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는 소녀와 축제의 밤
아키타케 사라다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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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나 괴물이 나오거나 좀비와 같은 혐오스러운 뭔가가 뒤를 쫓아오는 이야기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다만 그 뭔가를 처리하기 위해 모인 인간의 집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나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아슬아슬함이랄지 긴장감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 취향의 책이었다.

이형의 존재가 나오고 분위기도 음산한 듯하지만 오롯이 그 이형의 존재가 주는 압도적인 공포에 잠식되거나 그것이 벌이는 무서운 일에 잠식당하지 않은 채 마치 하나의 사건처럼 처리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게다가 이 책에 나오는 그것들은 한마디로 두렵기는 하지만 처리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4편으로 되어있는데 각각의 파트에서 이형의 그것이 등장한다.

그리고 각각의 파트에 등장하는 그것의 이야기는 그 파트에서 끝나지만 서로의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는데 모든 이야기는 마지막 이야기인 축제날 밤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위한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낡은 구관의 교실 밑바닥에 존재하는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 사건에 엉겁결에 휘말린 교사 사카구치는 한 소녀의 조언 덕분에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난다.

밤마다 악몽처럼 찾아오는 거대 생물체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소년과 어릴 적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와 맺은 계약 때문에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곁에 둘 수 없었던 소녀 역시 우연히 한 소녀의 도움으로 자신을 얽매던 위협에서 벗어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각자는 어떤 위협에서 한 소녀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탈출한다.

그 소녀의 이름은 마쓰리비 사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도움을 줬던 사야에게 빚을 진 세 사람은 이제 그녀에게 받은 도움의 빚을 청산하고자 한다.

그녀의 오빠를 노리는 마물로부터 오빠를 구하는 것... 그러기 위해선 축제의 밤에 밤새도록 그 동네를 돌면서 마물을 유인하기 위해 네 사람은 마을의 오래된 터널로 향한다.

터널을 빠져나오면서부터 그들의 뒤를 쫓는 마물과의 추격전은 시간이 갈수록 긴장감을 높여주지만 이들은 자동차를 타고 있기에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나 이런 생각도 잠시 그저 자신들이 유인하는 대로 따라올 거라 믿었던 마물이 마치 그들의 작전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앞질러서 기다리고 있는 걸로 모자라 마치 사냥감을 몰듯이 그들을 몰아가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이 마물이라는 게 보통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고 이제 이들은 더 이상 피할 데도 없는데 사야는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가 끝까지 밝히지 않았던 비밀을 눈치챈 사카구치는 결단의 순간 선택을 한다.

이야기 전체를 이루는 괴담은 사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무엇이었다.

잠을 자면 뭔가가 벽 속에서 혹은 컴컴한 옷장 같은 곳에서 기어 나온다는 상상을 하거나 혹은 낡은 교실에 뭔가가 살고 있다는 식의 괴담은 우리도 흔히 말하는 것이고 사람의 모습을 한 채 접근해 와 소원을 들어주고 그 대가로 사람에게서 뭔가를 뺏어간다는 괴담 역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주 들었던 괴담이었다.

작가가 이런 괴담만 늘어놓았다면 흔한 괴담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겠지만 이렇게 흔하고 평범한 괴담에다 후회라는... 사람들이 살면서 평생 한두 번은 느끼는 그 감정을 섞어놓았다는 데 이 책의 매력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후회 혹은 그때 그랬더라면 하는 후회...

그리고 그 후회의 감정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하는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명제를 다루고 있기에 보통의 호러소설과 다른 점이자 이 책이 호러 대상을 받을 수 있었던 근거가 아닐까 싶다.

사야도 그렇고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여서 이 책 한 권으로 끝나는 게 아쉽게 느껴지는데 사야가 주인공인 다른 작품이 있다니 그 책도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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