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는 건 나야
조야 피르자드 지음, 김현수 옮김 / 로만 / 2021년 1월
평점 :
절판


아르메니아인이지만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이란 아바단에서 아들과 쌍둥이 딸들 그리고 다른 집에서 살지만 늘 같이 사는 듯한 친정엄마와 미혼인 여동생과 살아가는 주부 클래리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는 여느 가정주부처럼 집안일을 소홀함 없이 꾸려나가는 부지런한 주부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가 해주는 일에 대해 감사하거나 고마워할 줄 모른다.

늘 자신이 한 일에 부족한 점을 끄집어내어 잔소리하는 엄마와 미혼인 남자라면 누구나 자신과 사랑에 빠졌다 주장하며 누구의 말도 귀담아듣지 않는 자기애로 똘똘 뭉친 것 같은 동생... 심지어 동생은 언니를 은근히 깔보고 있음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족을 위해 매일매일 새로운 식사를 차리고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들이닥쳐서 손님 대접을 바라는 모두를 위해 헌신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끼니를 챙겨주거나 일을 도우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새로운 이웃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그저 자신만 참고 좀 더 노력하면 되리라 생각하며 불만을 꾹꾹 눌러 참으며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웃집의 등장 그중에서도 에밀의 등장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볼 계기를 만들어준다.

자신처럼 시와 문학을 사랑하고 더운 이곳에서 열심히 정원을 가꾸는 자신의 정성을 한눈에 알아봐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 스타티스를 돌봐준 남자

에밀은 누구도 그녀에게 물어보지 않았던 그녀의 저녁을 챙겨준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당연하지만 그녀는 에밀에게 흔들린다.

자신을 늘 집에 있는 가구처럼 대하는 남편과 어느새 자신의 사랑을 찾아 부모의 영역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자신의 첫아이 그리고 끊임없는 잔소리로 늘 자신을 부족한 사람처럼 느끼게 만드는 엄마와 동생과 달리 지신이 좋아하는 책을 선물하고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에밀에게 흔들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에밀 또한 그녀를 대하는 모습이 진지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그는 상처한 지 오래여서 새로운 사랑을 찾는 데 걸림돌이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다음 순서는 서서히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질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이야기는 당연한 순서로 풀어가지 않는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 때문에 더더욱 자신이 위치와 현재 자신의 모습에 대해 자각하게 되는 클라래스

그녀는 조금씩 일탈하지만 자신이 궤도를 벗어나고 일상에서 변화를 가져와도 자신의 가족에는 큰 문제가 없음을... 자신이 이 모든 책임을 굳이 다 떠안고 있지 않아도 일상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책을 읽으면서 왜 하필 제목을 불을 끄는 건 나야라고 지었을까 생각해 봤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 누군가는 반드시 불을 끄러 일어나거나 혹은 불을 끈 뒤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그런 귀찮을 수 있는 행위 즉 별 생색이 나거나 하는 일이 아니면서 수고스러운 일을 하는 건 언제나 클래리스라는 사실을 비틀어주는 제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귀찮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 열심히 하지만 아무도 고마워해 주지 않는 존재

언제나 희생만 하던 우리의 엄마 모습을 연상케하는 클래리스가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져 더욱 공감이 갔던 책이었고 실제로 아르메니아인들의 생활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과 닮은 점이 많아 재밌었다.

시끌벅적하면서도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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