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호실의 원고
카티 보니당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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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던 호텔의 탁자 서랍에서 우연히 발견된 원고를 읽고 단숨에 매료된 안느 리즈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읽고 마는 걸로 끝나지 않고 그 원고 속에 쓰인 주소로 원고와 함께 편지를 보내면서

이 우연이 믿을 수 없는 인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128호실의 원고는 안느가 원작자로 추정되는

살베스트르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로만 주고받는 서간체 소설이다.

서간체 소설로 유명한 작품이 몇 있는데 서로 간에 느끼는 감정이나 사건들을 편지로만 묘사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여차하면 단순하게 사실들을 나열하는 것처럼 평이해질 수 있어 독자의 시선을 잡는 것 역시 쉽지 않아서인지 서간체 소설이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책 128호실의 원고는 캐나다에서 잃어버렸던 원고가 어떻게 프랑스의 그 호텔 서랍에 있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누가 그 뒷이야기를 이어서 썼는지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와 우연히 원고를 읽었던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드라마적인 요소에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까지 여러 장르가 다양하게 섞여 단숨에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흡인력이 있다.

편지에 수수께끼와 드라마틱 한 사랑 이야기가 섞인 또 다른 소설 건지 감자껍질 파이 클럽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둘 다 재밌는 소설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2차 대전이라는 무거울 수 있는 시대적 배경에 비해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책이 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내용 역시 부담 없이 읽기엔 좋은 것 같다.

오래전 한창 피 끓는 나이에 소설을 쓰고 그 소설을 평가받기 위해 캐나다로 향했다 어이없이 원고를 잃어버리고 그 이후 글을 쓰는 것에도 의욕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던 살베스트르에게 느닷없이 이름도 모르는 여성으로부터 당신의 원고를 읽었다는 편지는 얼마나 큰 놀라움을 안겨줬을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그 이후 그가 보인 반응 즉 그녀에게 원고를 찾아준 것에 고마움을 전하지만 그녀가 그 원고를 추적하는 것에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그의 심정도...

여느 사람들이라면 여기서 멈추겠지만 안느라는 여자는 다르다.

그녀는 평소 적극적이고 궁금한 것을 못 참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참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다소 오지랖이 있는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쉽게 협조를 얻어내 그 원고의 여정을 쫓는데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한다. 이제 그 원고는 작가 한 사람의 원고가 아니라 모두의 원고가 되었고 그런 그녀의 관심이 언젠가부터 사람들과의 관계를 멀리하고 사람들을 피해서 은둔자처럼 생활하던 살베르트르를 변화하게 하는 힘이 된다.

그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그 원고의 여정을 쫓아가는 데에는 그 소설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과연 누가 그 뒷이야기를 쓴 건지에 대한 궁금증이 컸던 탓이기도 했다.

그렇게 또 다른 작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살베르트르의 원고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고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데 그 하나하나의 사연을 따라가는 것 역시 편지를 읽는 재미와 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그 소설은 은둔자였던 살베르트르를 자신의 거주지에서 벗어나게 했고 안느의 친구이자 이 과정의 또 다른 조력자인 마기가 남편과 아이를 잃어버린 상처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게 했을 뿐 아니라 누군가 가슴 아픈 사랑의 비밀을 밝혀내기도 한다.

원고를 찾기까지의 긴 세월이 말해주듯 그 세월을 거치면서 원고를 접했던 사람들의 변화된 삶도 그리고 그들 각자의 사연도 잔잔한 감동을 주지만 이 원고의 여정을 쫓으면서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새로운 인연을 맺어가는 과정도 아름답게 그려져있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누군가에게 상처를 돌아보고 마주할 힘을 주는 원고는 또한 중요한 일은 내일로 미뤄선 안된다는 교훈도 주고 있다.

한 편의 소설이 어떻게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지 그 여정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는 128호실의 원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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