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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구치 요리코의 최악의 낙하와 자포자기 캐논볼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7월
평점 :
여기 최악의 가족이 있다.
아빠는 갚을 능력도 안되면서 사채까지 끌어다 써 사채업자로부터 시달리고 있고 엄마는 이런 남편과 가족을 나 몰라라 하면서 바깥으로만 돈다.
오빠는 집안에서 폭군이 되어 모든 걸 폭력으로만 해결하려 하고 요리코는 아무런 꿈도 없고 생각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흘러갈 뿐이다. 그야말로 답이 없는 집안이다.
그런 요리코가 3년 전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에서 살아남은 후 가해자인 동생에게 사건의 진실을 들려주면서 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서서히 드러난다.
가족에게 내내 폭력을 행사하던 오빠가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추락한 후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 느닷없이 깨어나면서 가족의 일상은 변하기 시작한다.
깨어났지만 기억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린 오빠는 새사람이 된 것처럼 달라졌고 아빠는 남매에게 다른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살지 말고 자신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유언 같은 말과 낡은 트럼프를 남긴 채 사라진다.
이런 와중에도 이 가족들은 누구 하나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그들을 오래전부터 보살펴 주던 백부님의 집으로 들어가지만 요리코의 말과 달리 백부라는 사람이 하는 행동은 어딘가 의심스럽다.
집안에서 이런저런 규칙을 강요하고 많은 것을 요구할 뿐 아니라 자신의 기대에 순응하지 못하거나 만족한 상태에 이르지 못하면 벌을 준다.
게다가 요리코네 가족뿐 만 아니라 이 집안에 있는 사람 모두는 도무지 정상적이지 않다.
무조건 순종하는 태도도 그렇고 밤이 되면 다른 사람의 방에 절대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식의 이해할 수 없는 규제도 그렇지만 백부를 상대로 일을 해야 한다는 딸의 말을 듣고도 제대로 하라고 독려하는 엄마의 모습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조차 없는 건 이해의 범위를 넘어 어처구니없게 느껴진다.
문제는 아무도 이런 상태를 이상하다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 집안사람들의 뇌의 구조다.
정의감이 있고 바른 생활을 했던 오빠가 왜 무차별 총기 난사사건의 범인이 되었는지를 궁금해한 동생의 의문에 들려준 요리코의 이야기는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한 사람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과 신뢰가 어떻게 구축된 건지 그들은 왜 이런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부조리한 일을 당하면서도 침묵하고 있었는지 그 과정이 너무나 어처구니없어 실소가 나온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는 게 이 책의 장점
자신의 생각이란 게 없이 그저 다른 사람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던 하얀 백지 같던 요리코가 어떻게 부조리에 정면으로 맞서게 되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처음엔 어이없어 하다가 나중엔 요리코를 응원하게 된다.
반드시 승리하라고...
제목과 표지를 보고 생각했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분위기, 다른 느낌의 이야기다.
문체는 가볍고 경쾌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무겁고 암울하다.
좀체 뒤에 올 내용을 예상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종잡을 수 없는 스토리 전개지만 상당히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온 책이었다. 처음 읽어보는 작가의 작품인데 다른 작품과 색깔이 완연히 다르다니 작가의 다른 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