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파스트의 망령들
스튜어트 네빌 지음, 이훈 옮김 / 네버모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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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죽인 유령들에게 시달리고 있는 남자 제랄드 피건은 겉보기엔 매일 술에 취해 사는 알코올중독자에 불과한 듯 보이지만 그는 사실 IRA의 전설적인 행동 요원이었다.

하지만 12년간 감옥에서 복역하고 나온 세상은 그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더 이상 그와 같이 총질과 테러를 일삼는 과격한 행동 요원이 설자리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이념과 정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살해한 12명의 유령들이 그를 밤낮으로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그에게는 평화란 없었고 그가 출소한 후 7년 만에 다시 살인을 하게 된 이유 역시 유령들이 원하는 걸 들어주면 자신을 놔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사항 때문이었다.

거침없이 감정 없이 살인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던 남자가 유령 때문에 두려워하고 그저 잠을 편히 자기 위해 유령들의 요구대로 살인을 한다는 설정은 언뜻 코믹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웃음기라곤 1도 없을 뿐 아니라 진지하고 무겁기까지 하다는 게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연히도 그가 차례차례로 살해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조국인 북아일랜드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싸울 때 함께했던 동지였고 친구였으며 심지어 그들은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차근차근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이제는 새로운 조국에서 힘깨나 쓰는 위치에 올라있었다.

그들은 처음 살인이 벌어졌을 때 그 솜씨 즉 망설임 없이 과감하고 대범하면서도 마치 처단하듯 행한 것을 보고 단박에 피건의 짓이라는 걸 눈치챘고 그들에게도 새로운 판이 짜여진 그곳에 더 이상 피건의 자리를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는 자신들의 하고자 하는 일에 걸림돌이 되는 존재가 되어 반드시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벨파스트의 망령들에서는 단순히 누군가가 살인을 하고 그 살인자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때는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우고 그런 자신들의 조직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을 거침없이 처리했었던 전설적인 행동 요원이 이제는 술주정뱅이가 되어 유령에 쫓겨 하루라도 편히 자고 싶다는 욕망으로 살인을 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에 그가 살해하는 사람들의 면면은 한때는 조국을 위한다는 명분을 위해 싸웠지만 조국 북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되고 자립의 길을 걸으면서 어느새 권력의 맛에 취하고 돈에 취해 자신들이 원하는 걸 얻고자 거침없이 동료였던 사람을 혹은 친구들을 향해 냉혹한 주먹을 휘두르고 원하는 걸 취하는 그저 그런 정치가이거나 마피아에 버금가는 범죄자일 뿐... 그래서 정의를 위한 살인이 아니라 유령을 쫓아내고 편히 자기 위한 이유로 그들을 살해하는 피건의 살인이 차라리 명분을 얻을 뿐 아니라 그가 하는 일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가 죽이고자 하는 놈들은 천하에 나쁜 놈이지만 보통 사람들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있는 위치에 있어 이런 우리를 대변해 거침없이 처단해나가는 피건에게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피건이 유령들이 지목한 사람들을 처리하는 장면을 보는 것 역시 아주 흥미롭다.

독자의 입장에선 그가 마음속으로 갈등하는 이유나 혹은 유령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피건을 상대하는 입장에선 혼잣말을 주절거리며 흔들리는 손으로도 자신을 겨냥하는 모습이 더욱 섬뜩하게 느껴졌을 터... 게다가 피건은 돈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회유되지 않는다는 게 더욱 답답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명분도 이념도 돈과 권력 앞에서 다 변해버린 세상에서 혼자서 고해하듯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제정신이 아닌 피건...이렇게만 보면 그는 현대의 완벽한 히어로의 모습이 아닐까?

왠지 영화 배트맨의 고뇌와 그 고담 시의 전경이 연상되는 벨파스트의 망령들은 가볍지 않고 묵직한 누아르의 참맛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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