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제작자들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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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내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이끌어갈 때가 있다.

보통 그런 걸 운명이라고들 하는데 만약 그런 일들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의도가 닿았다면?

사실 한 번쯤은 이렇게들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운명이란 신이 나 그 무언가의 안배이고 사람의 운명은 미리 결정지어져 있다는 것을...

이 책 우연 제작자들은 누군가에게 섬세한 작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떤 결과로 이끌어가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전제로 이야기를 그려가고 있다.

물론 여기서 이런 일을 담담하는 사람이 우연 제작자들이고 무엇보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아니 사람의 형태를 하면서 사람과 섞여 생활을 할 수도 있지만 은밀하게는 살아있지 않기도 하고 사람이라 규정지을 수도 없는 존재들이다.

사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이런 존재들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이유나 존재 이유에 대해 회의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깊이 생각하거나 철학적인 의미를 담았다기보다 그저 흔한 클리셰 지만 모퉁이에서 부딪친 남녀가 도와주다 사랑에 빠지게 하거나 길거리에서 큰소리로 울며 주저앉는 여자를 보고 지금까지 하던 일을 멈추고 문득 어릴 적 꿈을 찾아 새로운 길을 가는 회계사의 이야기처럼 무겁지 않으면서도 우연의 힘이 어떤 식으로 작용해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오는지와 같은 가벼운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우연 제작자들에게도 여러 가지 자신의 전문 분야가 있을 뿐 아니라 등급이 있다는 사실~

가이는 연인들로 하여금 사랑에 빠지도록 하는 일이 전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을 믿지 않는다.

자신은 아직까지도 예전 상상 속 친구로 활동할 때 만났던 여자만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지만 그녀를 만날 가능성은 제로... 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의 동기이자 친구인 에밀리의 마음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으면서 받아주지 않자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에밀리는 자신들을 상대로 운명을 제작하지만 사랑에 회의적인 가이는 금세 눈치를 챈다.

그가 그저 오래전 잠시 만났던 여자의 기억만을 안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에밀리는 모든 희망을 잃고 운명 제작자를 그만두고 먼 길을 떠나버린다.

이렇게만 보면 사람이 아닌 존재들의 거창한 이야기이기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남녀 간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저 그들의 직업이 우연을 제작하는 사람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찾아 날실과 씨실을 엮어 운명을 제작하는 남자가 정작 자신은 사랑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가능성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서로 다른 방향을 보거나 외면에 가려진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면서 생각하는 방식이나 행동하는 양식은 사람과 똑같다.

사소한 하나를 움직여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그 과정을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가이와 에밀리의 사랑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를 준다.

그리고 세상 모든 일에 누군가의 의지나 어떤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좀 더 흥미롭지 않을까?

책을 읡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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