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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키퍼 - 돌아간 여자들은 반드시 죽는다
제시카 무어 지음, 김효정 옮김 / 리프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우스개처럼 하는 말 중에 여자가 죽었으면 범인은 남편이거나 애인 혹은 헤어진 애인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여자들을 상대로 하는 강력 범죄가 많을 뿐 아니라 상당수의 범인이 전혀 모르는 낯선 타인이 아니라 한때는 서로 사랑한다고 밀어를 속삭이거나 장래를 약속한 애인 혹은 같이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룬 남편이라는 사실이 슬프지만 이런 속설을 증명해 주고 있다.
오래전부터 자신보다 약한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은 줄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왔는데 오랜 폭력의 끝은 둘 중 누군가가 죽거나 죽을 만큼 큰 상처를 입어 외부의 개입이 이뤄졌을 때야 비로소 멈춰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폭력 피해자는 여자인데 자신이 피해자이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맞고 산다는 걸 수치스럽게 여겨 숨기거나 현실기피를 하는 등 스스로를 기만하면서 오랜 세월 폭력에 길들어지다 아이에게까지 폭력이 대물림되는 사례가 많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왜 맞고 살까 혹은 왜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마련인데 당연하게도 보통의 사람은 폭력에 길들여진다는 게 어떤 의미이고 왜 도움받기가 쉽지 않은 지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 더 키퍼는 평범한 여성이 어떻게 폭력에 길들여져 스스로는 아무런 결정을 할 수도 없는 상태까지 이르게 되는지 그 과정을 세심하게 그려 보이고 있다.
여성쉼터에서 일하던 젊은 여자가 강물에 빠져 죽은 사건이 벌어졌다.
그녀의 몸에는 이렇다 할 상처도 반항한 흔적도 없는 상태였고 그녀가 죽은 곳이 자살하는 곳으로 나름 유명한 곳이었을 뿐 아니라 평소 우울증을 앓았다는 이유 등 모든 것이 그녀의 자살을 암시하고 있지만 윗선에선 유서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녀의 죽음을 조사할 것을 요구해왔다.
그녀의 수사를 맡은 휘트워스 역시 그녀의 자살임을 확신하지만 어딘지 찜찜한 구석이 있어 그녀가 죽기 전 근무했던 쉼터를 찾아갔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적의로 가득한 시선 혹은 그와 말 한마디 섞지 않으려는 방어적인 여자들뿐이어서 생각처럼 그녀들을 조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게다가 가장 강력한 용의자인 애인은 그 시각 다른 곳에 있었다는 확실한 알리바이까지 있는 상황
그런 이유로 사건을 자살로 종결지으려는 상황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녀의 이름 케이티가 진짜 이름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어디에도 그녀 케이티 스트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렇다면 그녀 케이티는 어디에서 왔고 왜 이런 죽음을 택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 책은 현재 그녀의 죽음을 조사하는 경찰 휘트워스의 현재 시점과 과거 케이티가 한 남자 제이미를 만나면서 어떻게 변해갔는지... 암에 걸린 엄마를 간병하면서도 간간이 친구들과 만나 자유롭게 생활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던 여자가 외모부터 점차 변해가다 제이미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친구들과도 멀어지고 점차 모두로부터 고립되어가는 과정을 케이티의 시점으로 보여주고 있다.
당사자인 케이티는 그가 보여주는 애정에 눈이 멀어 조금씩 조금씩 그녀 스스로가 변화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데 어느새 그녀 주변에는 그 외엔 아무도 없어 그녀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모든 결정을 그가 내리는 게 당연해지는 모습에서 가스라이팅이란 게 얼마나 한 사람의 인생을 피폐해지고 무기력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게다가 현재 시점은 경찰이자 권력자인 남성 즉 휘트워스의 시점에서 그리고 과거 시점은 폭력의 피해자인 여성을 대신해 케이티의 관점을 통해 폭력을 바라보는 남녀의 입장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케이티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녀가 그날 밤 왜 죽음에 이르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지만 어쩌면 그녀는 그 죽음 이전에 이미 삶의 많은 것을 포기한 채 그저 숨만 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다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반전까지...
시원하고 짜릿한 결말 혹은 뭔가 터질듯한 긴장감이나 긴박감은 아니지만 평범했던 케이티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왜 사회에서 폭력의 희생자인 여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와줘야 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