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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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보고 단숨에 혹 하게 된 부분이 두 가지 있다.

몇 해 전 일본에서 유명한 사건... 즉 돈 많고 나이가 많은 남자들에게 결혼을 미끼로 접근해 돈을 가로채고 그 남자들을 죽였는데 세간의 생각과 달리 그 여자가 너무나 뚱뚱하고 평범한 아줌마라는 것에서 오는 괴리 때문에 일본 열도가 충격에 빠졌다고 우리나라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바로 그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부분에서가 첫 번째

그리고 그다음은 연재를 읽을 때 사건 가해자인 가지이 마나코가 그녀를 취재하러 온 잡지사 기자 리카에게 버터 간장밥으로 소개하는 장면에 매료된 것이 이 책을 읽은 두 번째 이유다.

읽다 보면 처음 생각과 달리 살인사건으로 의심되는 사건들의 진상을 파헤치거나 그 이면에 중점을 둔 소설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현대인들의 늘 품고 있는 고독과 소통의 부재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30대 초반의 리카는 잡지사에서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지만 그 외의 생활에선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집에선 잠만 자고 끼니는 대충 때우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결혼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고 연인이라 해도 서로 필요할 때 옆에 있어 주지 않는 그저 그런 사이의 남자친구만 있을 뿐... 성욕도 식욕도 리카에겐 큰 관심 꺼리가 아니었다.

그랬던 리카가 조금씩 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간섭과 충고를 가장한 질타를 해오기 시작한 건 꽃뱀 사건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지이 마나코를 취재하면서부터다.

3명의 남자들의 죽음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으면서도 조금도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그녀의 태도는 리카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왔고 누구에게도 취재를 허락하지 않는 가지이를 취재하기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요리에 관한 이야기로 호감을 산 그녀의 작전은 성공해 그녀를 면회한 첫날 버터 간장밥을 소개받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권유대로 버터를 비롯한 맛있는 음식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살이 찌기 시작하고 그제야 비로소 세상에서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조건의 민낯을 보게 된다.

그녀가 날씬했을 때는 몰랐던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폭력에 가까운 간섭

여자들은 조금이라도 살이 찌면 자기관리가 부족한 사람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뚱뚱해지는 데는 용기와 각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리카는 가지이로 인해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좋아지게 된다.

그렇게 몇번의 만남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새 가지이에게 끌려가게 되는 리카

가지이에게는 그렇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고 특히 좋아하는 요리를 말할 때의 그녀는 거침이 없어 그런 모습에 압도당하게 되지만 리카가 가지이의 진짜 모습을 깨닫게 되는 건 자신처럼 그녀의 카리스마에 속절없이 휩쓸리다 자신마저 놓아버릴 뻔한 친구를 보면서이다.

가지이의 행보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그녀가 리카에게 말하지 않았던 부분, 숨기고 자 했던 부분까지 통찰할 수 있게 되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를 상대로 치열한 힘겨루기를 하는 데 그 모습이 오래전 본 영화 양들의 침묵이 생각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밀고 당기고 때론 속살거리며 비밀을 말하는 모습이 고등학교 때의 여자 단짝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지이가 자란 고향을 직접 방문해 어릴 적 친구의 입을 통해 알게 된 진실... 그것은 어쩌면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했던 한 소녀가 우연히 누군가를 보살피면서 얻게 된 자기 생존법이었다.

누군가를 보살피면서 군림하는 것

죽은 남자들 역시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누군가가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외롭지 않게 살고 싶다는 마음의 빈틈을 가지이는 예리하게 파고들어 음식으로 그들을 조종하고 원하는 대로 끌고 갔던 건 아니었을까

마음에 상처가 있어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리카나 리카의 친구 레이코가 가지이의 말에 흔들리고 짧은 순간이나마 휩쓸렸던 것처럼...

그렇게 보면 이 사건의 전체 이미지가 떠오른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외로운 노인에게 접근해 친근한 모습으로 따뜻하고 정성이 깃든 음식을 해주며 원하는 걸 속살거리는 모습

소설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듯해 읽으면서 우울함을 느끼게 했다.

버터를 종류별로 맛보고 싶다는 것과는 별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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