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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 : 젓가락 괴담 경연
미쓰다 신조 외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평점 :
각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릴레이 형식으로 괴담을 만든다?
상당히 흥미로울 거라 예상되는데 소재가 젓가락이라는 부분에선 다소 의외로 느껴졌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흔한 젓가락이 과연 괴담의 소재로 적당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릴레이에 참여하는 작가의 이름 중 미쓰다 신조와 찬호께이가 포함되어 있는 걸 보고는 납득이 되었다.
워낙에 좋은 작품을 쓰는 걸로 유명한 두 사람인데다 특히 미쓰다 신조하면 괴담이 바로 연상될 만큼 그 부분에선 과히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작가고 찬호께이 역시 이야기를 풀어가는 힘이 남다른 작가이기에 믿음이 갔다.
이야기의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젓가락님이라 불리는 어떤 주술적인 힘을 가진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과 그 주술적인 힘을 통해 원하는 걸 얻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섞여 있는 거라 볼 수 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인 한, 중, 일에서는 밥이 담긴 그릇에 젓가락을 똑바로 꽂는 걸 금기시하는 문화가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그렇게 밥에다 젓가락을 똑바로 꽂는 건 사자 즉 죽은 사람을 위한 밥이라는 표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괴담 속의 주인공들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비는 대상이 젓가락신이라는 점이 납득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쓰다 신조가 일본에서 원하는 걸 얻기 위한 의식으로 젓가락님에게 빌면서 벌어지는 괴이한 일에 대한 이야기로 전체적인 틀을 짰다면 대만의 작가인 쉐시쓰와 에터우쯔,샤오샹신이 본격적으로 젓가락에 얽힌 괴담을 그려내고 찬호께이가 여기에다 신화와 전설 속 이야기에서의 틈을 이용해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쳐놓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붉은 산호로 만든 젓가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괴이한 일을 그린 산호 뼈에서는 젓가락에 깃든 왕선군이라는 구체적인 인물이 등장하고 그 젓가락 신을 믿는 걸 넘어 자신의 영혼마저 뺏긴 한 여자의 이야기와 그런 어미를 둔 아들 역시 주술적인 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속박된 삶을 살아가는 다소 슬픈 이야기였다면 이 이야기의 이후를 잇는 건 악어 꿈이다.
언젠가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유행처럼 번지는 젓가락 신에게 소원을 비는 위험한 의식을 한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한 아버지가 괴담 소설가로 유명한 작가를 찾아와 이 괴담의 뿌리를 찾기 시작하는 데 왕선군에게 영혼까지 사로잡힌 여자가 왜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누가 처음으로 산호 젓가락에 깃든 왕선군을 불러내는 의식을 시작했는지를 추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추적하면서 드러나는 진실은 상당히 추악하다.
어린 여자아이를 돈을 주고 사 와서 명목은 며느리라 하면서 공짜로 부려 먹는가 하면 같이 태어났어도 딸이라는 이유로 오빠에게 모든 걸 양보하는 게 당연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그 딸아이의 입장에선 억울하다고 느끼는 게 당연하지만 아무도 그런 딸의 입장은 생각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연히 의식을 통해 자신의 소원을 들어준 왕선군의 산호 젓가락에게 점점 얽매이고 속박당하다 결국은 정신까지 놔버리는 형벌을 받은 그녀에게 약간의 연민의 감정이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산호 뼈와 악어 꿈이 다소 오래전의 이야기여서 사람들이 미신을 쉽게 믿었다고 한다면 저주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에서는 도시괴담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거기에 얽혀있는 인간의 욕망과 금기와 저주의 비밀에 관해 풀어가고 있다.
그리고 찬호께이의 해시 노어에서는 그 과정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설 속의 이야기나 설화에서 작은 빈틈을 찾아 상상으로 메꿔 넣어 괴담을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옛날이나 현재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불안과 금기를 깨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남을 향한 질투와 원망이라는 감정은 있어왔고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공포를 먹이로 삼아 발전되어온 것이 괴담이라는 형태로 남아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사람들이 많이 배우고 기술이 발전함에도 도대체 말도 안되고 근본도 없는 괴담이 사라지지 않고 유행하는 것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겠다.
결국 괴담이란 것의 밑바닥에는 사람들의 욕망과 질투 그리고 악의가 깔려 있음을... 그런 것이 사라지지 않는 한 괴담도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걸 보여주고자 함은 아닐지...
이런 복잡한 걸 떠나서 괴담만으로도 읽는 재미를 준다.
5인의 작가들이 각자의 역량을 펼치면서도 서로 이야기를 연결시켜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