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몇 해 전 아주 아름답고 섬세한 글로 깊은 인상을 남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의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가 이번엔 삼대에 걸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고 왔다.

전작들도 그렇지만 특별한 사건이나 드라마틱 한 사고가 등장하지 않아 얼핏 생각하면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음에도 한순간도 지루하다 느낄새가 없이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똑똑한 머리를 타고 나 의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시대적 상황에 따라 조산사가 되어 도코에서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 에다루로와 뿌리를 내린 소에지마가의 요네

그 요네를 중심으로 삼대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지고 있는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에서는 사람의 인생이란 뭘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자신의 커리어로 당당하게 한 사람의 몫을 해내고 있었던 요네지만 아이들에게 엄마로서의 역할은 제대로 하지 못했고 자식들은 그 부분에서 결핍과 함께 불만을 가졌었다는 걸 아주 뒤에 다른 에피소드를 통해 심경을 표현하는 식의 전개 방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어릴 적부터 절대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 한 막내딸 도모요도 그렇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받은 손녀딸 아유미도 평생 결혼엔 관심이 없다.

요네처럼 자신의 앞가림은 스스로 해내는 것이 당연한 어찌 보면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요즘 세대에 더 어울리는 타입들이다.

이렇게 소에지마가의 여자들은 대부분 자기주장이 강하고 주관이 뚜렷한 반면 소에지마가의 남자들은 사정이 다르다.

결정하는 것에 서툴고 논쟁에 약할 뿐만 아니라 자기주장을 크게 내세우지 않는... 어찌 보면 다소 심약하고 우유부단하다.

요네의 아들이자 아유미와 하지메의 아빠인 신지로가 그렇고 소에지마가의 삼대인 신지로 역시 그런데 그래서일지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캐릭터가 훨씬 더 매력적이고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요네가 조산사가 되어 전후 베이비붐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면 요네의 남편인 신조는 전쟁의 격변 속에서도 굳건한 자신감으로 살아남아 박하 주식회사를 일으켜 소에지마를 비롯해 에다루의 경제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부부는 부모로서의 역할은 미미했고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게 자식들이 결혼에 관심을 두지 않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런 아버지의 뒤를 이은 신지로는 전기 기사로 일하며 두 아이를 뒀지만 여느 집과 비슷하게 아들과의 사이는 딸 아유미와 달리 소원했다. 도대체 아들인 하지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당황하다 화를 내기도 하지만 결국은 포기하는 모습이 여느 부자관계와 닮아있다.

끝내 신지로와 화해하지 못했지만 그런 부부를 끝까지 책임지게 된 사람이 그렇게 미덥지 않아 했던 신지로라는 게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하기도 하고 서툴러 헤매기도 하면서 서서히 나이 들어가는 일가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로 그려내고 있는 이 책은 작가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깊이 스며들어 여운이 길게 남는 책이었다.

시간순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고 에피소드를 통한 전개 방식을 취하고 있어 삼대의 시간이 교묘하게 섞여 있다. 그런 이유로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한순간에 그 흐름을 놓칠 수 있다는 점 역시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하다.

하지메의 이야기를 하다 뭔가 하나의 연결고리를 통해 요네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다시 아유미로 돌아오기도 하는 식으로...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 중 작가의 심정을 대리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유미가 아니었을까 생각되는데 지극히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면서도 홋카이도 견을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 섬세한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전체적으로 멀리서 삶을 관조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작가가 어느 정도 연배가 있어 살면서 체득한 삶이 녹아있는 까닭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본 듯한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