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무죄
다이몬 다케아키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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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수많은 루머와 용의자만 남긴 채 끝내 밝혀지지 않아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는듯했다.

그러다 2019년 마치 벼락을 친 것처럼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검거라는 속보가 뜨고 진범의 얼굴이 공개됐을 때야 비로소 모든 게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진범이 밝혀진 후 오히려 후폭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당시 10번의 살인 사건 중 유일하게 범인이 잡혔던 8차 살인사건 역시 자신이 한 짓이라는 진범의 진술 때문이었다.

사실 그동안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 의견을 내놨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받아지지 않았고 덕분에 그 사람은 수 십 년의 세월을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

그런 그가 얼마 전에 재심을 청구해 마침내 온전하게 누명을 벗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나는데 의외였던 건 그 재심 청구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누가 봐도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쓴 게 분명한데 그런 사람이 사법적으로 자신의 누명을 벗는 게 왜 쉽지 않은 걸까?

여기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 당시의 재판 기록이나 증거 같은 걸 찾기 쉽지 않았다는 점도 작용하겠지만 무엇보다 사법부에서 자신이 내린 판결을 쉽게 번복하려 하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는 듯하다.

이 책 완전 무죄에서도 원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변호사로서 입지가 아직 단단하지 않은 마쓰오카는 누가 봐도 쓰레기 같은 인성을 가졌고 충분히 범죄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목격자 증언의 신빙성과 그를 범인으로 볼 수 있는 증거가 없다는 걸 들어 유력한 용의자를 무죄 변론해 단숨에 모두의 주목을 받는다.

그런 때 로펌의 시니어 변호사로부터 재심사건을 맡아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는다.

그 사건은 21년 전 한 아동을 납치 후 살해 한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히라야마가 당시의 재판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음을 주장하며 재심 청구를 요청했지만 당시 용의자였던 히라야마가 자백을 했고 그의 범죄를 증언할 목격자도 있었던... 누가 봐도 명백한 사건이었다.

게다가 마쓰오카는 사실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죽은 아이 외에도 두 명의 아동 납치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었고 그녀 역시 납치된 사건의 피해자면서 유일하게 탈출에 성공해 살아남은 생존자였던 것

어린 시절 누군가에 의해 끌려가 눈을 떴을 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결박당한 채였고 운 좋게 자신을 묶은 줄을 풀고 그곳을 빠져나온 이후로 그녀는 21년이 지났음에도 매일 밤 누군가에게 쫓기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녀는 히라야마를 대면하면서 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상처를 위해서 재심을 하겠다고 결심하지만 그를 대면한 후 생각이 달라진다.

어쩌면 그의 주장대로 그가 진범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의심은 이내 확신이 되고 히라야마는 억울한 희생자에 불과했음이 드러나지만 당시 그를 조사하고 심문했던 경찰들을 비롯해 그에게 유죄 선고를 내리도록 했던 검사까지 당시 자신들이 그를 심문하면서 저지른 온갖 불법적인 일이 드러날까 두려워 단단한 방어막을 치고 결사적으로 방어한다.

그들 중 일부의 사람에겐 히라야마가 진짜로 범인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았고 자신을 위해서 그가 반드시 진범이어야 했다.

각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지만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히라야마의 무죄를 증명할 증거는커녕 어떤 단서도 없어 난항이 예상되는 가운데 당시 그를 심문하고 조사했던 두 명의 경찰 중 한 명이 느닷없이 자신이 그를 대상으로 폭행이 있었을 뿐 아니라 결정적 증거인 죽은 아이의 머리카락 역시 자신이 그의 차에다 몰래 둔 것이었다는 모든 걸 뒤집을 증언을 한다.

이후 모두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분위기가 급변한다.

어린아이를 납치하고 살해한 범인을 잡은 우수한 경찰들이 이제는 폭력과 거짓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파탄 낸 무능하고 나쁜 경찰이 된 것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모두가 당연하다 생각했던 진실이 단숨에 뒤집어지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당시 납치의 피해자였다 이제는 범인이었던 사람을 위해 변호사로서 그의 무죄를 증명하는 처지가 된 마쓰오카와 당시 사건 담당 경찰로서 어린아이를 상대로 몹쓸 짓을 벌인 희대의 나쁜 놈을 잡았고 자신은 옳은 일을 한 거라 굳게 믿는 아리모리의 시선으로 두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의심 그리고 마음의 변화를 담고 있는 완전 무죄는 길지 않은 이야기지만 스토리가 탄탄하고 짜임새 있어 몰입감이 좋았다.

그리고 끝까지 히라야마가 진짜 범인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든 작가의 의도는 적중해서 좀처럼 그에 대한 의심이 걷어지지 않는다.

사건 당시의 뚜렷한 알리바이도 없고 평소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평가 역시 좋지 않았던 점은 아리모리를 비롯한 경찰들이 왜 그를 쉽게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불법적인 일까지 서슴없이 저질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그런 일을 하면서도 자신들은 정의를 행사한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거침이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이 밝혀진 후 보면 그들이 믿었던 정의를 구현한다는 신념이 얼마나 알량한 건지... 그런 신념이 오히려 자신들을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스토리로서도 재밌지만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이 얼마나 큰 피해를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전 무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소설답게 가독성 좋고 의외의 반전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길지 않은 이야기라 한 호흡으로 단숨에 읽을 수 있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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