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죽일 수 없었다
잇폰기 도루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인범대 신문기자의 신문 지면에서의 대결이라는 소재부터 흥미로웠던 그래서 죽일 수 없었다는 휴먼 미스터리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책이었다.

단순히 누군가를 살해한 사건을 추적하는 것이 아닌 그가 왜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의 과정과 그 과정을 통해 사회 전반적으로 벌어지는 약자를 향한 폭력과 그 폭력을 막을 수 있음에도 그저 바라만 보는 우리들을 향해 우리도 그 죄에서 무죄가 아님을 고발하고 있다.

연이어 무차별적인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전국지이자 메이저 신문인 다이요에 자신이 그 살인범임을 고백하는 편지가 도착한다.

그리고 그 편지를 통해 자신과 지면으로 공개토론을 제안한다.

만약 자신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또 다른 살인사건이 벌어질 거라 도발하는 범인이 원하는 공개토론의 대상자는 바로 사회부 기자인 잇폰기 도루

사실 다이요는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었고 연쇄살인범이 보내온 편지는 단박에 특종이 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다.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는 곳에 돈이 모여들 수밖에 없고 그런 이유로 다이요의 편집부를 비롯해 위층에서는 이 대결을 적극적으로 반길 수밖에 없다.

여기서 현재 미디어가 가진 문제점 및 경박함이 드러난다.

돈이 된다는 이유로 조회 수나 구독자를 올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극적인 문구로 시선을 끌고 인기 있다는 이유로 살인범과의 토론을 확대시키는 모습을 보면 범인을 잡거나 그를 설득해서 범행을 그만두게 한다기 보다 오히려 계속 범행을 멈추지 말고 계속 저질러주기를 바라는 게 역력하다.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듯하지만 스스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몰염치함을 보인다.

문제는 연쇄살인범 역시 언론의 이런 속성을 미리 파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정의를 구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돈이 되는 걸 쫓는 미디어의 이중성과 경박함을 통렬히 비꼬고 있었다.

거기에다 사회 전반에 스며든 폭력과 악에 대한 그의 논조는 사람을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가는 바이러스로 비유할 정도로 경멸하고 있는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글이었다.

물론 이런 도발에 잇폰기 도루는 휩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죽은 사람들이 왜 선택된 건지 그 공통점을 집요하게 파헤치면서 진실에 접근해간다.

이야기 전체를 잇폰기 도루의 시선과 또 다른 사람인 에바라 요이치로라는 인물의 시선으로 펼쳐지는데 두 사람의 접점은 누구나 예상하듯 범인과 기자로서의 접점이 아니라는 점이 의외였다.

이외에 신문사 내에서 신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든지 현재 언론이 처해있는 상황에 대한 묘사가 세밀해서 그 걸 지켜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백신이라는 인물이 주장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이나 자신의 일이 아닌 타인의 일에 대한 무감함과 무신경함, 한없이 가벼워진 말의 무게에 대한 고찰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서 와닿았다.

살인사건이나 그 해결이 주가 되는 게 아니어서 일본 소설 특유의 가독성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울림이 있는 글귀들이 많아서 왜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