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지음, 민현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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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라는 단어와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나라 중 하나가 일본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일본에서도 전국에서 대학생들이 대대적으로 데모를 하고 폭력시위가 벌어지던 시기 이른바 전공투라고 칭하던 시기가 있었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 세대였고 그의 소설에서도 그 당시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글들이 제법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책의 주인공이 바로 그 세대를 지나온 사람이었다.

도쿄대 출신으로 학생운동을 했으나 그 전공투가 좌절되고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면서 학교를 때려치운 채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서서히 알코올 중독에 빠져든 남자 시마무라는 지금은 골목 술집의 바텐더로 일하고 있다.

그는 휴일이면 공원에서 한가로이 위스키를 마시는 게 유일한 낙이자 일과였지만 그의 평화로운 휴일은 누군가가 공원에 폭탄을 터트리면서 산산이 부서진다.

공원 곳곳에 사상자가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가 한 일은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오는 게 아니라 잠깐 그의 곁을 스쳐갔던 여자아이의 안위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시마무라라는 캐릭터의 성격을 온전히 알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이익을 쫓기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유형... 게다가 그는 경찰에게 쫓기는 수배자 신분이었음에도 몸을 피하기 보다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는 등 남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

자신의 신분이 곧 발각될 거라는 걸 알고 거처를 옮기려는 그에게 오래전 자신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고 잠시지만 같이 산 적도 있었던 유코의 딸이 찾아와서 밝힌 사실로 인해 이 사건이 여느 평범한 사건과는 다른 흑막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날 그 공원에 유코도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이제 시마무라에게 이 사건은 개인적인 일이 된다.

게다가 조사를 하다 역시 같이 학생운동을 했고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구와노 역시 유코와 함께 그 공원 테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점점 더 사건의 진상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한날한시에 한때같이 학생운동을 했던 세 사람이 한곳에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폭탄 테러는 뭘 노린 걸까?

잠시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손을 떨어댈 정도로 알코올 중독이 심각한 시마무라지만 이런저런 사실에서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사건 이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지적이다.

게다가 경찰에 의해 수배령이 떨어지고 야쿠자마저 그의 뒤를 쫓는 와중에도 노숙인을 챙기고 자신으로 인해 누구라도 피해를 보지 않도록 신경 쓰는 모습은 그가 왜 지금의 사회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지 깨닫게 된다.

한때는 꿈과 이상을 위해 기존 세대와 대치도 하고 데모도 했던 그들이지만 꿈과 이상이 좌절된 후로 그들이 걸어온 길은 녹록지 않았다.

현실에 깎이고 닳으면서 조금씩 그때의 자신들과 달라져가는 여느 사람 들과 달리 고집스럽게 그때 그 모습 그대로를 가진 채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 가는 시마무라의 모습은 겉으로 봐선 사회 부적응자 혹은 실패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굳건하고 삶을 대하는 태도도 유연하다.

어쩌면 그래서 그를 질투하는 사람도 있었던 게 아닐까?

사건의 진실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면서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것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했지만 이야기가 끝을 향해 가도록 좀처럼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한눈팔 틈을 주지 않고 몰입해서 읽게 만드는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은 한때 고민하고 방황하며 사회비판에 앞장섰던 젊은 날의 우리를 보는 것 같은 아련함을 느끼게 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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