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지문
이선영 지음 / 비채 / 2021년 4월

지금도 여전히 세상 어디에서는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어떤 폭력이든 용서할 수 없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사랑이라는 이름을 걸고 자신보다 훨씬 약한 존재인 아이나 여자를 향해 자행되는 폭력은 더욱 용서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이런 폭력 사건이 없어지지 않는 데에는 폭력의 대물림도 있겠지만 폭력에 너그러운 사회 분위기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아이들에게 교육이라고 칭하며 자행되는 폭력이나 性 적으로 나 지위로나 우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자행되는 성폭력 같은 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는데도 관심을 두지 않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욱 은밀하고도 오랜 기간 집요하게 자행되는 이유다.

이 책 지문에 나오는 피해자 오기현과 신명호 그리고 여대생 예나가 바로 그런 예다

오랜 세월 양부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기현은 가정폭력에 시달린 희생자였고 떨어지는 지능과 그런 그를 보호할 부모가 없었던 명호는 어릴 적부터 노동력을 착취당해 온 폭력의 희생자였다.

그리고 여대생 예나 역시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한 즉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피해자였다.

이렇게 이 책에서는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폭력의 대표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가정에서 자행되는 가정폭력이고 또 다른 하나가 성폭력이다.

청우산에서 추락사한 듯 보이는 여자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지문은 우리 주변에 흔한 폭력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이와 다른 사건 즉 존경하던 교수님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희생자인 예나를 통해서는 우리 사회가 성폭력에 얼마나 취약하고 무관심한지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단순 실족사로 처리될 것 같았던 사건을 맡은 형사 규민은 시신의 사인이 너무나 분명해 오히려 의심을 하게 되고 그녀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에서 그녀의 실종 신고를 냈던 윤의현이란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의현의 입을 통해 성이 다른 기현과의 관계를 알게 되고 피해자 주변을 조사하다 그녀의 죽음에 더욱 의심되는 부분을 발견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사인을 특정할 수 없었는데 의현의 양부이자 서류상의 아비인 오창기의 미적지근한 반응은 수사를 더욱 힘들게 하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지문은 얼핏 봐서 사인이 분명해 보이는 한 여자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쳐 가다 추악한 진실이 만 천하에 드러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데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폭력으로 원하는 걸 취하는 자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체 외면하는 주변 사람들이었다.

죽은 피해자의 양부이자 또 다른 피해자인 명호에게 오창기란 존재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이자 절대악이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고 도움을 청해도 돌아오는 건 외면뿐이라는 사실에 두 사람이 서로에게 연민의 감정을 품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두 사람이 폭력에 대항하는 방식은 상처받은 서로를 연민하고 서로 위로해 주는 다소 소극적인 것이지만 이런 주위의 무관심의 또 다른 희생자인 예나는 두 사람의 대응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

자신이 당한 폭력을 주변에 알리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바라며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이렇게 서로 다른 대응 방식을 취하는 두 명의 희생자와 엮여 있는 의현의 행보는 적에게는 그들과 공범인 척해서 안심시킨 후 뒤로는 피해자들과 연대해서 그들에게 복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뒤로 갈수록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규민보다 의현의 행동이 더 독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지만 사적 복수를 하는 의현의 행동에는 어딘지 신뢰하지 못하고 미심쩍은 부분들이 있다.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그 이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사회의 민낯을 고발하는 지문

이야기로서의 재미는 물론 사회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시사성 면에서도 흠잡을 곳 없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