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름은 어디에
재클린 부블리츠 지음, 송섬별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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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인사건이 나면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지는 순간부터 피해자보다 누가 그 사람을 죽였을까 즉 피의자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긴 한데 피해자는 이미 죽은 사람이고 혹시라도 범인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함이라고 말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피해자보다 피의자의 동기나 살해 방법 등이 더 자극적이고 사람들의 이목과 관심을 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결국은 아무리 억울하게 살해당했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든 간에 남의 일 즉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반영해서 모든 살인자가 등장하는 스릴러 영화나 소설 속에서의 주인공 대부분은 범인이거나 그를 잡는 형사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볼 때 이 책 네 이름은 어디에는 살인사건이 나오고 범인 역시 등장하지만 오롯이 피해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다소 색다른 소설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주인공인 소녀 앨리스는 이야기 초반부터 살해당한 즉 이미 죽은 사람으로 자신을 처음 발견한 여자 주위에 맴돌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뉴욕에 두 사람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 도착한다.

한 사람은 열여덟 살의 앨리스이고 또 다른 사람은 호주에서 온 서른여섯 살의 루비

두 사람은 살아온 환경도 외모도 다르지만 무언가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뉴욕을 선택한 공통점이 있고 무엇보다 이 둘을 잇는 연결점은 서로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단지 한 사람은 죽은 채 피해자의 모습이고 또 다른 사람은 이를 맨 먼저 발견한 목격자라는 차이점이 있을 뿐...

앨리스는 이제까지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

아빠는 누군지도 모르고 엄마는 자살로 생을 마감해 세상 천지에 그녀 홀로 서야 하는 외로움에 흔들리다 믿었던 선생님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뉴욕으로 와 간신히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을 거라 희망에 부풀어있었다.

하지만 그런 앨리스의 희망찬 순간에 마치 누군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살해함으로써 그녀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고 이제는 누구도 그녀의 이름과 신분을 아는 사람이 없어 신상 불명의 시신에게 붙여주는 이름인 수많은 제인 중 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호주에서 온 루비 역시 약혼자가 있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 그가 약혼을 깨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다 끝내 자신은 그에게서 숨겨둔 연인 이상은 될 수 없음에 좌절하다 도망치듯 이곳으로 온 상태였다.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 목을 매며 술로 시간을 보내다 우연히 비 오는 날의 조깅에서 앨리스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녀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지만 아무도 죽은 소녀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에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며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모든 사건이 그렇듯 사람들은 이내 이름도 알 수 없는 소녀의 죽음에서 관심이 사라지고 경찰 조사 역시 미진한 상태로 시간만 흘러 자칫 미제 사건 중 하나로 남을 수도 있는 순간 자신이 처음 발견했던 소녀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왜 그 아이가 살해당해야 했는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루비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당연하지만 이런 마음가짐은 루비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기존의 범죄소설과는 전혀 다른 걸음을 보이는 네 이름은 어디에는 이제까지 모두의 관심사였던 범인의 정체나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이 아닌 이름 모를 피해자가 된 한 소녀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어쩌면 기존의 스릴러소설이나 크라임 스릴러의 전개를 기대하는 사람에겐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피해자와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로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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