 밝혀졌지만 이상하게도 지희는 그가 범인이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모든 증거가 그가 범인임을 밝히지만 이도형에 대한 의심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던 지희는 더 이상 현실을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마침내 행동에 나선다.

여기서 지희는 피해자이면서도 생존자이고 유일한 목격자이기도 하다.

그녀 역시 엄청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상태에서 아직 유괴범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미성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두가 그녀에게 범인에 대해 질문을 하고 또 질문을 하면서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실망한다.

그리고 그 실망은 이내 어린 지희를 향한 비난으로 쏟아지고 어느새 그녀는 보호받아야 할 범죄 피해자의 신분에서 목격자로서만 존재한다. 그것도 제대로 제 몫을 해내지 못한 실패한 목격자로...

범죄 피해자로 살아가면서 그 사람이 겪는 죄의식과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을 느끼는 생존자의 심리와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살아남은 아이는 이제껏 죽은 희생자나 범인에 대해서만 모든 포커스를 맞춘 여느 작품과는 조금 다른 살아남은 피해자의 심리에 맞췄다는 점에서 색다르게 다가왔다.

여기에다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의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가미해 대중성도 갖추고 있어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다소 가볍게 한데다 과연 누가 진범인지 진실을 찾는 과정의 흥미로움을 더해 가독성 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섬세하면서도 세심하게 그려진 점도 그렇고 소재의 색다른 접근이라는 점에서도 점수를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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