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의 살의
미키 아키코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집안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의 범인이 이내 검거된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후 그 사건의 범인이 옛 연인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뿐 아니라 그날 사건의 진상에 대한 나름의 추리를 들려준다는... 이른바 범인으로부터의 편지라는 흥미로운 소재의 이 책은 일본에서 추리의 정밀기계라 불리는 미키 아키코의 대표작이다.

그런 만큼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 숨은 의미를 찾고 어딘가에 숨겨진 단서를 찾기 위해 상당히 정독하며 읽게 했다.

처음 시작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명문가의 집안에서 누군가에 의한 독살 사건이 벌어지고 이 사건으로 집안의 후계자의 부인과 그 아들이 죽는다.

범인은 죽은 이들의 남편이자 아버지였고 이 사건으로 그는 사형까지 갈 수도 있었지만 그가 스스로 자백을 했다는 점이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살게 한 배경이 된다.

그가 스스로 범인이라 자백을 했던 이유는 모든 증거가 그를 향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데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납득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후 그는 가석방이 되었고 옛 연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뜬금없게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왕래하는 편지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고 연인 간에 추리 대결을 펼친다는 게 이 책의 핵심이기도 하다.

먼저 그날 그 자리에 모였던 사람들 중 그가 지목한 사람은 이 사건 이후 가장 큰 혜택을 본 사람이었지만 연인은 그의 이런 주장을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반대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고는 뜻밖의 용의자를 지목하는 데 그 의견이라는 게 평범한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주장은 대범할 뿐 아니라 살해의 이유와 목적 그리고 정황 등 모든 것이 완벽해 누가 봐도 타당했지만 그는 그녀의 주장을 한마디로 뒤집는다.

이렇게 서로에게 몇 통의 편지를 통해 그날의 사건을 각자의 시선에서 재조립하고 사건 당시 그 집안에 흐르던 분위기나 정황을 독자들이 알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각자의 캐릭터에 입체감을 부여하고 있다.

집안 전체는 물론이고 사업적인 측면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막대한 힘을 행사하던 당주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단숨에 이 집안의 분위기를 바꿔놓았을 뿐 아니라 집안의 운명마저 뒤흔들었다.

게다가 당주의 뒤를 이을 아들의 부제...

어쩌면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막대한 부와 권력을 이어받을 후계자의 부재... 이것 때문이지 않을까?

유일한 후계자였던 아들은 죽었고 손자는 아직 어려 그 사이의 간극을 메워줄 존재가 필요했던 당주에게 두 딸의 결혼은 필요한 사람을 뽑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었고 그렇게 선택되었던 사람이 바로 하루아침에 처자식을 살해한 범인이 된 하루시게였다.

갑작스러운 당주의 죽음은 모두를 혼란에 빠뜨리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다 하루아침에 새로운 당주가 된 하루시게를 향한 시기와 질투는 끝내 그를 억울한 누명의 희생자로 만들었고 그 역시 잠깐의 유혹에 진 결과로는 너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했다.

그렇다면 그날 사건의 증거가 모두 그를 향하고 있었다지만 그는 왜 변변한 저항이나 변명조차 하지 않고 스스로 하지도 않은 살인을 고백해 수십 년간을 감옥에 갇히는 삶을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데 편지를 통해 그 이유가 밝혀지면서 그의 순진한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편지만으로 그날 사건의 진실과 진범을 밝혀낸다는 설정은 숨겨진 의미와 트릭을 찾기 위해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하고 몰입해서 읽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범인이 밝혀질 즈음 또 다른 죽음을 배치해 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렸을 뿐 아니라 마지막까지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작가의 치밀함에 감탄하게 했다.

재미도 있었고 가독성도 좋았을 뿐 아니라 마지막 반전까지 삼박자가 잘 갖춰진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