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여백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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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한 번쯤 쳐다볼 정도로 예쁘고 머리도 좋아 성적은 늘 우수, 거기다 붙임성 좋은 성격은 어딜 가서도 중심에 서는 게 당연한 아이가 있었다.

집안도 큰 부자는 아니지만 원하는 사립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여력이 되고 어른들에게도 칭찬받는 것이 익숙한 아이

게다가 학교에 부임한 교생이 학생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심지어 조롱을 당할 때도 학생들 편에 서지 않고 교생 편에 서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꿋꿋하게 버텨 결국 친구들을 굴복시키고 교생에게 가했던 왕따를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는 올곧은 아이...

여기까지가 사람들이 평가하는 사키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렇게 일견 완벽해 보이는 아이의 내면은 말할 수 없이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친구를 이용하는 데 거침없을 정도로 교묘하게 머리를 쓰는... 내면이 비틀어지고 고장 난 아이였다는 게 실체였다.

당연히 사키의 이런 모습을 알 수 없었던 동급생 친구들은 그녀의 화려한 겉모습과 인기에 끌려 친구가 되고 싶어하고 평소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던 마호에게 있어 사키라는 존재는 연예인보다 더 대단한 존재였다.

게다가 먼 존재로만 여겨졌던 사키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그녀의 조언대로 꾸미면서 외모에 대한 자신감마저 갖게 되면서부터 마호는 사키의 곁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리라 결심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런 둘 사이에 틈이 생긴 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이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얼른 자신과 맞는 무리에 끼지 못하면 짝을 이뤄 해야 하는 체육시간이나 교실 이동할 때 혹은 점심시간 같은 경우 짝이 없이 혼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는 걸 여자들은 안다.

체험 학습 같은 걸 갈 때에도 다른 아이들은 짝을 이뤄 버스에 타고 갈 때 혼자 앉아야 한다거나 아니면 자신과 마찬가지로 친한 짝꿍이 없어 혼자인 아이와 같이 앉아 가야 한다는 건 다른 아이들의 시선과 말에 민감한 여고생에게는 부끄러움과 굴욕을 넘어 자칫하면 왕따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그래서 언제나 혼자였던 마호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준 사키라는 존재가 마호에겐 일종의 구원 같은 존재였고 그런 이유로 누가 봐도 무리한 부탁에도 고민하지 않고 응한 건 다시 혼자되는 두려움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호에겐 이런 둘 사이에 들어온 가나라는 존재는 친구가 아닌 훼방꾼이었고 마호의 이런 심리를 꿰뚫어 본 사키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나만 없으면 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새 친구를 사귀었다는 안도감을 품었던 가나는 서로 친하다 생각했던 두 친구에 의해 죽도록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영문을 모른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왜 친구들이 갑자기 거리를 두는지 이유를 모르는 것만큼 괴롭고 힘든 건 없다.

혹시 자신이 뭔가 그 아이들에게 잘 못한 게 없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없는 잘못을 반성하다 나중에는 주눅이 든 채 자신이 그 아이들 무리에서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들어주는 지경에 이른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그 아이들의 문제라는 걸 인식하지 못한 채...

한 아이 즉 가나가 아이들이 있는 학교에서 떨어지면서 시작하는 죄의 여백은 영문도 모른 채 딸아이의 자살 소식을 듣고 왜 진작 아이의 괴로움을 몰랐을까 자책하는 아빠의 심경과 이런 지경에 이르렀어도 그저 가나의 죽음이 자신들 탓이라는 게 들통날까 두려워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하고 실행하는 사키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마호와 가나를 통해서는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어도 부모나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지 그 나이 또래들이 같은 또래와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언어폭력과 육체적 정서적 폭력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아이를 잃은 가나의 아빠를 통해서는 남은 가족이 느끼는 회한과 후회의 심경이 절절히 드러난다.

책 속에 등장하는 물고기 베타는 어쩌면 사키를 표현하고자 한 장치였을까?

화려한 겉모습으로 많은 애호가가 있지만 같은 수컷끼리 절대로 한 곳에 둘 수 없는 공격적인 이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사실 왕따로 인한 문제라는 소재는 자주 다뤘고 특히 사회파 소설의 소재로 많이 쓰여서 자칫 비슷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간결한 문장과 문체로 가독성을 높였을 뿐 만 아니라 두 사람 즉 가해자와 피해자 가족이 한 사건을 두고 느끼는 감정 선과 심리의 묘사가 탁월해 엄청난 몰입감을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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