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의 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2
하야미 가즈마사 지음, 박승후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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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반대되는 뜻을 가진 단어의 합성이라 그런지 의미하는 바가 뭘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다.

죄가 없다는 뜻의 무죄가 어떻게 하면 죄가 될 수 있는 걸까?

이렇게 시작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 책은 책을 읽고 난 뒤 후유증이 심각했다는 누군가의 말이 와닿을 정도로 읽는 내내 무기력함을 느끼게 했다.

읽은 사람들의 추천으로 역주행의 신화를 만든 책답게 확실히 가독성도 좋고 몰입감도 좋았지만 특히 결말까지 평범함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전 연인을 스토킹하다 집에 불을 질러 아내와 갓 돌이 지난 쌍둥이를 죽게 한 죄로 구속된 여자 다나카 유키노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어린 아기들까지 희생시킨 희대의 악마로 불리며 언론부터 시작해 모두의 지탄을 받고 사형 판결을 받는다.

그녀의 행위 자체로만 보면 누가 봐도 그녀가 한 짓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을만한 죄가 분명한데 문제는 그녀의 태도다.

보통 살인을 저지른 죄수들이라 할지라도 1심 재판 이후 형량을 줄이기 위해 항소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유키노는 누구에게나 허용되어 있는 항소는커녕 감형 받을 수 있는 어떤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판결에 대한 어떤 의의도 내비치지 않고 사형 판결을 받아들인다.

마치 자신이 죽어 마땅하다는 듯이...

그렇지만 피해자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나 사과의 뜻은 비추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은 더 가증스럽게 비치기까지 한다.

이런 사람들의 관심에 불을 붙이듯 언론은 그녀의 모든 걸 샅샅이 조사하고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과의 인터뷰를 통해 과거에 저지른 죄까지 만천하에 폭로해버린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아빠 없는 아이를 낳은 철없는 엄마 그리고 유키노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가했던 양부, 이런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10대에 저지른 강도치사 사건까지...

한 편의 막장 가족의 막장 같은 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유키노는 극형을 받아 마땅한 인물이 된다.

그렇다면 그녀 유키노는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진짜 그렇게 잔인하고 악독한 걸까?

판사가 그녀에게 판결을 내릴 때 그 양형의 이유를 들면서 했던 말을 목차로 해서 그녀의 친구와 지인들의 입을 통해 조목조목 반박의 근거를 밝히고 진실을 드러내는 다소 거친듯한 방식은 보이는 것만 믿고 그 이면에 숨겨져있는 진짜 모습에 대해선 눈 감는 대중과 사법부를 비꼬기 위함은 아닐까 싶다.

그녀로 인해 가족을 잃은 유키노의 전 연인만 해도 언론에 의해 마치 무고한 희생양인 것처럼 비쳤지만 진실을 아는 친구의 입을 통해 그가 얼마나 파렴치하고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는지... 적어도 무고한 희생양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그녀 유키노의 과거가 보이는 게 다 진실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평범한 길을 갈 수 있었던 유키노의 삶이 무너져내리고 결국엔 사형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그녀의 곁에서 도움의 손길을 줬더라면 그녀의 삶은 달라졌을 텐데...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순 없지만 적어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읽으면서 유키노의 삶이 답답해서인지 아니면 무기력한 그녀의 모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가라앉고 침잠했다.

이 우울한 기분을 벗어나려면 다음 읽을 책은 조금 가볍고 희망적인 책이 되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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