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크 머리를 한 여자

엘크 머리를 한 여자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 지음, 이지민 옮김 / 혜움이음 / 2022년 4월

공포 호러 소설이라는 걸 알고 읽었음에도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다.

일반적으로 호러라고 하는 건 다소 비현실적이어도 그래도 익숙한 그 무엇으로부터 오는 공포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에서는 그 공포스러운 존재가 흔히 생각하는 악령이나 악마 같은 초월적 존재도 아니고 사람들을 서슴없이 잔혹하게 살해하는 살인마도 아닐뿐 더러 심지어는 귀신같은 것도 아닌... 평범하게 그지없는 엘크라는 점이다.

엘크는 대략적으로 사슴 과로 알고 있으며 내심 그 사슴이라는 존재가 무서우면 얼마나 무섭겠나 하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에서 엘크는 사람의 몸에다 엘크 머리를 한...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한 채 주인공들 앞에 나타난다.

처음 죽은 사람은 얼핏 보면 술집 앞에서 술에 취해 사소한 시비가 붙은 끝에 폭행당해 죽은 것처럼 보이기 쉽다.

그도 그럴 것이 엘크가 나타나 주차된 차량을 부수고 난리를 치는 걸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죽은 사람에게만 보였다는 것이다.

왜 그에게만 엘크가 보였을까 하는 의문은 이내 다음 장의 주인공에 의해 드러난다.

금발의 백인 아내랑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달아나 살고 있는 루이스라는 남자는 먼저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죽은 남자와 친구 사이였을 뿐 아니라 10년 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엘크 사냥을 한 과거가 있었다.

사냥이 금지된 곳에서 자신을 비롯해 4명의 친구들이 엘크 무리를 만나 사냥을 하다 새끼를 밴 엘크를 죽인 후 죄책감을 느껴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게 된 전력이 있는 루이스

그런 루이스의 눈에 엘크 머리를 한 여자가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걸 깨달으면서 자신에게 복수하러 왔다고 생각하고 불안감과 죄책감 때문에 일상생활을 불가능해질 정도로 혼란스러워한다.

읽으면서 내내 의문이 든 부분이 이런 부분이다.

그들의 눈에만 보인다는 설정으로 봐서 루이스를 비롯해 원주민 친구들이 그날 밤의 사냥에서 뭔가 사건 사고가 있어서 도망치듯 자신의 터전을 떠나온 걸로 미뤄 짐작했던 내 추측이 틀렸을 뿐 아니라 진짜 엘크를 죽인 거였고 단지 새끼를 밴 엘크를 죽인 죄책감 때문에 후회하고 고민한다는 설정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에겐 쉽게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짐승이라도 새끼를 밴 짐승은 죽이지 않는 법이라지만 알고서 악의적으로 죽인 것도 아니고 우연히 사냥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임신한 상태였을 뿐 아니라 그때의 일로 10년이 지나서까지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부분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

이런 부분을 이해하고 납득하려면 아무래도 모든 자연에는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인디언의 고유문화나 그들의 철학 같은 걸 알고 있었다면 좀 더 쉽게 납득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죄책감으로 환각이 보이고 망상까지 하다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 루이스 역시 그를 뒤쫓아 오던 사람들에 의해 사살된다.

이로써 그날 밤 같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 중 2번째 희생자가 나오게 된다.

다음 이야기는 더 혼란스럽다.

모두가 엽기적이라고 생각했던 루이스의 행위로 인해 죽은 여자의 배에서 강제로 끄집어내진 여자아이가 금방 십 대의 모습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알고 보면 그 소녀는 바로 그때 죽은 엘크였다는 점도 그렇다.

겉으로 봐선 십 대의 소녀 그것도 그날 밤의 일행 중 한 사람의 딸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영혼은 그때 죽은 엘크고 스스로도 자신이 엘크임을 인지하고 있다.

이야기마다 피가 낭자하고 잔인하기 그지없는 장면이 나오는 것만 봐선 분명히 공포 호러 소설이 맞지만 그 저변에는 자신들이 살던 터전에서 쫓겨나 한정된 곳에서만 살아야 했던 인디언들의 한 많은 역사와 그들이 가진 억울함과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있다.

어쩌면 굳이 필요가 없는데도 엘크를 사냥했던 그날 밤처럼 인디언들 역시 뒤늦게 나타난 백인들에 의해 자신의 땅에서 살육당하고 쫓겨난 채 여기저기 방황하고 헤매는 엘크의 모습을 동일시하고 있는 건 아닐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공포 호러 소설의 어느 것과도 닮아있지 않는... 다소 독창적인 형태로 공포의 맛을 보여주고 있는 엘크 머리를 한 여자는 마치 공포영화를 글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은 느낌을 준다.

솔직히 읽기가 쉽지 않고 이해가 잘 안돼서 몇 번씩 다시 읽어가며 읽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영상으로 보면 훨씬 더 섬뜩하고 호러의 맛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